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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년홈즈 Sep 15. 2022

오줌 한방울 340원!

집 나가면 똥오줌 잘 가리기

오마이뉴스 연재 중: 중앙아시아의 알프스 키르기스스탄에 가다

http://omn.kr/1zun2


'아, 시원하다. 340원 벌었다.'


인천공항에 내리자마자 달려간 화장실에서 볼 일을 보면서 속으로 외쳤다. 그동안 일상에서 아무 생각 없이 들락거리던 우리 공항 화장실이 그리 고맙고 자랑스러울 수가 없었다. 나라 떠나면 다 애국자가 된다더니 일상으로 대하던 화장실마저도 이리 자랑스러운 것이었는지 새삼스러워졌다. 

▲ 반가운 TOILET 아는 글자 TOILET을 보니 얼마나 반가운지... 집 나가 보니 일상이 고마움으로.

      

▲ 화장실 키르기스스탄 문자를 모르니 봐도 전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화장실 입장료는 20솜입니다.

나에게는 별 거 아니었던 배변 문제 해결이 키르기스스탄에 가니 신경 쓰이는 문제가 되었다. 특히 나는 남들보다 배변활동이 빈번한 과민성대장증후군을 갖고 있어 항상 화장실 문제가 여행을 방해하였다. 화장실 에피소드는 내 여행의 단골 메뉴다. 이번 여행도 예외는 아니었다.


일단 화장실 찾는 것부터가 힘들었다. 대부분 영어권 국가를 여행할 때에는 그 나라 언어를 잘 몰라도 일단 눈으로 '화장실(Toilet)'을 찾거나 서툴러도 '화장실이 어디인가요(Where is the toilet?)'라고 물어보면 큰 불편함 없이 해결할 수 있었는데 키르기스스탄에서는 이런 방식이 전혀 통하지 않았다. 일단 러시아 문화권에 문외한인 나는 생소한 문자 자체를 전혀 알아보지 못했다.


생소한 러시아 문자나 키르기스 문자로 표기돼 있어 도대체 어디가 화장실인지 알 수가 없었다. 한두 마디 영어도 통하지 않으니 일단 급하면 가이드에게 배운 대로 '뚜알렛? 뚜알레?'만 외쳤다. 발음이 부정확해 못 알아들으면 손짓 발짓으로 간신히 해결하곤 했다.              

▲ 알라투 광장 근처 공원 유료화장실 대중들의 이용이 빈번한 거리 공원 공중화장실도 유료화장실이다. 입장료는 20솜.


여기에다 키르기스스탄은 대부분 공중 화장실이 유료 화장실이었다. 식당이나 호텔 내 화장실이 아니라면 대부분 화장실은 10~20솜(대부분 20솜=한화 340원, 2022년 7월 기준)을 내야 한다. 대중들이 수없이 이용하는 큰 공원인데도 예외 없이 유료 화장실이었으며 큰 쇼핑몰 내 화장실도 유료인 경우가 많았다. 배변 충동을 느낄 때마다 이런 생각이 올라왔다. '이 나라에서는 돈 없으면 똥도 맘대로 못 싸겠군.' 

하긴 키르기스스탄뿐만 아니라 대부분 나라들은 공중화장실 이용이 공짜가 아니다. 대부분 동남아 나라들도 그렇고 유럽의 나라들도 그렇다. 여행 후 친구를 만나 유로 화장실 이야기를 했더니 유럽에서 화장실 때문에 기분이 안 좋았다며 맞장구를 쳐주었다.

"유럽에서 맛난 맥주 마시고 1유로씩이나 내고 싸는 오줌이 제일 아까웠어."

"이 양반들 우리나라에 오면 우리가 낸 만큼 별도로 화장실 이용 요금 받아야 해." 

흥분하여 덧붙인다.  

▲ 키르기스스탄 맥주 아르빠 여행 중 한 잔의 맥주는 여행자의 특권이다.

여행자의 특권 중 하나는 일상에서 누리지 못했던 것들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여행 중이라면 특권으로 항상 점심부터 맥주를 달고 다녔던 나는 이번 여행에서는 화장실 사고가 날까 봐 최대한 절제해야 했다.


화장실 한 번 가려면 20솜짜리 지폐를 공동경비 담당 친구에게 달라고 해야 해서 번잡스럽기도 했고, 돈이 아깝다는 생각도 들어 참거나 아예 호텔에서 해결하고 출발하는 식이었다. 특히 장거리 이동이 많았던 이번 여행에서는 더욱 조심스러웠다. 하지만 여행의 묘미는 의도치 않은 사건사고 아니겠는가?

▲ 키르기스스탄 전통음식 아슐란프 아슐란프: 우리나라 냉면과 비슷한데 시원하며 맛이 독특했다. 카라콜에 가면 한번 꼭 먹어보길 추천한다.
▲ 키르기스스탄 전통공연 카라콜 식당에서 식사를 하며 공연을 관람하는 행운을 누렸다.


여행의 묘미는 사건사고

스카즈카 협곡의 신비로움과 제티오구즈 계곡에서 트레킹과 승마체험 등 키르기스스탄의 멋에 흠뻑 빠진 우리는 약간의 흥분을 안고 아담한 도시 카라콜에 도착하였다. 저녁은 '다스토르콘'이라는 키르기스스스탄 전통음식 식당에 갔다. 그곳에서 우리는 아슐란프, 샤슬릭, 보소 라그만 등 전통음식과 키르기스스탄 맥주를 마시며 덤으로 키르기스스탄 전통 음악을 즐길 수 있었다.

베르멧(여가수 이름)과 빌렉(남자 연주자)의 연주와 노래에 같이 춤도 추고 하하호호 깔깔 대다 그 흥에 벗어나지 못해 숙소까지 이어져 과음으로 마무리되었다. 과음의 문제는 후폭풍이다. 


여행 4일 차 되던 날, 우리는 카라콜(Karakol: 이식쿨주의 주도)에서 촐폰 아타(Cholpon Ata)로 반나절 이상을 가야 하는 일정이었다. 아침에 눈을 뜨니 비가 내리고 있었다. 아침부터 속이 부글거리는데 내 맘을 아는지 모르는지 누군가 '비도 오는데 모닝커피 한 잔'을 외친다. 이곳에 와 커피를 제대로 마신 기억이 없어 나도 덩달아 '콜'을 외쳤다.


속이 부글거리거나 말거나 이국 땅 카페에서 비를 보며 마시는 커피는 일품이었다. 하지만 출발한 지 1시간쯤 지났을 무렵 사달이 났다. 아랫배가 부글거리며 계속 배변욕구가 올라왔다. 앞으로 2시간 이상을 더 달려야 한다고 하는데 큰일이었다. 이마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복식호흡을 하며 참을 데까지 참았지만 거의 한계점에 다다랐다. 나도 모르게 외마디 비명이 흘러나왔다.

"아 급해요. 빨리" 


▲ 커피 한 잔의 여유? 과음 후 커피는 아랫배에 심각한 부작용을 부른다.


급똥에 질척대는 길을 내달리다.

다행히 작은 마을(도시)이 보였다. 도시를 한 바퀴 도니 마을 중앙에 번듯한 쇼핑몰이 나왔다. 주차를 하고 가이드와 함께 그곳을 향해 질척거리는 길을 내달렸다. 가이드 없이는 화장실도 못 찾으니 가이드도 따라 뛸 수밖에 없었다. 쇼핑몰 문을 밀고 들어가 물으니 손사래를 친다. 아뿔싸! 그 건물에는 화장실이 없다고 한다. 자고로 '급똥'이라는 놈은 묵묵하게 견디다가도 나갈 곳을 염두해 두면 더 설레발을 친다.


나의 공포스러운 얼굴을 본 가이드는 손짓 발짓해가며 다시 어떤 가게 주인아주머니에게 매달리니 무심히 건물 뒤로 돌아가라는 손짓을 했다. 근데 웬걸 그곳에는 화장실 같은 건물은 보이지 않았다. 목공소 공장 같은 건물만 덩그러니 있었다. 점점 변해가는 내 낯 빛에 가이드는 무작정 공장 안으로 뛰어들었다. 맘씨 좋게 생긴 아저씨와 뭐라 뭐라 하더니 손짓으로 날 불렀다. 숨 쉴 틈도 없이 가리키는 쪽으로 냅다 뛰었다. 생각할 겨를도 없이 냄새가 코를 찌르는 문을 열고 뛰어들었다. 


'휴우~' 

안도의 긴 한숨이 저절로 나왔다. 급한 불을 끄고 가만히 돌아보니 딱 30년 전 우리 집 뒷간 같은 화장실이었다. 이국 땅 뒷간에 엉덩이를 까고 앉아 있는 내 모습이 우습고 왠지 초라해 보였다. 몇 년 전 미얀마 우 베인 다리(U-Bein Bridge)에서 다리길이 무시했다가 바지에 큰일을 치를 뻔했었는데 또 다시 이런 사태를 겪고 나니 앞으로 여행 시 내가 지켜야 할 기준이 명확해졌다.


 '집 나가면 똥오줌 잘 가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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