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식물다방의 마담보리 할머니로 남고 싶습니다.
지금껏 나는 식물을 매개로 수많은 사람들과 이야기해왔다. 단순한 식물 키우기 팁부터, 창업 상담, 우울감을 극복할 수 있었던 이야기까지 식물이 없었다면 아마 그 많은 사람들과 이야기를 할 수 있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식물이 없다면, 나라는 사람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나의 첫 브런치북 <식물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 식물다방>의 마지막 이야기를 나와 식물의 이야기로 채워보려고 한다.
사실 내가 처음부터 식물을 좋아한 것은 아니다. 그리고 식물일을 시작하게 된 동기가 그렇게 아름답지도 않다. 어릴 적, 식물 사랑이 유난했던 할아버지 덕분에 항상 꽃이 만발하는 꽃밭이 있는 집에서 살았던 생후 7년 정도의 기억이 내 인생, 식물 경험의 전부였다. 그 뒤로는 오랜 아파트 생활이 이어졌고, 식물은 내 인생과 별로 상관이 없다고 생각했다. 왜냐면 나는 전공도 숫자를 보는 경영학도였기 때문이다. 패기만 있던 20대, 나는 이것저것 많은 것에 도전해봤지만, 내 일은 정말 더럽게도 풀리지 않았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꼬이고, 돈을 벌어보려 했던 일로 오히려 몇 천만 원의 손해까지 입었다. 나는 아무 일도 안 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팽배했고, 그저 루저였다.
그러다 지금의 남편이 나를 본인 집에 소개하는 날. 나는 태어나서 그렇게 꽃이 많은 비닐하우스에는 처음 들어가 봤다. 40년 가까이 농장을 운영했지만, 가족 중에는 관심 있어하는 사람들이 없었다고 하신다. 그러니 새롭게 가족이 될 나에게 얼마나 그곳을 자랑하고 싶으셨을까. 그런데 다행히 나는 그곳이 너무 재밌었다. 신발에는 흙이 잔뜩 묻었지만, 그 폭신한 흙의 느낌도 좋았다.
결혼 후, 나는 재취업을 위해 면접도 보고, 스카웃 제안이 온 곳에서 근무도 했지만 이상하게도 적응을 못했다. 부쩍 스트레스가 늘고, 얼굴이 상한 나를 위해, 시부모님은 비닐하우스를 하나 지어주셨다. 응?ㅋㅋㅋㅋㅋ 그것도 직접 파이프를 끊어다가, 손수 지어주셨다ㅋㅋㅋ 그렇게 나는 시아버지와 다정하게 하우스에 비닐을 씌우고, 바닥에 벽돌을 깔았다. 그렇게 나만의 놀이터가 생겼다. 그게 내 식물일의 시작이었다. 비닐하우스가 생기니 뭐라도 해봐야겠었고, 그 뒤로 식물에 관련해서는 닥치는 대로 배우러 다녔다. 도시농업, 꽃, 원예치료, 놀이 정원사, 가든 디자인 등등.
그렇게 <바이그리너리>라는 사업자까지 내고, 호기롭게 명함도 만들었다. 근데 그 뒤로는 정말 믿을 수 없을 만큼 좋은 기회가 찾아왔고, 대박은 아니지만 4년 차가 된 지금까지도 좋아하는 식물로 먹고살며 밥을 굶지 않고 있다.
그동안 수없이 많은 식물과 이야기를 나눴지만, 특히 두 가지 식물이 생각이 난다. 하나는 ‘호프 셀렘’과 하나는 ‘필레아 페페 로미오이데스’이다.
나의 놀이터이자, 일터인 비닐하우스에서는 겨울 동안 연탄난로를 피웠다. 한동안 그 연탄에 달고나, 쫀쫀이를 구워 먹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 며칠 자리를 비우고 비닐하우스에 방문한 날. 무색무취의 상태였지만, 뭔가 분위기가 이상했다. 한 낮이었지만, 갑자기 뒤통수에서 뭔가 나올 것 같은 싸하면서도 낯선 느낌이 들었다. 눈치챘는가? 연탄가스가 새어 나온 것이다. 말 그대로 식물들이 연탄가스를 마셨다. 다행히 내가 들어갈 때는 이미 가스가 많이 나간 뒤고, 사람은 피해를 안 입었지만, 지난해 가을까지 장사를 마치고 다가올 봄의 장사 밑천이었던 식물들은 정말 동치미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일산화탄소 중독이었다. 식물이 연탄가스를 마신다고? 사실 너무 어이가 없었지만, 그 누구도 탓할 수 없었다. 내가 더 잘 관리했어야 하는데, 그저 식물들에게 미안했다.
죽을 놈들은 죽고, 조금 가망이 있어 보이는 놈들은 또 정성으로 관리를 했다. 그리고 나는 봄 성수기 시즌을 달렸고, 어느새 그 연탄가스의 추억도 잊힐 무더웠던 여름. 나의 비닐하우스 안에 다시 활기가 돌았다. 살지 못할 거라 생각했던 식물들이 다시 새 잎을 내고 회복하고 있던 것이다. 문득 그 아이들에게서 내 모습이 보였다. 잘해보려고 노력하고, 이를 악 물었을 때는 갑자기 연탄가스가 새어 나오는 듯한 어이없던 일만 찾아왔다. 그런데 그 힘든 것을 잠시 잊어버리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했을 때, 그 셀렘의 새 순처럼 더 멋진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는 걸 알았다. 그리고 모든 식물에게 때가 있듯이, 이제야 나에게도 내 때가 찾아왔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래도 인생의 굴곡은 계속 이어져, 우리집은 말도 안 되는 큰 사기를 당했다. 정말 다 포기하고 싶을 정도의 큰 금전적 피해를 입었다. 이 세상엔 나쁜 놈들도 너무 많다. 근데 뭐, 내가 힘든 일이 이번이 처음도 아니었던지라, 정신력으로 버텼다. 그러다가 이 식물 ‘필레아 페페 로미오이데스’를 만났다. 중국에서는 동전처럼 생긴 잎이 계속 나오면서 부자가 될 수 있다는 믿음까지 준다는 이 식물. 그래서 나도 키웠다. 그때는 정말 한 푼이 아쉬웠다. 그 마음을 이 식물을 보면서 달랬다. 매일 아침 오늘은 잎이 몇 개인지 세어봤다. 하나가 더 나오면 ‘그래, 너도 이렇게 잎을 내어줬는데, 오늘 내가 조금 더 힘을 내볼게!’라면서 버텼다. 멘탈이 무너질 즈음, 또 실제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밀려올 무렵에도 나는 이 녀석 때문에 한번 더 참고 이겨냈다. 한번 더 물을 주고, 한번 더 들여다보고, 한번 더 해가 드는 곳에 이 친구를 놓아주며 같이 힘든 시기를 이겨내자고 다짐했다.
그리고 이 글을 쓰고 있는 바로 오늘, 나는 여전히 식물 하는 사람으로 남아있다. 한 카페에 작업해드린 정원이 예뻐서, 그 건물주분께서 그 조경 업체를 소개해줄 수 없냐고 물으셨다고 한다. 지인이 추천해줬는데 우리에게 식물을 구입할 수 없냐고 디엠도 왔다. 참 기분 좋은 일이다. 거기에 온라인 클래스도 준비 중에 있다. 그리고 다음 달이면 다시 대학생의 신분으로 식물을 배우게 된다. 내 삶은 식물과 떼놓을 수가 없게 되었다. 나의 이야기가 곧, 식물 이야기다.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는 여전히 고민스럽지만 하나 확실한 것은 더 많은 사람들이 식물을 키우는 즐거움을 알게 돕고, 할머니가 되어도 식물다방에 모여 식물 수다를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게 내가 원하는 전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