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보면 후회할 미얀마의 대표 얼굴, 세 번째-미얀마의 심장 인레 호수
'미얀마는 인레의 선물이다.'
고대 그리스의 역사가 헤로도토스가 나일강을 처음 만나 외쳤다는 '이집트는 나일강의 선물이다'라는 말이 떠올랐다. 눈앞에 펼쳐진 광활한 호수, 그 위에 기대 사는 수많은 소수민족, 호수 위에 펼쳐진 신기한 수상 농장들, 인레 호수를 탐방하는 동안 뭔지 모를 풍요로움을 느끼며 자연스럽게 '미얀마는 인레의 선물이다'라는 말이 조합되었다.
양곤에서 오후 7시에 출발한 심야 고속버스는 장장 12시간을 달려 오전 7시에 인레 호수가 있는 낭쉐에 도착했다. 밤새 켠 강력한 에어컨에 상상을 초월하는 버스 안의 추위와 울퉁불퉁 비포장 도로의 흔들림으로 속은 울렁울렁, 다리는 오들오들 말이 VIP버스지 그야말로 고난의 행군이었다.
미명에 마주한 인레는 무겁고 짙게 깔린 안개에 묻힌 체 뭔지 모를 신비감으로 여행자를 빨아들였다. 터미널에 도착하니 예약한 게스트 하우스 젊은 부부가 우리를 반겼다. 젊은 부부의 오래된 차를 타고 뿌연 물안개 속을 헤쳐 인레로 들어갔다. 문득, 김승옥의 <무진기행>에서 주인공 윤희중이 고향 땅으로 스며들어가는 느낌이 이런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안개다.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나서 밖으로 나오면, 밤사이에 진주해 온 적군들처럼 안개가 무진을 삥 둘러싸고 있는 것이었다. 무진을 둘러싸고 있던 산들도 안개에 의하여 보이지 않는 먼 곳으로 유배당해 버리고 없었다. 안개는 마치 이승에 한(恨)이 있어서 매일 밤 찾아오는 여귀(女鬼)가 뿜어 내놓은 입김과 같았다."
- 김승옥의 <무진기행>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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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의 심장 인레 호수
날이 밝아오자, 미얀마의 '무진'은 어느새 인레 호수 속으로 자취를 감추고, 광활하게 펼쳐진 풍광이 어머니처럼 우리를 반겼다. 호수를 처음 만났을 때 먼저 그 어마어마한 규모에 놀랐다. 인레 호수는 해발 875m 고원에 있고, 남북으로 22km 동서로 11km에 이르는 거대한 산정호수다. 미얀마 중심부에 이런 어마어마한 호수가 자리 잡고 있다니, 인레는 미얀마의 심장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첫 일정은 게스트하우스 주인의 소개로 일일 투어 보트를 하기로 했다. 가이드 겸 운전수와 보트를 타고 인레 호수 곳곳을 탐방하는 코스였다. 아침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서둘러 보트에 올라 인레 호수 품으로 파고들었다. 어느 곳을 방문할 것인지 몇 시에 돌아올 것인지는 한 마디로 운전수 마음이었다. 물론 가고 싶은 곳을 말하면 데려다준다는데 우리 일행은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갈까 봐' 일정을 사공에게 맡기기로 했다.
아침나절 선착장은 투어 보트 엔진 소리로 요란했다. 밤새 이곳저곳에서 몰려온 여행자를 실은 보트들은 비슷한 시각에 하나 둘 인레 호수 안으로 출발했다. 날렵하게 뻗은 4~6인용 투어 보트는 하나같이 보트 뒤편에 힘 꽤나 쓰는 자동차 엔진이 장착되어 있었고 속도를 올릴 때마다 요란한 소리로 자신의 속력을 자랑했다. 힘차게 쭉쭉 뻗어 나가는 보트에 기대 상쾌하게 얼굴을 스치는 바람 맛을 보았다. 청각은 정신없었지만, 보트가 던진 파동이 광활한 호수에 퍼져 나가는 모습을 보니 가슴이 따뜻해지며 잔잔한 평화로움이 전해왔다. 호수 주변에 펼쳐진 황홀한 풍광은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을 만큼 감미로웠다. 잠깐의 경험만으로도 많은 여행자들이 왜 인레 호수를 진정한 휴식처로 꼽는지 알 수 있었다.
발목으로 노 젓는 인레의 어부들
호수 초입으로 접어들자, 대나무 통발을 들고 발로 노를 젓는 낯익은 어부들이 우리를 반겼다. 호수에서 고기를 잡으며 살아가는 인따(Intha)족이었다. 인따는 '호수의 아들'이라는 뜻이다. 이들이 이렇게 서서 발로 노를 젓는 이유는 인레 호수가 워낙 넓어 서 있어야 멀리 있는 지형지물을 볼 수 있고 그래야 방향 감각을 잃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인따(Intha) 족 어부들 모습은 미얀마 여행안내서 사진 속에서 보았던 모습 그대로였다. 반가운 마음에 멀리서 몇 장 찍고, 가까이서 몇 장 더 찍을 생각이었다. 그러나 근처에 가서 카메라를 들었다가 포기하고 말았다.
“원 달러! 원 달러”
순수하게만 보았던 인따족 어부들의 그 한마디에 사진기를 내려 버렸다.
‘이제 인레의 어부는 물고기 대신 관광객을 잡는다.’
고기를 잡으며 살던 어부들은 이제 관광객을 상대하는 것이 더 수익성이 좋다는 것을 깨달은 듯했다. 아름답게 보았던 모습들이 깨지면서 갑자기 씁쓸해졌다.
호수 위 떠 있는 텃밭에선 방울방울 토마토가
발로 노를 젓는 것만큼 인따족의 독특한 삶의 방식은 바로 '쭌묘(Kyun myaw)'라고 불리는 떠 있는 농장이다. 쭌묘는 호수 주변 갈대와 흙을 이용해 밭을 만들고 대나무의 부력으로 물에 띄워 농사를 짓는 방식이다. 호수 중앙으로 들어가니, 긴 장대를 이용해 수초를 건져 내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가이드는 수상 농장에서 비료 대용으로 사용하는 것이 수초라고 설명했다. 이수상 농장은 토마토를 재배하는데 비료나 농약을 전혀 쓰지 않는다고 한다. 그야말로 친환경 유기농 토마토다. 낭쉐 시장에는 이곳에서 난 토마토가 많았는데, 안심하고 사 먹어도 될 듯했다.
붓다의 선물로 살아가는 수상족
인레 호수 위에는 수상 농장에서 토마토 농사를 짓거나 고기를 잡는 어부도 있지만, 관광객을 대상으로 가내수공업으로 만든 특산품을 파는 사람들도 많았다. 보트가 도착하면 대부분 상점에서 어린 소녀가 나와 짧은 영어로 인사를 하고 차를 내어 주며 반갑게 손님을 맞는다. 파는 물건도 각양각색이다. 담배 잎을 둘둘 말아 만든 잎담배와 닥나무로 만든 종이, 미얀마 전통 수공예 우산이나 나무로 만든 조각품 등 각종 공예품, 은이나 금을 세공한 목걸이나 귀걸이 등 액세서리 등을 팔고 있다. 여러 특산품점 중 개인적으로 인상적인 곳이 두 곳이나 있었다.
붓다가 준 옷감
운전수 맘대로 가이드가 처음 데려간 곳은 수상 가옥 직물 공장이었다. 이곳은 직물을 짜서 파는 공장으로 보여 그저 그랬는데, 설명을 들어보니 아주 신기했다. 옷감 소재가 연꽃 줄기에서 뽑아낸 가느다란 실이었다.
직접 연꽃에서 실을 추출하는 과정과 직물을 짜는 과정을 보여주었는데 물끄러미 보고 있자니, 붓다의 나라 미얀마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꽃으로 짠 옷감은 '붓다가 준 선물이다'라는 말이 떠올랐다. 불교를 상징하는 연꽃이 곧 그들의 밥줄이 되어 주고 있으니 말이다. 공장 옆 호수 위로 솟아 오른 연꽃 봉우리와 붓다는 미얀마 사람들에게 그저 종교적인 의미만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붓다는 미얀마 사람들의 삶이었다.
친절하게 설명하는 예쁜 소녀 때문에 한 개라도 사려고 했는데, 가이드의 출발한다는 소리에 핑계 삼에 도망치듯 나왔다. 복잡하고 어려운 과정이라 그런지 직물 가격은 비싼 편이었다. 하나 사 올 걸 하는 아쉬운 생각도 든다.
목이 긴 고산족 여인, 직접 봤더니
텔레비전이나 책에서 목에 겹겹이 링을 두르고 있는 소수민족 여인들의 모습을 한 번쯤 보았을 것이다. 바로 고산족인 ‘빠다웅족’이다. 빠다웅은 '목이 긴 사람'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목에 링을 두르는 이유는 다른 종족으로부터 여자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는 설과 산짐승들의 공격에 살아남기 위해서라는 설이 있다. 어떤 것이 진짜인지 모르겠지만, 실제로 보니 아무리 전통이라도 말리고 싶었다.
빠다웅 족은 원래 고산지대에 사는 부족인데 궁핍한 생활을 벗어나기 위해 이렇게 호수가로 내려와 관광객을 대상으로 물건을 팔며 살아가고 있었다. 가이드의 안내로 어느 빠다웅족 수상가옥을 방문하니, 책에서 보았던 옷감을 짜고 있던 낯익은 할머니가 우리를 반겼다.
보트 선착장에는 빠다웅족 어린 소녀 둘이 있었는데, 사진기를 들자마자 삶에 지친 무표정한 얼굴로 포즈를 취해 주었다. 높은 산에서 살던 빠다웅족 여인들은 이제 호수로 내려와 관광상품이 되었다. 돈 때문에 조상들이 살던 삶의 터전을 버리고 조상들이 물려준 전통을 입은 채 스스로 상품화되어 가는 모습을 보니, 왠지 미안하고 불편한 마음이 들어 빨리 그곳을 벗어나고 싶어 졌다.
단지 하루 이틀 보트 투어로 그 넓은 인레 호수에 얽혀 살아가는 수많은 미얀마 사람들의 삶을 다 들여다볼 수 없다. 본다 해도 겉만 보는 것이지 그 속을 다 보았다 할 수 없다. 그저 여행자의 호기심 어린 눈으로 슬쩍 바라본 인레 감상을 말할 뿐이다. 드넓은 인레 호수 주변에는 크고 작은 수많은 마을이 있다. 다시 찾게 된다면 그 마을 중 몇 곳이라도 들러 며칠이라도 머물며 그들 삶을 직접 경험해 보고 싶다.
인레 지역에 들어가려면 바간처럼 입장료를 내야 한다. 지난번은 터미널에 내려 낭쉐로 들어가는 길 검문소 비슷한 곳에 냈었고 깔로 트레킹으로 인레 지역에 들어간 이번 여행에서는 트레킹 마지막 코스에서 입장권을 구매했다. 5년 전 10$를 내고 무지 비싸다고 투덜거렸는데 다행히 여전히 15,000짯(10$) 이었다. 입장권 가격이 5년 사이 5~6$ 오른 바간 지역을 생각하니 이번에는 괜히 싸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얀마 물가를 생각하면 15,000짯이 결코 싼 가격은 아닌데 말이다.
비싼 입장료 본전 생각에 구석구석 인레를 맛보고 싶어 마지막 날 초저녁부터 낭쉐 시내를 어슬렁거렸다. 천천히 걸으며 미얀마 냄새를 맡고 미얀마 맛을 보며 미얀마를 느꼈다. 낭쉐 시내 어느 골목에 있던 허름한 술집에 들러 미얀마 사람들과 섞여 미얀마 위스키와 미얀마 비어로 조제한 폭탄주를 마시니 금세 취기가 올라왔다. 알딸딸한 기분으로 미얀마 하늘에 총총히 박혀 있는 미얀마 별을 보았다. 내일이면 떠나야 한다는 서운한 맘에 기분이 가라앉았다. ‘언제 다시 올 수 있을까?’ 허전한 마음으로 시내를 걷는데 처음 들어올 때 반겼던 인레 호수의 뿌연 무진이 거리를 감싸며 나를 품었다.
'붓다가 준 선물 인레! 인레는 미얀마의 선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