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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K Apr 08. 2019

초고

모든 초고는 쓰레기다.


허밍웨이는 “모든 초고는 쓰레기다.”라고 말했다. 유명한 작가도 자신의 초고가 쓰레기라고 말하는 판에, 내가 쓴 초고는 배설물에 가깝다. 하지만 배설물이든 쓰레기든 일단 뱉어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생각만 하고 있으면 구체적으로 떠오르지 않는다. 가끔 너무 배설하듯 막 써진 초고는 쓰지 않은 거나 다름없을 때도 있고, 초고가 새똥이었다가 개똥으로 바뀌는 경우도 있다.


많은 글쓰기 책에서 글쓰기를 수월하게 하는 방법 중 하나로 제약을 말한다. 특히 시간의 제약인데, 많은 회의 시간을 준다고 해서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는 것처럼 글쓰기에도 제약이 필요하다. 보통 1시간 동안 A4 2장 분량의 글을 쓴다고 치면, 훈련을 통해 점차 적은 시간 동안 빠르게 글쓰기를 할 수 있다. 대통령의 글쓰기 저자인 강원국 작가도 이 훈련을 통해 5분 만에 글을 쓴 적도 있다고 한다.


시간의 제약 외에 공간의 제약을 두기도 한다. 공간의 제약이라고 하기보다 공간의 넓이인데, 넓은 공간에서 집중이 잘되는 경우와 좁은 공간에서 집중이 잘 되는 경우가 있다. 이러한 공간의 제약이 글쓰기에 많은 도움이 되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도구에 제약을 두는 경우다. 나의 경우 도구의 제약을 많이 둔다. 특히 초고는 줄이 쳐있는 미도리사에서 만든 MD NOTEBOOK에 써야 하고, 펜은 PENTEL사의 사인펜을 사용해야 한다. 이렇게 되면 문제가 발생한다. 도구가 갖춰지지 않으면 글이 절대로 써지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습관을 버려야 하는데 유명 잡지 편집장은 제약을 깨기 위해 어디서나 구할 수 있는 200원짜리 플러스펜으로 초고를 쓴다고 한다. 플러스펜이 없어질 염려는 없으니까 말이다.

아무것도 쓰여있지 않은 흰 종이를 보고 있으면 공포심이 생기기도 한다. 이를 증명하듯 컴퓨터로 글을 쓸 땐 꼭, 글과 관계없는 말들을 일단 써놓고 시작한다. 백지로 보이지 않기 위해서다. 글쓰기를 하기 위한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어쨌든 초고는 어렵다. 머리에서 생각을 정리해서 글을 쓰는 건 더욱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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