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개의 ‘시그리드’의 미묘한 차이
이 영화에 처음 관심이 갔던 이유는 개봉 당시 보았던 크리스틴 스튜어트의 멋짐 터지는 이 스틸 컷 때문이었다. 내 인생 최악의 영화 베스트5안에 들어있는 <뉴 문>(<트와일라잇> 시리즈는 <뉴 문> 이후로 보지 않았는데 아마 인내심을 가지고 봤다면 베스트5위안에 그 시리즈가 몽땅 이름을 올리고 있을지도 모르겠다.)이후로 그녀의 필모에 전혀 관심이 없었는데, <스틸 앨리스>로 인해 그간 내가 가지고있던 ‘할리우드 아이돌’의 이미지가 무너졌고 트위터에 종종 보이는 그녀의 가식이라곤 전혀 느낄 수 없는 파파라치 사진들을 보며 약간 ‘오 이 언니 멋지네(동생이다)’라고 생각하게 되던 차에 보게 된 스틸 컷이었다.
그러나 영화관에서 상영할 때 볼 기회를 놓친 이후 영 찾아서 보지 못하고 있다가, 최근 아는 분이 추천해서 듣기 시작했다가 완전히 팬이 되어버린 라디오, <FMZINE>에서 김혜리 기자님의 2015년 영화 결산 편을 듣다 보니 새삼 그래, 나 이 영화를 놓쳤더랬어라고 깨닫게 되어 모처럼 한가로운 주말에 각 잡고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가 푸욱, 빠져버렸다.
이 영화의 매력은 딱 두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다. 첫 번째로 긴장을 놓을 수 없는 여배우들의 탁구시합같이 오고 가는 불꽃 연기. 두 번째로 실스 마리아의 아름다운 풍경. 특히 두 번째 매력은 영화관에서 보았다면 더욱 매력적으로 마주할 수 있었을텐데 하는 큰 아쉬움을 선사했다.
20년 전 상사를 자살로 몰고 가는 파괴적 매력을 지닌 ‘시그리드’를 연기했고 20년의 시간이 흘러 동일 작품의 리메이크작에서 바로 그 상사를 연기하게 된 ‘마리아(줄리엣 비노쉬)’, 그리고 그 ‘마리아’의 비서로서 그녀의 대사연습시의 ‘시그리드’를 연기하는 ‘발렌틴(크리스틴 스튜어트)’, 리메이크작의 ‘시그리드’를 연기하게 된 할리우드의 악동 ‘조앤’(클로이 모레츠). 세 여배우가 각자 연기하는 세 개의 ‘시그리드’의 미묘한 차이를 캣치하며 보는 재미가 있는 작품이었다.
특히 줄리엣 비노쉬가 시그리드를 놓지 못하고 있다가 서서히 무너져 내리며 크리스틴 스튜어트와 맞부딪히는 장면과, 반짝반짝 빛나는 청춘의 한가운데에 무서울 것 없는 젊음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클로이 모레츠 앞에서 초라해지는 장면, 종내엔 헬레나로서, 그러나 작품 속의 헬레나와 같은 나약함이 아닌 20년의 시간동안 단단해지고 원숙해진 한 사람의 여배우로서 담담하게 무대위에 오르게 되는, 그녀의 그 변화를 쫓아가는 과정이 정말 흥미로웠다. 그저 마리아 VS 조앤의 이야기로 풀어낼 수도 있었을 법 한 이야기에 발렌틴이라는 캐릭터를 끼워 넣어 마리아의 심적 변화의 과정을 밀도 있게 그려낸 것도 영화의 묘미였다고 생각한다.
스위스라는 나라에 전혀 관심이 없었는데 이 영화의 스크린 한가득 펼쳐지는 스위스의 풍경을 보고있다보니 절로, 스위스라는 나라를 검색하게 되었다. 그 자연속을 언젠가 나도 걸어보고싶다. 실스마리아의 말로야 스네이크를, 나도 실제로 보고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