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손가락 ⑥ · 가장이 된 날

by 바이그레이스

아빠는

입원하지 않았다.


대신

일을 멈추게 되었고,

치료를 받기 위해

정해진 요일마다 병원을 다녔다.

혈액투석이 시작되면서

아빠의 하루는

집과 병원 사이에

묶여버렸다.


엄마는

밖으로 나가야 했다.

병원비와 생활비는

하루도 미뤄지지 않았고,

집은

누군가의 손으로

계속 굴러가야 했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집 안의 역할은

말하지 않아도 정해졌다.

엄마는 생계를 맡았고,

아빠는 치료를 받았다.


병원을 오가는 보호자는

열한 살이던 큰딸,

바로 나였다.


아침마다

집을 나서

버스와 지하철을 갈아탔다.

창밖 풍경이 몇 번이나 바뀐 뒤에야

서울에 있는 대학병원에 닿았다.

왕복으로 다섯 시간이 걸리는 길이었다.

병원에서

아빠의 이름이 불리면

내가 먼저 고개를 들었고,

투석실 앞 차가운 의자에 앉아

시간이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혈액투석을 마치고 나오면

아빠는

몸속에서 힘이 빠져나간 사람처럼

말수가 눈에 띄게 줄었다.

다리에 힘이 풀려

계단을 한 칸씩 더듬듯 내려왔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몇 번이고

자리에 앉아 숨을 고르며

고개를 숙였다.

그래서

아빠는

혼자 병원을 오갈 수 없었다.


아빠는

원래 키가 큰 사람이었다.

그런데

병원 복도를 함께 걸을 때면

아빠의 등이

그 길고 하얀 복도 안에서

유난히 작아 보였다.

키가 줄어든 건 아니었지만

예전처럼

든든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때 나는

아빠가 정말로

아프다는 걸 알았다.


아빠는

사람을 좋아했고,

자기 몸을 돌보는 데에는

늘 서툰 사람이었다.

술자리를 마다하지 않았고,

쉬는 법을 잘 몰랐고,

일을 멈추는 대신

계속 움직이는 쪽을 택해왔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많은 시간이

조금씩

몸에 쌓여 있었던 것 같다.


그 시간에

엄마는

일을 하고 있었다.

아빠 곁에 앉아 있을 수 없었고,

그럴 여유도 없었다.

엄마가 멈추면

집이 먼저 멈췄다.


그날부터

엄마는

분명하게 가장이 되었다.

누가 그렇게 부르지 않아도

이 집을 지탱하는 사람은

엄마 한 명뿐이었다.


투석은

아빠의 몸을 붙들고 있었고,

엄마의 하루는

점점 더 팽팽해졌다.

일을 하고,

아이를 키우고,

병원비를 감당하는 일은

한 사람의 몫이 아니었지만

그 모든 일을

해내는 사람은

엄마였다.


우리 집의 중심은

그때

완전히 엄마가 되었다.

그 중심은

눈에 띄지 않았고,

튼튼해 보이지도 않았지만

끝내

무너지지 않았다.


엄마는

무너질 수 없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음이야기

'그 말을 들었을 때'


다음 주 목요일 저녁 7시에 이어집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엄마손가락 ⑤ · 머무르기로 한 선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