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손가락 ⑪ · 끝내 무너진 자리

by 바이그레이스

이식 이후

아빠의 몸은 한동안 버텨냈다.


그 시간은

길다면 길었고,

짧다면 짧은

열두 해였다.


사람들은

기적이라 말했지만

그 열두 해는

조심과 불안 위에 놓인 시간이기도 했다.



아빠는

완전히 달라지지는 않았다.


몸이 살아났다고 믿었고,

다시 술에 손을 댔다.

사람을 만나고

밤이 늦도록 밖에 있는 날이 이어졌다.


몸은 버텼지만

삶은 달라지지 않았다.


그는

건강을 되찾았다고 믿었고

다시 예전의 밤으로 돌아갔다.


번듯한 직업은 오래가지 않았고

생활은 여전히

엄마의 몫이었다.


아빠의 몸은

겉으로는 일상을 이어갔지만

안에서는 쉽게 흔들렸다.

합병증은

늘 가능성으로 남아 있었다.


엄마는

그 흔들림을 옆에서 지켜보며

점점 달라졌다.



목소리가 커졌다.

예전처럼

참고 넘기지 않았다.

필요한 말은 했다.

따져야 할 것은 따졌다.


조용하던 사람이

생활을 붙잡기 위해

목소리를 세웠다.


그건

성격이 변한 게 아니라

버티는 방식이 달라진 것이었다.


엄마는

여장부가 되어가고 있었다.



열두 해가 흘렀다.


그 끝은
예고 없이 찾아왔다.


쓰러졌다는 전화를 받고

병원으로 달려갔을 때,

이미 상황은 우리보다 앞서 있었다.


진단은 뇌출혈.


의사는 침착했고

설명은 정확했다.


하지만

나는 그 말들이 싫었다.

왜 이렇게 또박또박 말하는지,

왜 끝난 것처럼 설명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유리문 너머로

가만히 누워 있는 얼굴을 보았다.


그 사람은

한때 그렇게 크고

집 안을 가득 채우던 사람이었다.


나는

그 유리문을 밀어 열고

흔들어 깨우고 싶었다.


술을 마시던 밤도,

우리를 남겨두고 나가던 뒷모습도

모두 잊어버리고

그냥

다시 한 번

눈을 떠주기를 바랐다.



끝내

그 눈은

우리 쪽을 또렷이 보지 못한 채

멈췄다.


나는

그 순간이

너무 허무해서

차라리 화가 났다.


이렇게 끝나는 게 맞는 건지.

이렇게 조용히 사라질 사람이었는지.



그 죽음은

요란하지 않았다.


하지만

내 안에서는

오래

가라앉지 않았다.



장례식장에서

엄마는 무너졌다.

그동안 삼켜온 시간들이

한꺼번에 터져 나왔다.


말로 하지 못했던 날들이

울음이 되어 쏟아졌다.

멈추려 해도 멈춰지지 않는 울음이었다.


나는 엄마의 등을 바라보고 서 있었다.


그날

나는 엄마가 그렇게 우는 모습을

처음 보았다.



집으로 돌아왔을 때

집은 이상하리만큼 조용했다.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은 것처럼 보였지만

한 사람이 빠져 있었다.


그 빈자리는 말로 설명할 수 없을 만큼 컸다.



엄마는

며칠 동안 말을 줄였고,

손은 더 많이 움직였다.


해야 할 일은 줄었는데

움직임은 더 많아졌다.


그건 다 쏟아내지 못한 시간을

붙잡고 서 있는 모습 같았다.


그 손은

한 번

몸의 일부를 내어 준 적이 있었다.


그리고 이제는

남겨진 시간을

오롯이 감당해야 했다.


다음 이야기는

다음 주 목요일 저녁 7시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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