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난다.
비행기에 전염병이 묻어왔다는 소식. 그게 시작이었다. 사실 놀라지 않았다. 까놓고 얘기하자면 잊을만하면 나타나는 게 전염병 아니던가? 사스, 메르스, 신종플루, 에볼라, 지카바이러스. 때로는 우연으로, 때로는 필연으로 퍼져서, 잠깐의 소란과 희생을 만든 다음, 곧 잦아들었던 그런 병들. 그래서 새로운 병이 한국에 상륙했다며 언론이 떠들어댔을 때 언론이 호들갑을 떨며 조회 수 장사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모두 알다시피 그건 멍청하고 오만한 생각이었다. 아, 기억난다. 초기 코로나는 저승사자가 따로 없었다.
1월 20일,
중국 국무원 회의에서 ‘이 바이러스’가 심각한 것이라는 말이 나왔고 시진핑 주석과 리커창 총리는 “단호하게 병의 확산을 억제하라”고 당부했다. 제2형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코로나바이러스(SARS-CoV-2)를 공식적으로 인정한 것이다.
1월 23일,
WHO는 비상사태를 선포할 단계는 아니라고 발표했다. 하지만 중국은 후베이성의 우한을 봉쇄했다. 후베이성은 웬만한 나라 크기였고 우한은 인구 1100만 명의 대도시였다.
1월 25일,
드디어 중국의 명절(춘절)이 시작됐다. 그리고 이후 상황은 더 무서워진다. 2월 초까지 중국의 14개 성과 도시가 봉쇄됐다. 스타벅스와 맥도날드와 이케아 매장은 문을 닫았다. 어떤 도시는 인민들의 자가 치료를 막기 위해 약국의 진통제 판매를 금지했고, 어떤 도시는 모든 신호등을 빨간 불로 바꿔 고속도로를 폐쇄했다. 중국 민간단체는 현상금까지 걸면서 후베이성 일대에서 온 사람들을 찾아내려고 했고 후베이성 출신 가족들이 살고 있는 주택에 딱지를 붙였으며 우한 출신은 호텔 투숙을 거부당했다.
1월 28일,
베이징에서 시진핑과 WHO 사무총장이 만났다. 그날 시진핑은 이렇게 표현했다. ‘우한 폐렴은 악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직접 지휘할 것이라며 인민들에게 승리를 약속했다. 하지만 중국 회의론자들은 코로나 바이러스를 중국판 ‘체르노빌’로 여기며 이번 사태가 시진핑을 몰락시키고 미국에 좋은 결과를 가져다줄 것으로 기대했다.
한편, 중국 교민들은 꼼짝 못 했다.
모든 항공편이 붉은색 ‘Cancelled’로 바뀌었으니까. 그들이 나갈 수 있는 방법은 자국 정부의 손길뿐이었다. 상황이 고약하게 흘러간다는 걸 감지한 나라들은 자국민을 구출하기 위해 항공기를 보냈다. 기억난다. 그때 우한은 전쟁의 이미지였다. 환자와 시신이 가득했고, 마트 진열대는 텅텅 비었으며, 교민은 초조하게 비행기를 기다렸고, 공항에 모인 전세기와 대피용 항공기는 2차 세계대전 때 ‘덩케르크’에 모인 배들을 떠올리게 했다.
대한민국 정부 전세기도 날아갔다.
덕분에 교민들은 탈출할 수 있었다. 기억나는가? 교민을 천안 격리시설에 수용하려 했지만 천안 여론에 쫄아버린 정부가 진천과 아산으로 계획을 바꿨다는걸. 그러자 이번에 난리 난 건 진천과 아산이었다. 주민들은 둘로 쪼개졌다. ‘우리가 품자’라는 입장과 ‘우리가 만만하냐’라는 입장으로. 반대하는 주민들은 트랙터를 끌고 길을 막았다. 설득을 하러 진천에 도착한 보건복지부 차관은 물병을 맞고 머리채가 잡히고 옷이 뜯겨져 나갔다. 그때 뜯겨나간 노란색 점퍼. 그건 코로나 초반의 공포를 상징하는 탁월한 은유였다.
1월 30일,
세계보건기구(WHO)는 '국제적 공중보건 비상사태(PHEIC)'를 선포했다. 그리고 1월 31일, 영국이 EU에서 탈퇴하던 날이자, 영국 총리가 ‘새로운 막이 오르는 순간’이라고 말하던 날, 영국에서 첫 번째 확진자가 발생했다. 그리고 다음날 스페인과 스웨덴에서도 첫 번째 확진자가 발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