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을 하면서 가장 많은 질문을 받는 것 중 하나는 어떻게 장애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냐는 것이다. 여러 가지 계기가 있지만 처음으로 나의 뇌리를 꿰뚫는 사건은 2011년 길거리에서 경험한 일이다. 나는 당시 디자인 공모전에 출품하기 위해 작품을 들고 동대문역에서 나와 오르막길을 올라가고 있었다. 그런데 맞은편 먼 거리에서 장애를 가진 것으로 보이는 청년과 어머니가 내려오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마도 발달장애인이었을 것 같다. 나는 이상하게도 시선을 뗄 수 없었고 계속 바라보며 길을 걸었다. 그리고 마음속에 어떤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저 청년은 어떻게 복음을 들을 수 있을까? 그리고 복음을 이해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 해 나는 시각장애인의 운동경험 증진을 위한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마라톤 가이드러너로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시각장애인 마라토너들과 함께 남산을 뛰는 것은 정말 새로운 경험이었다. 일대 일로 팔에 밴드를 묶고 뛰며 내가 누군가의 눈과 길이 되어준다는 것은 의미 있었지만, 사실 이 분들의 겸손함과 열정에 내가 더 감사한 시간이었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접점을 만들며 5년의 시간이 지났다.
2017년 드디어 대학원 공부를 위해 영국으로 떠나게 되었다. 영국에서의 생활은 추후에 다시 이야기하기로 하고, 앞선 글에서도 언급했지만 내 원래 관심 주제는 디자인의 강점을 살린 소재 혁신 Material Innovation 분야였다. 물론 당시에도 장애인의 삶 증진에 대해 관심이 없던 것은 아니었으나, 우선적으로는 심미성에 기반한 디자인 비즈니스나, 혹은 푸드 테크, 피트니스 관련 사업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팀이 구축될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주변에 이런 데 관심을 가지고 있는 지인도 별로 없었다. 가끔 장애인과 관련된 일을 한다고 하면 아내는 “어떻게 돈 벌려는 거야 대체?” 하며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사실 나 조차도 장애인과 관련된 이슈들을 풀어나가는 게 막막했기 때문에 창업 순위에서는 한참 밀려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분명하게 두 번이나 말씀을 주셨다.
잔치를 베풀거든 차라리 가난한 자들과 몸 불편한 자들과 저는 자들과 맹인들을 청하라
눅 14:1
2011년 그날의 기억과, 이후 만난 많은 시각장애인 선생님들과의 대화가 생각났다. 결국 주님 말씀에 순종하는 마음으로 장애인의 삶을 위한 ‘무언가’를 하기로 했다. 하지만 정말 갈바를 알지 못했다. 제품을 만들고 싶어도 수요가 너무 적을 것 같고, 혼자서 만들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고민하던 중 영국에서 유학할 당시 지도교수님이 나에게 몇 가지 참조 사례를 이메일로 보내주셨는데, 그중 하나가 스탠퍼드 대학교에서 장애인과 함께하는 디자인 워크숍 프로그램이었다. 나도 디자이너 출신이고 디자인씽킹에 대해 나름대로 고민을 많이 해봤으니 이런 프로그램을 국내에서 해봐야겠다는 마음으로 비즈니스 모델을 기획했다. 그리고 2020년 예비창업패키지 소셜벤처 분야에 선정되어 사업을 본격적으로 진행하게 되었다. 하지만 2020년이 어떤 해인가. 코로나로 온 세상이 마비되었던 그 해이다. 대면을 기반으로 프로젝트를 하고자 했던 나는 계획했던 것들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말씀에 순종했지만 모든 게 막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