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손가락 ⑨ · 엄마의 선택

by 바이그레이스

어느 날,

엄마가 말했다.


그 말은

결심처럼 단정하지도 않았고

설명처럼 길지도 않았다.

오래 품어온 생각을

이제야 밖으로 꺼내는 사람처럼

조용히 놓였다.


나는 그 말의 무게를

그때는 알지 못했다.



엄마는

그날 이후로

조금 달라졌다.


그녀는

하루를 더 조심스럽게 살았고

시간을 허투루 쓰지 않았다.

몸을 함부로 쓰지 않았고

말은 이전보다 더 아꼈다.


엄마가 있는 집은

전보다 더 조용해졌지만

그 조용함은

불안보다

단단함에 가까웠다.



엄마의 손길은

집 안 곳곳에

이전보다 오래 머물렀다.


그녀는

서랍을 열었다 닫고,

자주 쓰지 않던 물건을 꺼내

하나씩 정리했다.

아직 필요하지 않은 것들을

미리 정돈하는 모습은

살림을 정리한다기보다

마음을 준비하는 사람처럼 보였다.


그때의 나는

그저 엄마가

유난히 단정해졌다고만 생각했다.



엄마는

자기 몸에 대해

거의 말하지 않았다.


그녀에게서

힘들다는 말도,

아프다는 말도

집 안에서는 나오지 않았다.

대신 하루는

더 정확하게 흘러갔다.


일을 나가고,

아이들을 챙기고,

생활을 계산했다.

병원비와 다음 달을 함께 놓고

조용히 셈을 했다.


그녀의 하루에는

틈이 없었고,

그 틈 없는 하루 속에서

자기 몸은

늘 맨 마지막에 놓였다.



지금 돌아보면

엄마는 이미

선택의 방향을 알고 있었다.


누군가에게 묻지 않았고

허락을 구하지도 않았다.

그저

자기가 살아온 방식대로

결정을 향해

조용히 걸어가고 있었을 뿐이다.


그녀는

말로 다짐하지 않았고

눈에 띄는 결연함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 선택은

이미 생활 속에 들어와 있었다.



엄마를 바라보던

그 시절의 나는

그저

엄마가 더 바빠졌다고 느꼈다.


왜 더 조심스러워졌는지,

왜 더 단정해졌는지

정확히 알지 못했지만

무언가 중요한 일이

이미 시작되었다는 건

아이의 감각으로도 느낄 수 있었다.



엄마에게

신장을 내어준다는 선택은

어느 날 갑자기

등장한 일이 아니었다.


그건

갑작스러운 희생이 아니라

엄마가 평생 해오던 방식이

끝까지 이어진 결과에 가까웠다.


그녀는 늘

자기 몫을 뒤로 미루고,

가족의 시간을 먼저 살폈고,

자기 몸보다

집의 균형을 먼저 생각해온 사람이었다.



그래서 나는 이제 안다.


자신의 신장을 내어주기로 한

그날의 선택은

새로 만들어진 일이 아니었다.


그동안 엄마가

하루를 대하던 방식,

사람을 먼저 살피던 태도,

자기 몫을 늘 뒤로 두던 습관들이

그 자리에

그대로 이어졌을 뿐이다.


다음 이야기는

다음 주 목요일 저녁 7시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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