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를 하나 샀다. 영화 매드 맥스에 나올 법한 과감한 디자인의 일렉기타. 기능이나 소리에 대한 판단보다는 철저히 겉모습만을 중시한 구매였다. 앰프 스피커가 있어야 제대로 소리를 낼 수 있다는 사실을 구매한 뒤에 알게 됐으니 말이다. 로큰롤에 빠져있는 밴드부 고등학생이 구매한 게 아닌, 단순히 멋을 위한 호기심으로 구매를 한 일렉기타. 인생을 살면서 한 개의 악기는 다룰 줄 알아야 한다는 생각에 내가 정한 타깃은 일렉기타였다. 처음 잡아보는 기타 줄에 손가락이 방황했지만 일주일 정도는 재미있게 기타를 쳤다. 아마 연주라는 표현보다 갖고 놀았다는 표현이 더 맞을 것이다. 앰프 스피커를 켜고 연습을 하자니 동네 민원이 들어올 것 같았고, 소리 없이 연습을 하자니 느낌이 살지 않았다. 손가락도 아프고 가르쳐주는 사람도 없으니 자연스레 일렉기타는 머릿속에서 잊혀갔고 중고나라에 헐값에 팔려나갔다. 다른 소비를 위해 팔려나간 것이다. 경험하지 않았던 것에 큰돈을 주면 안 된다는 교훈을 하나 얻게 되었다. 그 교훈은 기타를 팔면서 같이 팔아먹었고 충동구매는 계속되었다. 경솔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나의 경솔함은 급기야 동물을 입양하는데 까지 가게 된다. 고등학생 때 털이 보송보송한 강이지를 키우고 싶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카페에서 무료 분양을 덜컥 받게 된 것이다. 나 혼자 사는 집이 아니기에 가족들에게도 동의를 구하고 신중한 선택을 했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했다. 어린이가 생떼를 부리듯 덜컥 사 오면 내 것이 될 줄 알았다. 하지만 생명은 그렇지 않았다. 부모님의 반대와 나의 소홀한 관리로 다시 다른 집으로 파양을 보내게 되었다.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애완동물의 입양은 정말 경솔했던 행동이었다.
이 글을 쓰면서 신중했던 적이 몇 번이었던가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경솔했던 적이 많아 신중함이 기억나지 않는 것인지, 신중함의 강도가 적게 느껴진 것인지 모르겠다. 내가 들었던 좀스러움이 경솔함을 대응하기 위한 신중함이 아닐까. 그래도 남들이 보기에는 너무나 신중한가 보다. 30대가 된 지금도 경솔함과 신중함의 사이를 찾기가 어렵다. 가끔은 경솔한 구매를 하고, 신중한 구매를 한다. 두 사이를 만족하는 구매는 찾기가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