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용적인 디자인 방법론과 사고 03
배리어 프리 디자인과 유니버설 디자인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두 개념은 쓰이는 맥락과 지향점이 유사하기 때문에 칼로 무 자르듯이 구분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조금 더 깊게 들어가 보면 배리어 프리 디자인은 말 그대로 장벽을 제거하는 디자인으로써, 장애인 사용자가 가지고 있는 제품과 공간의 제약을 개선하기 위해 쓰이는 표현입니다. 반면 유니버설 디자인은 범용성을 강조하는 디자인으로 장애인을 고려한 제품이 어르신, 영유아 동반자 등 다른 많은 사람들에게도 보편적으로 쓰일 수 있는 디자인입니다. 배리어 프리에서 유니버설디자인으로 나아가기 위해 어떤 점들을 고려해야 할까요?
독립성은 장애인 사용자가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제품이나 서비스를 혼자서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합니다. 모든 제품과 서비스는 개인이 스스로 사용할 수 있도록 균등한 기회를 제공해야 합니다. 개인이 스스로 할 수 있다는 것은 자존감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물론, 안전상의 이유나 연령 제한과 같은 예외적인 상황은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지금까지 만난 많은 장애인들은 모두 '할 수만 있다면 혼자 하고 싶다'는 공통된 의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인터뷰 중에 기억에 남는 한 청년이 있습니다. 이 청년은 중증 근육병 장애를 가지고 있었는데, 컴퓨터를 사용하려고 할 때마다 몸의 방향을 조정하고 키보드를 사용하기 위해 부모님의 도움을 필요로 했습니다. 또한, 더 어려운 일들인 씻거나 자리에 눕는 것도 부모님에게 의존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보이스 어시스턴트를 통해 앱을 실행하거나 메시지를 보낼 수 있었고, 굽어있는 한 손 검지를 활용하여 글을 쓸 수도 있었습니다. 몇십 년 동안 가족과 활동지원사에게 의지해온 이 청년에게,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은 그 자체로 '살아있다'는 증거였습니다.
이것을 독립적인 자존감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이는 일상생활의 작은 영역에서 독립적으로 활동함으로써 자존감이 상승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독립적인 활동을 가능하게 하는 제품은 장애인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개인에게 필요합니다. 어르신들의 경우 우울감을 경험할 때가 배변활동 등 기초적인 활동에서 누군가에게 의지하게 될 때라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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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 유형과 관계없이 모든 사람이 동등하게 사용할 수 있는지를 판단해야 합니다. 또한, 동일한 장애 유형 간에도 차별이 없도록 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전맹 시각장애인이 사용할 수 있는 기능이 있는데 저시력 시각장애인은 사용할 수 없다면, 이는 포용성이 낮다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시각장애인을 위한 솔루션은 점자만 있으면 되는 것으로 제한되어서는 안 됩니다. 음성 정보, 색깔, 촉감 등 다양한 감각을 활용하여 전맹 시각장애인과 저시력 시각장애인의 다양한 특성을 포용할 수 있는 제품이 개발되어야 합니다.
또한, 다른 장애 유형 간의 형평성도 고려해야 합니다. MSV 3호에서 인터뷰를 진행했던 런던 호니먼 뮤지엄의 사례를 살펴보겠습니다. 호니먼 뮤지엄은 청각장애인을 고려하여 전시장에 작품을 설명하는 디지털 패널을 설치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발달장애 아동들은 디지털 패널에 나타나는 낯선 영상들을 보고 당황스러워할 수 있기 때문에, 디지털 패널 설치를 포기하고 다른 대안을 연구했습니다.
형평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가능한 한 많은 사용자를 배제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배제되는 사용자가 적을수록 형평성이 높아집니다. 따라서 제품과 서비스를 출시할 때, 배제되고 있는 사용자들을 파악하고 이들의 사용자 경험을 고려하여 접근성을 개선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장애인의 사용성을 고려한 제품과 서비스를 디자인할 때 확장성을 염두에 두지 않으면, 그 제품이나 서비스는 정말 '한 사람'만을 위한 특별한 것이 됩니다. 아트 작품이나 일시적인 이벤트와 같은 경우에는 큰 문제가 되지 않을 수도 있겠죠. 때로는 감동을 불러일으킬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대량 생산을 통해 판매되는 제품이나 서비스의 경우에는 반드시 범용성을 고려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품을 디자인할 때는 특정 개인을 위한 페르소나를 설정하여 디자인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용자가 제약을 경험하는 감각을 우선으로 두고 디자인하는 방식도 유용합니다. 예를 들어, 특정 장애인을 위해 디자인한다기보다 '시각 경험'을 중심으로 디자인하거나 '인지 경험'을 중심으로 디자인하는 과정이 필요한 것이죠. '시각 경험'을 중심으로 두었을 때는 일시적인 빛 반사 때문에 앞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나, 생애주기적인 요인으로 시력이 저하된 어르신도 고려 대상에 포함되기 때문입니다. 또한 확장성에 대한 고려 단계를 제품 개발 과정에 넣는 것도 좋습니다.
직관적인 디자인은 '설명을 최소화'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실 설명이 필요 없는 디자인이라고 말하고 싶지만, 디지털 기반 제품에서는 모든 기능을 아무런 설명 없이 혼자서 조작하는 경우가 드물기 때문에 설명을 최소화하는 것으로 말할 수 있습니다. 직관적인 디자인은 제품을 사용하기 위해 오랜 시간의 추론 과정을 거치지 않습니다. 사용자에게 약간의 학습이 필요하더라도 사용이 숙달되기까지의 학습 과정이 짧습니다.
직관적인 제품은 누구에게나 유용하지만, 특히 장애인 사용자에게는 더욱 중요합니다. 보편적으로 제품이 비장애인 중심으로 설계되어 있기 때문에 장애인 사용자는 학습에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전맹 시각장애인은 화면의 텍스트를 음성으로 읽어주는 보이스 오버 기능을 사용하여 버튼을 누르는데 비장애인과 대비하여 시간이 더 소요됩니다. 버튼의 위치를 찾기 위해 수많은 대체 텍스트를 직접 들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한 시각장애인 사용자는 버튼을 찾기 위해 보이스 오버의 스와이프 swipe(옆으로 손가락을 넘기는 동작)를 다섯 번 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고 매번 제품을 사용할 때 손가락 넘기는 횟수를 계산한다고도 합니다. 따라서 유니버설 디자인을 위한 직관성이란 장애인사용자도 비장애인 사용자와 거의 동등한 학습 시간을 가지고 제품을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