자객 섭은낭

아름다운 고요.

설 연휴 마지막날, 나는 생각보다 많은 어르신들 틈에서 이 영화를 보아야 했다. 시간이 갈 수록 그 어르신들의 깊은 빡침(...)이 공기파로 전달되어왔고, 괜히 내가 다 안절부절. 어르신들이 왜 짜증이 나는지 나도 너무 잘 알겠으니까. 아마 신명나는 칼부림! 멈추지 않는 챙챙챙!을 기다하셨을텐데 적막하고 고요하기 짝이 없는 영화였으니까. 즐거운 연휴, 가족과의 신나는 영화관 데이트셨을 텐데 도무지 용납이 안되는 지루하기 짝이 없는 영화였으니까. 그런 이유로 큰 하품소리, 큰 코웃음소리, 큰 한숨소리를 간간히 들으며 영화를 감상해야했다. 그렇다. <자객 섭은낭>은 우리가 으레 알고있는 류의 무협 영화는, 결코 아니었다.

나는 무협영화를 싫어하는 편이다. 마블 히어로물을 싫어하는 이유와 비슷할 것 같다. 도무지 '말이 안 되는' 것이 싫은 것이다. 사람이 어떻게 하늘을 날라다니나!! 에서부터 이미 무협 안녕, 히어로 안녕, 인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객 섭은낭>의 개봉을 기다렸던 이유는 허우샤오시엔 감독님의 이름값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보다 더 큰 이유는 이 영화의 포스터 때문이었다. 작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선 보일 때 보았던 벚꽃을 배경으로 검은옷을 입은 서기의 아름다운 모습에- 한눈에 반해버렸더랬다. 

영화의 스토리는 무척 단순했다. 스토리가 중요한 영화는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간단하고 명료한 하나의 이야기를 잇는 그 침묵과 고요의 순간들이 오히려 더 큰 무게를 지니고 있었다. 하나의 대사, 하나의 몸짓이 화선지 위에 툭, 하고 떨어진 다음 서서히 번져가듯이 정말 조용히, 천천히 그 대사와 몸짓의 의미를 스윽 하고 보여주었다. 서기의 짧게 짧게 보여지는 아름다운 호를 그리는 액션연기는 기대만큼 아름다웠고, 허우샤오시엔 감독이 담아낸 자연의 이미지 역시 우아하다는 말로밖엔 설명할 수가 없었다. 조용히 사라지고 조용히 나타나는 모든 화면들이 섭은낭의 고뇌를 그대로 잘 나타내주고있다고 생각한다. 고요함이 전해주는 우아한 아름다움의 정수를 맛볼 수 있는 영화였다. 물론, 지루할 수도 있다. 이야기가 중요한 사람들에겐 더더욱 지루한 영화로 기억될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야기 외의 것, 특히 화면의 아름다움에 쉽게 빠져드는 나에겐 참 좋은 영화였다.

(+) 츠마부키 사토시 닮은애가 다 있네, 싶었는데 걔가 바로 츠마부키 사토시였다. (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