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동구리무'가 무엇인지 전혀 모르는 2030 세대, 어쩌면 40 세대까지의 청년들을 위해 이것에 대한 설명을 좀 해야겠다. 영화나 T. V 드라마를 통해 이 구시대의 언어에 대해 알고 있는 청년들도 더러 있을 수도 있겠으나 그들 대부분이 이 것이 무엇에 쓰이는 물건인지 짐작조차 가지 않을 수도 있다.
일본어에 대해 좀 알거나 전공한 사람이라면 '구리무'가 일본에서는 영어의 크림(cream)에 상당하는 외래어라는 것을 기본으로 알 것이다. 내가 아는 일본어는 대학 신입생 때 교양과목으로 2학기 배운 것이 전부이고 그것도 깐깐한 우리 과 지도교수의 '영어영문학'을 전공하는 학생이 웬 일본어? 프랑스어나 독일어를 선택 헀어야지라는 핀잔을 받을 만큼 일본어와 나와는 약간의 문화적인 거리감이라는 게 있었다고나 할까. 그래도 나는 동동 구리무가 무엇에 쓰이는 물건인지는 알고 있었다.
내가 동동구리무에 관해 왜 이렇게 긴 말을
해야 하는지는 이 말에도 역사적 배경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하하, 역사적 배경? 말이 너무 거창해졌다. 굳이 말하자면 나의 개인적이고도 소소한 역사적 배경 말이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나의 경우는 일본어가 별로 환영받는 언어가 아니었지만 내가 어렸을 때의 고모와 삼촌들의 세대는 일본어에 대한 인식이 나를 포함한 우리 세대와는 판이하게 달랐다. 어린 시절과 청년기를 일본에서 보낸 아버지의 경우는 일본에 대한 적대감이 많았는데도 불구하고 좀 더 일본어에 의존하는 경우가 더했다. 그때는 당연히 일본어 외래어가 영어 외래어보다 더 득세했던 때였다는 말이다. 지금도 드물지만 노인들 중에는 도시락이라고 말씀하시지 않고 대신 밴또라고 하시는 분이 종종 계시지 않은가. 어린아이들도 어묵이라고 하지 않고 오뎅이라고 해도 알아듣는다.
그럼 구리무는 알겠는데 앞에 붙는 동동은 뭐지? 의아할 거다. 이 크림이 아이스크림은 아니라는 것을 조금 눈치 있는 분들이라면 알 것이다. 그때는 아이스크림 같은 것은 가게에 가도 구경할 수도 없었다. 다만 팥이 들어간 아이스께끼(ice cake 혹은 ice cream bar의 Konglish)라는 빙과가 있었을 뿐이었다. 그러니 그 구리무라는 것은 지금으로 말하자면 얼굴에 바르는 영양크림인 것이다. '동동'은 작은 북소리를 가리키는 의성어이다. 화장품 통을 어깨에 메거나 수레에 실은 동동구리무장수가 동네에 들어서면서부터 북을 두드려서 자신이 온 것을 동네 여자들에게 알리는 소리인 것이다. 동동구리무 장수의 단골 고객들은 당연히 대부분이 여자들이었다. 막내고모도 그중 한 사람이었고 용돈이랄 것도 없는 용돈을 아껴 두었다가 구리무 장수의 동동거리는 북소리가 나면 그동안 쓰던 남은 구리무는 다른 통에 긁어 넣고 그 빈통을 가지고 동동구리무장수에게로 달려가 그것을 채워서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그렇게 귀한 돈을 주고 산 구리무는 아껴 쓰는 게 당연했다. 고모의 동네 친구들이 그것을 한 번만 발라보자고 애원을 해도 고모는 그 구리무 통을 친구들에게 쉽게 내주지 않았다. 어쩌다가 마음이 내키는 날에나 그 통을 열어 녹두알 만하게 적은 양을 찍어 선심 쓰듯이 친구의 손바닥에 얹어 주는 것이었다. 그러면 막내고모의 친구는 그 적은 양을 타박하지 않고 그것을 얼굴로 옮겨 바르는 것이었다. 그때만 해도 모든 물자가 귀했던 때라 그런 출처가 어딘지도 모르는 화장품조차도 귀하게 여겨졌던 때였던 것이다.
지금 우리는 모든 물자가 넘치는 과잉 소비를 부추기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런 만큼 경쟁도 심해져 그것이 화장품에도 적용이 된다. 당연히 최근에 출시되는 화장품들은 그전 시대에 생산되었던 그것들과는 품질면에서 비교조차도 할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 우리 막내고모가 애지중지했던 그런 구리무는 지금 여자들에게는 한 번만 발라보라고 아무리 권해도 응하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위생적이지도 않을뿐더러 그 성분마저 의심스러운, 메이커도 불분명한 그런 화장품에 누가 자신의 소중한 피부를 맡기겠는가.
이제 동동 구리무에 대한 나의 짧은 이야기를 듣고 나니 작은북을 앞에다 메고 동동 소리를 내며 동네 초입으로 들어서는 동동구리무 장수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겠는가? 만약 그렇다면 당신은 결코 상상력이 무딘 사람은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