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탓이야. 영화는 잘못 없어.
우주에 관련된 영화라면 득달같이 찾아보는 나임에도 어쩐지 마션은, 후다닥 달려나가가 찾아보지는 않게 되는 영화였다. 그냥 나는 아직도 인터스텔라와 그래비티의 여운을 느끼고 싶었을지도. 혹은 연달아 세 번(그래비티-인터스텔라-그리고 마션으로 이어지는) 이란 것은 평소 '적당함'이 인생에 있어 가장 큰 미덕이라 생각하는 나에게 그 '적당함'을 넘어선 것이었을지도. 아무튼 그래서 별로 안 땡겨하며 영화를 보지 않고 있었지만, 예의상 우주 영화니까, 결국 보게 된 것인데 다 보고 난 후의 감상은 뭐, 재미는 있긴 한데 안 봤어도 상관없었겠군. 정도였다.
사실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를 본 이후엔 웬만한 우주 영화에 감격하지 않게 된 것 같기도 하다. 이미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 다 있지 않은가, 하는 심드렁한 느낌이랄까. 그래도 그래비티엔 압도적인 우주 체험이라는 매력이, 인터스텔라에는 경이로운 (전혀 이해할 수 없는데 뭔가 엄청난 것 같이 보이는) 물리학의 세계에 휴먼 드라마가 합쳐진 100% 놀란스러운 드라마가 있었는데 마션에는 이도 저도 아닌 맹탕 같은 느낌이, 그러니까 이 영화에서만 볼 수 있는 매력! 같은 게 없어서 그렇게 느껴지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어디선가 본 듯 한 전형적인 '정의로운 미국을 찬양하라'식의 화면들은 볼썽사납기까지. 솔직히 누군가 화성에 혼자 살아남았다. 그런데 그를 다시 살릴 수 있단다. 그래서 그 상황을 생중계 한다고 해도 나는 광장에 나가 대형화면을 보며 환호 같은 걸 하지 않을 거란 말입니다. (응?) 월드컵도 아닌데 뭘..... (월드컵 때도 광장에 안 나가잖아 너)
내가 비관주의자라서 그런지 마크 와트니 박사의 끝을 모르는 낙천주의에 질려버린 걸지도 모르겠다. 만약 내가 저런 상황에 빠진다면 어떻게 했을까 상상해보면, 일단, 혼자 남겨진 것을 알게 된 순간 → 유서고 나발이고 자살한다. 잠깐 머리가 어떻게 되어서 일단 살아보자라고 생각했다 쳐도 식량이 1년치밖에 없는데 살려면 4년치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 → 자살한다. 그러다가 또 머리가 회전이 되어서 식량을 재배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물 만들려고 불 붙이다가 폭발사고로 화상을 입는다 → 역시 되는 일이 없으므로 자살한다. 그래도 삶에 미련이 남아 살려고 발버둥을 치고 지구에도 연락이 되었고 지구에서도 날 구해준다고 막 수천억 들여서 우주선을 만들었는데 그게 발사하다 폭발한다 → 역시 재수 없기로 일등이라며 자살한다. 일 텐데 이 박사님은 너무 희망적이야. 말도 안 되게 희망에 넘쳐. 화성에 홀로 떨어졌는데 불만이 들을 음악이 디스코뿐인 거야. 하. 하지만 며칠 전 읽은 <난폭한 독서>에서도 이렇게 말하지 않았던가, "낙관주의란 나쁠 때도 모든 것이 최선이라고 우기는 광기야!"라고 말이다.
여기까진 약간 장난이고. 결정적으로 공감하지 못한 것이 너무 '과학적으로 근거'를 대어 '말이 되게' 그리려고 한 점이 오히려 이 영화를 지루하게 만든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 본다. 그럴 거면 다큐멘터리를 만들던가. 영화라는 것에서 꼭 '말이 되는 현실'만 보고 싶은 건 아닌다. 특히 아직은 미지의 세계인 '우주'영화에서 꼭 그럴 필요까진 없는데. 마션은 너무나도 근거와 논리로 '이건 있을 수 있는 현실'임을 강조하려 해서 오히려 지루했던 것 같다. 지루했어. 정말로. 피식, 하고 웃게 만드는 장면들도 많았지만, 그래서 재밌게는 보았지만. 비관주의자인 나는 이 영화에 결론적으로 공감하지 못 했다. 그래, 그러니까 결론은 모든 게 내 탓인 거다. 영화는 잘못하지 않았어. 응. 내 탓이오 내 탓이오 내 큰 탓이로소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