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한 몸을 지난 존재들

by 해진

다른 사람들에게 일어난 일이 내게 일어나지 말란 법은 없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제 앞에 일어날 일을 예상하지 못하므로 제 잘난 맛에 살아갑니다. 나도 그런 사람 중의 한 사람입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우리의 곁을 떠나갈 때, 우리가 오랫동안 품었던 꿈이

일순간에 무너질 때, 우리의 몸과 마음이

외로움으로 녹아내릴 때, 하나, 둘 우리 몸에 고통이 찾아오기 시작할 그때에도 잘난척하며 주위를 돌아보지 않으렵니까?


사실 지금 우리가 어떤 환경에 처해 있든 우리가 육신을 가졌다는 자체가

서로에게 동정의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살아 있는 자만이 깨어지고 부서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유리그릇 같은 우리의 육신은 언제 금이 가고 깨어질지 모릅니다. 예외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를 돌보아야 합니다.


내가 먼저 어떤 이를 돌보았는데 나는 돌봄을 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억울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내게 있는 정성으로 진심을 다해 어떤 이를 돌보았다면 당신은 저 하늘에 영원히 썩지 않을 보물을 쌓은 것입니다. 만약 이 말이 믿기지 않는다면 나의 이런 선한 행위가 자손을 위해 덕을 쌓은 것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세상에는 하찮은 존재란 없습니다

자신이 소중한 만큼 다른 사람의 존재도 똑같이 소중합니다. 우리에게 다른 사람들을 돌보아야 할 의무가 있다 하더라도 나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들을 돌보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내가 돌보아야 할 대상은 나 자신과 나와 가까이 살고 있는 내 이웃입니다. (좀 더 그릇이 큰 사람들은 그의 돌봄이 될 대상의 바운더리(boundry)를 점차 넓혀 갈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므로 열과 성을 다하여 하늘의 뜻을 내 마음에 담아 이웃을 사랑해야 하지만

그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저절로 이웃을 사랑할 수 있다면 왜 성경에서 두 조항을 따로 두었겠습니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마태복음 22장 37절~40절


어쩌면 우리가 소유한 모든 것의

제공자이신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우리의 이웃을 사랑하는 것보다 조금은 더 쉬운 일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나님은 절대 권력자이시고 권능자이시니, 게다가 우리에게 사랑까지 아끼지 않고 주시는 분이시니 신의 존재를 인정하는 자라면 그분에게 승복하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그분의 우리를 향한 사랑을 마다할 아무런 이유가 우리에겐 존재하지 않으리라 봅니다.

우리가 우리의 이웃을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을 행위로 보여 주는 것은 내가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하나의 실질적인 증거가 됩니다. 먼저 가장 가까운 이웃인 눈앞에 보이는 부모님이나 형제자매를 진심을 다하여 사랑하여야 하겠습니다. 사실 저는 이조차도 가끔 버거울 때가 있었다고 지금 이 자리에서 고백합니다. 그들을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이라면 그 보다 멀리 있는 다른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우니 적어도 가까이 있는 나의 부모, 형제를 사랑하려고 노력은 해야 합니다.


내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나에게 잘하고 내 마음에 쏙 드는 이웃만 사랑해도 된다면 누가 그 계명을 지키지 못하겠습니까. 그러나 어딘가 어설퍼보이고, 가까이해 봤자 어떤 이득은 커녕 손해만 볼 것 같고, 나만 보면 쌍심지를 돋우는 이웃을 사랑하기란 쉽지 않을 것입니다. 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혈육도 내팽개 치는 세상에 이런 글은 몇 줄 읽다가 버려질지도 모릅니다.


"너나 잘하세요."


하지만 그 어려운 일을 해내어야 비로소 완전한 사랑에 도달할 수 있다니 도전해 볼 가치는 있습니다. 어떤 일을 할 때 인정받기 위해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최소한의 기준은 존재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런 생각을 해보는 겁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은 내 이웃을 내 몸 같이 사랑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곳일 수도 있습니다. 내가 사랑을 주려해도 모두 마음의 빗장을 꼭 채우고 살아가고 있으니 이런 사람들에게 가까이 다가가기란 정말 쉽지 않은 일이 되고야 말았습니다.


내 이웃을 사랑하는 데 있어서의 어떤 방법론 같은 것을 일률적으로 정리하여 보여 주기는 참 어렵습니다. 많은 학자들이나 처세론자들이 다양한 방법을 제시하고 있지만 그 방법을 적절히 사용할 수 없는 사각지대에 존재하는 이들이 너무도 많이 있습니다. 내 이웃의 행복과 안녕을 위해 나의 마음과 수고를 아끼지 않겠다는 각오로 그 어떤 시행착오를 하더라도 끝까지 나의 이웃을 향한 사랑을 실천하겠다는 의지를 불태우며 나아가면서 그 사랑을 실천하면 하나님도 감동하시어 그 길을 밝혀주실 것이라는 다소 추상적일 수 있는 유신론자의 견해를 말하는 것으로 이 글을 마무리해야 할 것 같습니다.


다만 이런 추상적인 생각에서 한발 앞으로 나가 생각한다면 서두에서 밝힌 바와 같이 나도 연약하고 깨어지기 쉬운 육신과 마음을 가지고 이 험하다면 험한 세상을 견뎌내고 살아가고 있으니 나의 주위에 있는 다른 사람들도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고통받고 있는 나 외의 타인들에게 접근해 나간다면 내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조금은 쉬워지지 않을까 감히 생각합니다.


그들이 세상이 주는 그럴듯한 선망의 날개와, 명예의 면류관과, 주체할 수 없이 많은 재산을 가진 자들이라 할지라도 그들도 우리와 같은 혈과 육으로 된 한정된 몸을 가진 자들이니 언젠가는 다른 사람들의 돌봄을 받아야 할 때가 반드시 올터이니 모든 인간은 유약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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