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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無名)

by 해진

나는 그 '누구'라는 이름 안에

갇혀 있지 않습니다


그 어떤 말로도

나를 이름 짓지 말았으면 합니다


그 어떤 것도 잠시 나를 잡아두는 힘일 뿐

나의 이름이 될 수는 없습니다


나는 때로는 억압당하는 한 존재로

머무를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억압이 내 존재를 다시 일어서지

못할 정도로 억누르지는 못합니다


내 속에는 나의 또 다른 에너지인

저항이 숨 쉬고 있기 때문입니다


가끔 나는 억압과 저항이

팽팽하게 맞서는 그 어느 중간쯤에

존재하기도 합니다


내 이름은 억압도 저항도 아닙니다

억압도 저항도 나의 에너지의 일부일 뿐

나 자신일 수는 없습니다


나는 자유합니다


하지만 나는 그 자유라는 말에 갇혀 있는

존재는 아닙니다


그 자유에 갇혀 버린 나는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자유하다고 외치고 다니는 이유는

무엇인가 나를 구속하려는

어떤 또 다른 힘이 내 안에서

늘 꿈틀거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힘은 내가 자유로워서 좋을 때가 있겠지만

구속되어 있을 때가 더 좋을 때도 있다며

끊임없이 나의 자유를 낚아채려 합니다


이 말이 그를 듯해

나는 구속에게 내 자유의

끝자락을 내어준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내 자유의 힘은 생각보다 강합니다

구속에게 끝자락을 물려서 잠시 흔들렸다가

온 힘을 다해 빠져나옵니다


끝자락만 물렸는데도 마침내 나의 온몸이

구속을 거부했기 때문입니다


나는 구속이 있기에 자유도 존재한다는 것을

체감하고 싶었는지도 모릅니다


억압


저항


자유


구속

.

.

.

이들이 존재했던 곳에 나도 분명히

존재했습니다


그러나

내가 슬픔에 온몸이 젖어 있다고 해서

내가 슬픔일 수 없듯이


내가 억압, 저항, 자유, 구속의

상태로 아무리 오래 있었다 한 들


그들은 내가 될 수 없습니다


그들은 모두 나의 손님들이었습니다


지금 이 모든 것들로부터

벗어난 곳에


내가 있습니다


나는 여전히


이름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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