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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벼울 Mar 16. 2024

열두 살도 부자는 되고 싶어

그렇게 어른이 되어 갔다

“통장 하나 만들어 주세요.” 

초등학교까지 가는 길목에 유일하게 있던 사거리의 신호등, 그 아래 멈춰 서 있을 때마다 그냥 지나쳤던 은행이 있었다. 건물 2층에 자리 잡고 있던 은행은 ‘신한은행’이라고 크게 써진 간판이 아니었다면, 아마 학교 다니는 내내 있는지도 몰랐을 것이다. 그랬던 그곳에 문을 열고 앉아 통장 하나 만들어달라고 한 건 분명 12살 무렵이었다.


내가 그 나이를 기억하는 이유는 통장을 만들겠다는 그날의 다짐이 <열두 살에 부자가 된 키라>라는 책에서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책 속 주인공,  ‘키라’도 열두 살에 부자가 되었다는데, 나라고 못할까! 당장 이루기 어렵더라도, 지금부터 준비하면, 조금이라도 더 빨리 부자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 시작이 통장을 만드는 일이었다.


번호표를 뽑고, 차례가 오길 기다렸다. 부자가 되면 뭘 해야 하지? 일단 근사한 마당이 딸린 집을 살 거야. 그리고 마당에 어울리는 큰 개도 한 마리 키워야지. 매일 집 앞 산책길도 함께 걸을 거야. 여행도 많이 다닐 수 있으면 너무 좋겠다. 이런저런 생각이 꼬리를 물고 번져갈 때, 내 차례가 왔다. ‘고객님’이라는 호칭과 함께 나의 서명이 필요한 여러 장의 종이에 도장을 찍다 보니, 어른이 된 것만 같았다.


통장을 만든 후, 나는 틈만 나면 은행에 들렸다. 세뱃돈부터 서랍 안에 박혀있던 정체 모를 돈까지, 입금할 수 있는 돈이 있었지만, 나는 일부러 조금씩 나누어 입금했다. 입금하며 한 줄씩 통장 내역을 쌓아가는 재미를 한 줄로 끝낼 순 없었다. 그 재미는 금방 끝났다. 기껏 모은 용돈은 턱없이 부족했다. 돈을 더 벌어야만 했다.


키라는 잔디를 깎아 돈벌이를 시작했지만, 우리나라 현실엔 맞지 않은 아르바이트였다. ‘나는 과외 아르바이트를 해보겠어!’ 초등학교 5학년이었지만, 자신 있는 수학 과목은 충분히 가르칠 수 있을 것 같았다. 당시 살던 곳이 교육열이 뜨거운 학군지였던 만큼 과외에 대한 수요가 많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아직 어린 학생을 학부모들이 신뢰하긴 힘들 것 같았다. 차별점이 필요했다. 그렇게 떠오른 묘책이 바로 2:1 과외, 그리고 시범 강의였다. 두 명의 선생이 한 명의 학생을 가르쳐 주는 차별점, 그리고 첫 강의는 무료로 진행하겠다는 파격 조건까지. 이만하면, 내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사업 아이템 같았다. 제일 친한 친구를 꼬셔 두 명의 선생이란 조건을 만족시켰다. 그 친구는 아버지가 통신사를 다닌 덕에 어린 나이지만 핸드폰도 있었다. 연락책까지 마련되니 더 든든해졌다.


빨간 돼지 저금통이 잔뜩 달린 문구점에 꼬깃꼬깃한 용돈을 들고 달려갔다. “2:1 파격 조건, 저학년 수학 과외 합니다”라고 크게 쓰인 전단지를 대량으로 복사했다. 한 번도 우리 집 우편함에 꽂혀있던 전단지를 주의 깊게 살펴본 적은 없었지만, 왜인지 우리 전단지는 사람들이 흥미로워할 것만 같았다. 이러다 너무 많은 학생들이 우리에게 과외를 받겠다고 하면 어쩌지? 즐거운 상상을 하니, 전단지 돌리는 일도 재밌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단지 내 열린 작은 시장에 나온 아주머니들에게 직접 전단지를 돌리며 홍보하고 있을 때였다. 도넛을 사고 있던 아주머니 한 분이 우리에게 관심을 보이셨다. “이번 주말에 우리 집에 한 번 와보세요.” 열두 살 부자의 꿈에 한 발짝 다가간 순간이었다.


약속한 시각이 되었다. 친구와 나는 두 손을 꼭 잡고 초인종을 눌렀다. 잠깐의 정적 사이 ‘집을 잘못 찾아왔으면 어쩌지?’ 하는 생각이 들려던 찰나, 도넛 집 앞에서 봤던 아주머니가 문을 열었다. “진짜 왔네요.” 아주머니는 엷게 웃으며, 우리를 맞아주셨다. “우리 아이 방은 이쪽이에요.” 현관 바로 옆에 있던 작은 방으로 안내하고, 황급히 작은 간이 테이블을 펼쳐 주셨다. “ㅇㅇ아, 이리 와봐.” 엄마와 함께 나와 우리에게 관심을 보이며 기웃거리던 남자아이 옆에 누나로 보이는 안경 쓴 여자아이가 들어왔다. 계속해서 관심을 보이는 동생이 귀찮게 느껴졌는지, 여자아이는 볼멘소리 하였다. “야, 나만 하는 거래. 저리 가!” 그 여자아이가 이제부터 나의 학생이 된다고 생각하니, 투덜거리는 모습마저 귀엽게 느껴졌다. 자기소개를 마치고, 교재를 막 펼치려는데 밖에서 실랑이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이어서 들려오는 낮은 목소리. 


거, 학생들 잠깐 나와봐!


잔뜩 화가 나 있는 듯한 아저씨는 대뜸 우리에게 따져 물었다. “너희들 이러고 다니는 거 부모님도 아시니?” 당황해서 얼어있는 우리에게 그는 말을 이어갔다. “여기 앉아보렴.” 뭘 잘못했는진 모르겠으나, 그의 기세 눌린 우리는 무릎을 꿇고 그 앞에 앉았다. 금방이라도 우리 엄마에게 전화를 할 기세였다. 우리가 계속해서 답을 하지 않자, 그는 자신만의 훈계를 이어갔다. 우리가 돈을 벌기엔 아직 어리다는 말부터, 어른들에게 거짓말을 해선 안 된다는 말까지. 마지막엔 앞으로 공부 열심히 하라는 조언도 잊지 않았다. 조언을 할 때쯤엔 초반의 화는 온데간데없고, 자신이 이 어린 학생들의 인생을 구제하기라도 한 것 마냥 의기양양해 있었다. 그 모습이 어찌나 꼴사나워 보였는지 침이라도 ‘퉤’ 뱉고 싶었다. 하지만, 어른들께 예의 바르게 대하라는 엄마의 말씀을 떠올리며 애써 억울함을 눌렀다. 어차피 내 말이 통할 사람 같아 보이지도 않았다. 한 시간쯤 흘렀을까. 과외를 끝마치고도 남을 시간, 내리 훈계만 듣다 쫓겨나다시피 그 집에서 나왔다. 이럴 거면 오라고 하지나 말지. 우리를 불러준 아주머니도 원망스러웠다. 그래도 그곳에서 울진 않았으니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그날 아저씨의 바람이 너무 간절했던 탓일까, 그 이후 누구에게도 연락은 오지 않았다. 돈을 벌 기회는 사라졌고, 초등학교 고학년의 스케줄은 생각보다 빡빡했다. 키라는 내 머릿속에서 점점 희미해져 갔다. 그래도 여전히 내 이름 석 자가 찍힌 통장을 보는 건 기분이 좋았으므로, 그 이후에도 간간이 친척 어른들께 용돈을 받을 때마다 난 은행에 가곤 했다.


그렇게 꾸역꾸역 모은 돈이 60만 원을 넘어 70만 원이 되어가고 있을 때였다. 평소 같았으면, 벌컥벌컥 방문을 열어서, 나와 한바탕 실랑이를 벌이곤 하는 엄마가 그날따라 내 방문을 똑똑 두드리며 조심스럽게 들어오셨다. “딸…! 딸이 통장에 모으고 있던 돈 말이야… 엄마, 아빠에게 잠깐 빌려줄 수 있을까? 엄마가 나중에 꼭 다시 갚아줄게. 약속해.” 엄마가 다시 병원에 간호 일을 하러 나가시기 시작했을 때, 어렴풋이 아빠 사업이 어려워지고 있다는 사실을 짐작하고 있었다. 어릴 때 세뱃돈마저도 절대 뺏어가지 않던 엄마가 나에게 돈을 빌린다는 건 심각하다는 의미였다. 엄마, 아빠가 지금 정말 많이 힘드시구나. 그렇다면 우리 가족의 일원인 나도 도움이 돼야지. “알았어 엄마! 그럼 나 지금 은행에 얼른 다녀올게!”


씩씩하게 대답하고 나와 10분 거리의 은행에 가기까진 어렵지 않았다. “이 통장에 있는 돈 다 빼주세요.” 전액이 맞냐며 확인차 묻는 은행원에게 작성한 출금 전표를 내밀었다. 두툼한 만 원짜리 지폐들과 함께 받은 잔액이 건네받은 봉투 속에서 짤랑거렸다. “감사합니다” 동전이 떨어지지 않게 봉투를 주머니 속에 조심히 넣고, 은행에서 나와 2층에서부터 내려오는데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한 번 터진 눈물은 은행 건물을 지나, 단지 내 파랗게 울창해진 나무 그늘 사이를 걸어오는 내내 멈추지 않았다. 분명 엄마, 아빠에게 보탬이 된다는 게 슬픈 건 아니었는데… 왜 그렇게 눈물이 났는진 몰라도 확실한 건 잔뜩 울고 난 내 모습을 엄마가 보시면 더 슬퍼하실 것 같았다. 그렇게 한참을 단지 내를 서성이며 눈물을 삼키고, 다시금 거울 보기를 반복하고서야 집에 들어갈 수 있었다. “엄마, 은행에 사람이 너무 많았어.” 그날 난, 조금 더 어른이 된 듯한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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