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만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초반엔 WHO(세계보건기구)와 ECDC(유럽 질병예방통제센터)는 유럽보다 중국과 아프리카를 더 걱정했다. 중국 회의론자들은 코로나 바이러스를 중국판 ‘체르노빌’로 여기며 이번 사태가 시진핑을 몰락시키고 미국에 좋은 결과를 가져다줄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결과는?
중국과 아프리카만의 불행이 아니었다. 그리고 보건 위기만이 아니었다. 훗날 IMF 총재와 WHO 사무총장은 스위스 제네바에서 공동 브리핑으로 이렇게 말한다. ‘세계 보건위기와 세계 경제의 운명은 분리될 수 없는 관계다’.
한국 경제는 작살이 났다.
중국은 가장 가까운 나라이자, 수출-수입의 기둥이요, 기업들이 공장을 지은 곳이었다. 중국과 한국의 운명은 ‘분리될 수 없는 관계’였다. 그래서 그들의 불행이 우리의 불행이었다.
방역정책은 독한 약과 같았다.
모든 걸 죽이려고 했으니까. 코로나도, 매출도 모두. 하지만 결국 살아남은 건 코로나였고, 결국 죽은 건 매출이었다. 명동에 외국인, 대학에 학생이, 거리에 직장인이 증발했다. 봄 축제를 준비했던 지방 명소에 바리케이드가 쳐졌다. 오프라인 신용카드 결제 수가 뚝 떨어졌다. 식당 주인, 극장 주인, 술집 주인, 전시회 주인, 매점 주인, 소매점 주인. 체육관 주인, 모두가 신음 소리를 내며 폐업을 마주했다. 몇몇은 후려치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고 아르바이트생을 해고하며 버텼지만 몇몇은 그래도 버티지 못하고 보따리를 싸고 떠날 수밖에 없었다.
아직도 기억난다.
거리가 텅 빈 영화 세트장처럼, 시시한 동물원처럼 변했다. 도시의 교환은 ‘보이지 않는 손(님)’과 함께 사라졌다. 식당 주인은 끔찍한 대기실에서 세월아, 네월아, 월세야를 부르고, 포크와 수저는 말없이 누워서 불길한 휴식을 취했다. 카페의 의자는 장작을 닮아갔고, 지저분한 노동의 흔적은 추억이 됐다.
아직도 기억난다.
일상이 가라앉은 거리에 ‘임대’라고 쓰인 텅 빈 공간, 메울 수 없는 공간의 절망. 그리고 은행의 노예가 된 주인들. 울상이 된 그림자들이 셔터를 내리고 서성거렸다. 정체성을 잃은 사장은 간판 스위치를 끄고 배달이나 대리운전을 했다. 시간이 갈수록 간판은 어둠을, 건물은 여백을, 거리는 고양이만 아는 골목길을 닮아갔다.
언론은 안 좋은 말만 쏟아냈다.
‘방역과 경제의 대립’, ‘텅 빈 명동’, ‘잔혹한 수준’, ‘거리의 곡소리’, ‘상인들의 우울증 호소’, ‘최악의 실물경제’. 상인들은 매일 고민했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지? 그리고 이건 언제까지 계속되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