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어느 겨울, 제 나이로는 벌써 졸업할 나이였지만 나는 나름의 낭만적인 방황을 하며 삶을 유예하고 있었다. 그 시절 나의 꿈은 ‘드라마 감독’이었다. 당시 종편 방송국이 생기며 방송가 환경은 하루하루 급변하고 있었고, 드라마 감독이 될 수 있는 길은 더더욱 좁아지고 있었다. 한 치 앞도 예측하기 힘들어진, 그래서 더욱 아득해져만 가는 꿈 앞에 동아리에서의 연극 연출은 큰 위안이 되었다. 여전히 내가 꿈을 꾸고 있음을 상기시키는 수단이었고, 내 관심 밖으로 밀려나 처참해진 성적에 대한 변명도 되어 주었다.
‘이렇게 살아도 되나?’ 애써 외면하고 있던 조급함이 몰려든 탓인지, 문득 다른 이들은 불확실한 이 시기를 어떻게 지나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그날 나는 내 연락처에 저장된 모든 20대에게 물었다. “우리나라 대학생(혹은 20대)을 대표하는 단어가 뭐라고 생각하나요?” 밑도 끝도 없는 이 질문에 대한 답변과 이유는 정말 다양했고, 이제는 기억도 다 나지 않지만, 이 모두를 정리하고 났을 때의 씁쓸함만은 잊히지 않는다. 노예, 취준생, 경쟁 등을 선두로 한 160개의 답변 중 대부분이 부정적이었고, 단 25개만이 열정, 청춘과 같은 희망을 말하고 있었다. 당시의 모든 대학생을 대변할 수야 없겠지만, 적어도 내 주변의 많은 대학생들은 스스로를 취업을 준비하는 노예라고 규정하고 있었다.
그중에서 내게 유난히 더 슬프게 와닿았던 표현이 바로 ‘닭둘기’라는 답변이었다. ‘사랑과 평화’의 상징으로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비둘기. 그런 비둘기가 닭처럼 날지도 못하고 통통해진 것을 비꼬아 지칭하는 ‘닭둘기’가 우리 20대라니... 하물며 요즘 시대의 닭이 어떤 닭인가. 볕도 들지 않는 닭장에서 언제 아침이 오는지도 모른 채 알을 낳아대는 기계 아닌가. 한탄하며 차분히 돌아보니, 이것만큼 우리 20대를 잘 표현한 말도 없는 것 같았다.
“이 주제로 연극을 만들어야겠다.” 남들은 취업 준비하느라 여념 없을 귀한 지난 2년이라는 시간을 온전히 쏟아부었던 내 연극 인생의 마침표로도 잘 어울리는 주제일 것 같았다. 그렇게 그날의 질문은 무대가 되었다.
회색빛이 도는 텅 빈 무대, 흡사 닭장 같아 보이는 네 개의 방에 하얀 커튼이 쳐져 있다. 암전 되면 비둘기의 힘찬 날갯짓 소리가 들려온다. 비둘기 소리가 잦아들며 무대 조명이 켜진다. “오전 5시. 기상 시간입니다. 오전 5시. 기상 시간입니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목소리. 무미건조하지만, 어딘가 매력적이다. 4개의 커튼이 동시에 촤르륵 하고 열린다. 경쾌하면서도 우울한 정체 모를 노랫소리가 들려온다. 잠시 후 사람들, 허겁지겁 나와 각자의 방문 앞에 선다. 얼굴에는 피로가 역력하지만, 노래에 맞춰 체조를 시작한다. 그들의 행동은 틀에 맞춰진 듯 빠르고 정확하다. 이곳은 합격고시원, 이곳의 룰을 따라 생활하다 보면 어떤 시험이든 합격해서 나간다고 해서 합격고시원이다. 그리고 이 층엔 3명의 고시생 그리고 신춘문예 당선을 꿈꾸는 시인 아저씨가 살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고시원에 비둘기 한 마리가 들어오게 되고, 사람들은 그제야 이 고시원에 창문이 하나도 없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그렇게 비둘기를 내보내기 위해 네 사람이 고군분투하며 결국 창문을 만들어버린다는 희망적인 이야기.
아니, 이야기였다. 여기까지 썼을 때 나는 한 가지 물음에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과연 이 비둘기는, 틀에 박힌 규율 속에 이미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져 버린 우리들은, 갑자기 주어진 자유에 잘 적응할 수 있을까? 아니, 현실은 그렇지 못할 것이다. 마지막 장면은 수정되어야 했다.
“비둘기야 이제 훨훨 날아가거라.” 창문이 뚫린 고시원, 사람들은 너도나도 이제야 해가 뜨는 걸 볼 수 있게 되었다고 크게 웃으며 잠든다. 다음 날 아침, 창문 아래 고시원 한편에 비둘기 한 마리가 들어와 죽어있다. 암전. 그리고 다시 희미하게 켜지는 조명. 무대에 덩그러니 남겨진 네 개의 방에 하얀 커튼이 다시 쳐져 있다. 그리고 들려오는 목소리. “축하드립니다. 올해 신춘문예 당선자. 김대한, 당선작은 ‘비둘기’입니다” 그리고 깔리는 음악과 함께 무대 위 하얀 커튼에는 160개의 단어가 시처럼 흘러간다. 그리고 암전.
-연극 <어쩌다 여기 왔지> 시놉시스
그해 겨울, 이 무대를 완성하기 위해 나는 정말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 작곡하는 친구를 섭외해 극 중의 삽입곡을 모두 새로 만들었고, 엔딩곡은 배우들의 목소리로 직접 녹음하였다. 닭장 같은 고시원을 표현하기 위한 철봉을 포함해 모든 무대를 직접 제작하였고, 매일매일 작가, 스텝, 배우들과 이야길 나누며 시놉시스에 색깔을 더했다. 누구보다도 늦게 집에 갔고, 부지런히 하루를 시작했다. 하루하루 피로가 쌓일 법도 한데, 이상하게 몸도 정신도 또렷했다. 아니,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몸의 모든 세포가 살아나는 기분이었다. 그 후 다신 느껴보지 못한 도파민의 폭발이었다.
너무 많은 에너지를 한 번에 쏟아버린 탓일까. 내 안에서 들끓던 창작 욕구를 격렬히 해소해 버린 탓일까. 코앞으로 다가온 현실의 시계, 그 알람을 더 이상 외면하지 못한 탓일까. 찬란했던 나의 꿈은 꺼진 연극조명과 함께 서서히 꺼져갔고, 졸업할 무렵엔 완전히 희미해져 있었다.
이로부터 10년이 지난 지금, 이제는 30대인 우리에게 새로운 꿈이 생겼다. 내 집 마련. 경쟁적으로 취업에 성공한 우리들은 이제 내 집 마련이라는 꿈을 향해 너도나도 달려가고 있다. 이 원대한 꿈 앞에 ‘왜 노예처럼 살아가느냐’ 따위의 철 지난 질문은 힘없이 바스러지고 만다. 노예처럼 일해서라도 주택자금은 마련해야 할 것 아닌가. 그리고 그 꿈에서 나 또한 결코 자유롭지 못했다. 자유롭기는커녕, 누구보다 앞장서 영혼까지 끌어모아 그 꿈을 이뤄냈다.
2030의 가계대출 비중이 50대를 뛰어넘었다는 기사를 보았다. 그 밑에 달린 수많은 댓글들. 한 치 앞도 못 보는 어린것들이 스스로 은행의 노예를 자처한다며, 너도나도 혀를 차고 있었다. 월세방에서 시작해도 충분한 청춘들이 겁도 없이 집을 덜컥 잘도 산다며 기침한다. 그리고, 그 아래 추천된 함께 볼만한 뉴스엔 ‘전세 사기 피해자 절반은 30대’라는 기사가 떠 있었다.
요즘 부쩍 나에게 ‘멋지다’, ‘잘 산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늘었다. 이제는 부유층의 전유물이 되어버린 아이까지 낳았으니, 이쯤 하면 성공적인 한국의 30대 아닌가. 그런데, 그 시절 내가 사랑하던 연극에 빠져있을 때도 이런 말을 들었었나? 시멘트로 이뤄진 닭장 같은 아파트 안으로 들어가며 나는 생각했다. 겨우내 웃풍을 견디지 못하고 굳게 닫은 창문 위 덕지덕지 막아놓은 뽁뽁이 안으로 비둘기 한 마리가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