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진했던 시절 <2020.1.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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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월 3일 복기>






모두 순진했던 시절이었다.

누군가는 여행을 꿈꿨고, 누군가는 복학을, 누군가는 창업을, 누군가는 결혼식을 꿈꿨다. 평화로운 시절이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하는 후회는 나중의 일이었다. 요란했던 연말과 풍성했던 연초에 역사적인 불행은 얄미울 정도로 포커페이스를 유지했다.




비웃지 마시라.

나도 안다. 저 일기를 쓸 땐 얼마나 순진했는지. 먹고 노는 내 모습, 여행을 꿈꾸고, 복학을 준비한 내 모습, 막 제대를 하고 나서 새로운 사람을 만날 생각에 오줌 마려운 개 마냥 조급했던 내 모습을 보면 나도 웃음이 나온다.




누가 말했더라?

‘사람이 신을 웃기려면 계획을 말하면 된다’고 했던 사람이? 가물가물하다. 뭐, 어쨌든 맞는 말 아닌가? 우리는 현재에 갇혔고 미래는 결코 입을 열지 않으니까. 그래서 2017년에 미국 정부가 보건-질병 부서의 예산을 삭감했을 때도, 2019년 중국 우한(武漢)에서 수상한 폐렴이 발견되어 수산시장에 대규모 소독이 실시됐을 때도, 2020년 1월 1일 신년을 축복하는 카운트다운 소리와 타종 소리, 폭죽 소리가 울려 퍼졌을 때도, ‘코로나(Covid-19)’라는 불행을 예상한 사람은 당연히 없었다. 그래, 신이 웃을만하다.




china-2249192_1920.jpg 중국 우한의 시장




1월의 첫째 날,

사람들이 벌써 2020년 하반기 계획을 짜고 있을 때, 이미 중국 국가위생 건강위원회 전문가 팀은 우한(武汉)에 도착해 조사를 하고 있었다. 그곳에 열이 나는 사람이 너무 많았으니까. 한편, 중국 국가보건 위원회는 WHO(세계보건기구)에게 모든 것이 잘 통제되고 있다고 보고했고 중국 정부 관료들은 의사와 과학자에게 주의를 줬다. 입을 닫으라는 뜻이었다.




그리고 1월 6일,

중국의 가오푸(高福) 질병통제센터 주임이 중앙 지도부에게 요구했다. 예방 경계 태세를 2급으로 올려야 한다고. 그때가 시진핑 주석이 신종 바이러스 출현을 최초로 보고받은 때였다. 하지만 중국 지도부는 이 바이러스를 과소평가했다. 그들이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건 더 나중인 1월 20일이었다.




신종 바이러스는 중요한 문제가 되지 못했다.

트럼프 정부는 탄핵 문제로 머리가 아팠고, 11월 대선에 모든 신경을 쏟았다. 중국 정부는 1월에 있을 명절(춘절) 행사, 3월에 있을 각종 정치회의, 그리고 미국과 치열한 무역 협상을 신경 쓰느라 바빴다.




신종 바이러스는 과소평가됐다.

질병 전문가들도 한동안 헛발질을 해댔다. 화이자 CEO 앨버트 불라(Albert Bourla)는 새로 등장한 바이러스가 ‘글로벌’한 문제가 될 거라 생각하지 못했다. 감염병 최고 전문가 앤서니 파우치(Anthony Fauci) 박사나 미국 보건복지부 장관 알렉스 에이자(Alex Azar)는 기자들 앞에서 이런 식으로 말했다. ‘이 바이러스는 미국이 두려워할 만한 게 아닙니다.’, ‘미국인이 감염될 위험은 낮습니다.’ WHO(국제 보건 기구)와 CDC(미국 질병예방통제센터)는 아프지 않은 사람이 반드시 마스크 착용을 하는 걸 권고하지 않았다. 나중엔 WHO는 ‘인간 대 인간 전염’이라는 증거를 받아들이지 않고 팬데믹(범 유행 전염병)의 가능성을 부인하며 WHO 공식 트위터에 이렇게 못을 박았다.




WHO 트윗.PNG 출처: 트위터




‘사실: #코로나19는 공기로 전파되지 않는다(#FACT: #COVID19 is NOT airborne)’.




모두 순진했던 시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