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중반에 시작한 맨땅 헤딩 스포츠 산업 입문서
- 일단 저질러 놓기의 시작, 메디컬 리그 (1)
그 어떤 길도 늘 곧바르지 않고, 늘 밝지 않다.
언덕배기 위치한 낡은 동네 골목골목은 죄다 꺾여 모퉁이 돌아 무엇이 있을지 모르고,
가로등마저 제대로 되어 있지 않다면 길의 끝이 보이지도 않는다.
그러다
"그래, 이런 것을 하고 싶었어"라고 느끼는 순간,
가로등 몇 개가 화악 앞을 밝혀주는 환희를 얻게 된다.
그렇다고 모퉁이 뒤에 무엇이 있는지 알 수는 없지만.
2007년 여름, 내게 그런 순간이 있었다.
2004년과 2005년, 학교의 교수님이 축구 대회를 하나 만들어 주었다.
메디컬리그라는 이름으로 서울권 의과대학생만의 작은 경기였지만,
축구에 미친 이들에게는 충분히 큰 축제였다.
(서울권 7개 대학교 + 대구의 영남대학교)
그러다 갑자기 해외 연수를 떠나신 교수님의 공백을 학생들이 메울 수 있을 리가 만무했다.
급하게 학생들끼리 만들어보자며 가나다 순으로 가톨릭 대학교가 먼저 총대를 맸지만,
전반 끝나면 막걸리를 몇 사발 들이켜는 재미로 축구할 듯한 똥배 나온 조기 축구회 아저씨가 심판을 보며
대회를 엉망으로 만들어 놓았다.
그렇게 대회는 문을 닫는 듯했다.
2007년 1학기가 끝날 무렵, 내 성적은 처참했다.
공부에는 흥미가 없었고, 나 자신이 좋은 의사가 될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았다.
학교 동아리 외에도 두 개의 조기 축구회 팀에서 일주일에 서너 번씩 축구에 빠져 살았다.
대회를 만들고 싶었다.
1.
일단, 전국의 의과 대학 축구부에 무작정 전화를 걸었다.
인터넷에서 축구부 연락처를 찾을 수 있으면 곧바로 전화를 걸었고,
찾을 수 없다면 학교로 전화를 걸어 연락처를 받았다.
대회를 준비하기엔 시일이 급박하긴 했지만, 엄청난 환영이 내게 힘을 주었다.
8월에 대회를 하기로 하고, 준비를 위한 회의 날짜를 잡았다.
40개가 넘는 학교의 참여를 받은 그때가 2007년 5월이었다.
2.
스폰서가 필요했다.
구장을 빌리고, 심판을 섭외해야 했다. 공과 조끼도 마련해야 했다.
지방에서 올라올 팀들은 교통비와 숙박비도 필요하니, 학생들에겐 상당한 부담일 것이다.
축구부 지도 교수님께 연락을 드렸고, 교수님은 축구부의 "큰 형님"이자 무려 병원 원장님을 통해
제약회사를 하나 소개해 주셨다.
제약회사 마케팅 담당자를 설득하기 위해 나름 만반의 준비를 갖췄다.
의대생들의 대회는 별로 매력적이지 않을 것이다.
아직 의사가 되기까지 한참 남은 애송이들.
제약회사의 니즈를 충족시키기 위해 졸업생, 즉 의사들의 특별 경기를 열겠다는 계획과 함께
각 팀에 졸업생들이 최대 3명까지 뛸 수 있도록 규정을 만들겠다는 제안을 했다.
그 외에도 비슷한 유니폼 색을 가질 경우 한쪽 팀이 입을 조끼에 로고를 프린트하고,
각 팀에 나눠줄 생수병에 로고가 프린트된 스티커를 붙이겠다고 약속했다.
지금 생각하면 귀엽고 어설프지만, 학생의 수준에서 생각할 수 있는 나름 합리적인 제안이었다고 생각한다.
3.
대회의 틀을 짜야했다.
다행히 경상권은 자체 친선 대회가 있어, 이를 예선으로 활용하기로 했다.
전라권과 충청권도 각자의 예선 경기를 만들 수 있도록 일정과 형태를 조율했다.
강원도 소재 대학들은 서울-경기권 학교와 함께 예선을 치렀다.
본선에 오르는 학교가 많으면 더 많은 학생들에게 좋은 추억을 만들어 줄 수 있다.
하지만 그만큼 지출이 급격하게 커진다. 무엇보다 구장 대여비와 심판 섭외비가 가장 무섭다.
전국 50개 내외의 의과대학에서 가장 적절한 수를 찾아야 한다.
본선 진출은 8개교.
개최교가 1개 티켓을 가져갈까 했지만, 8장 뿐인 본선 티켓 중 하나를 가져간다는 것은 너무 미안했다.
결국 서울 경기 강원에서 4장, 경상 2장, 전라 충청에서 각 1장씩을 가져가는 것으로 정했다.
개최는 서울 지역 가나다 순으로 시작해 경상권에서 다음 순서를 이어받기로 했다.
전라와 충청이 함께 예선을 치르는 방식이 얘기되기도 했지만,
전체적인 시스템은 아직도 바뀌지 않고 이어져 오고 있다.
아직 내겐 이 대회 자체가 의대생들에게 "월드컵"이자 "챔피언스리그"와도 같은 존재로 인정받고 있다는 자부심이 있다.
하지만 2007년 첫 대회의 결과를 말하자면,
시원하게 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