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 길이 무시했다가 하마터면 바지에다가...

안 보면 후회할 미얀마의 대표 얼굴, 네 번째 - 우 베인 다리

by 청년홈즈

"갱갱이 쪽다리 밑에서 주워 왔지."
성교육이라는 개념이 희박했던 시절, 호기심 덩어리 꼬맹이들은 시도 때도 없이 난처한 질문을 던져대곤 했다.

"엄마 엄마! 난 어디서 생겼어? 엄마 엄마! 난 어디서 나왔어?"

이럴 때마다 우리 동네 엄마들은 ‘갱갱이 쪽다리 밑’이라는 궁색한 대답을 내놓곤 했다. 가끔 고만고만한 동네 꼬맹이들이 모여 진짜 출생지가 어딘지 진지한 토론장이 서면 ‘엄마 배꼽에서 나왔다’는 '배꼽파'와 ‘갱갱이 쪽다리 밑’에서 주어왔다는 '쪽다리파'로 갈려 결론이 나지 않았다.

‘갱갱이’는 ‘서산’을 ‘스산’이라 발음하듯 ‘강경’의 충청도식 발음이다. ‘갱갱이’는 18세기 중엽 이후 국내에서 가장 큰 신흥 상업도시였고, 한 때 조선 후기 3대 시장 안에 들었던 큰 도시였다. 그러니까 ‘갱갱이 쪽다리 밑에서 주워왔다’는 말은 큰 시장 다리 밑에서 너를 주워 왔다고 놀리는 말이다. 동네 개울가 ‘징검다리’만 알던 산골 꼬맹이들도 그렇게 '다리'라는 개념을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다리는 소통의 고리요 연결 통로다
다리의 사전적 의미는 도로, 철도, 수로 등의 운송에 장애가 되는 지형을 건너거나 통과할 목적으로 세우는 구조물을 말한다. 인간의 편의를 위해 세워진 다리는 원래 목적인 교통수단을 넘어 한 도시의 문화유산이 되기도 하고, 상징 조형물로 문학과 예술작품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또 분단의 아픔을 담은 임진각 철교처럼 정치 사회적 상징물이 되기도 한다.

현대에는 다리 건설 기술이 그 나라 건설 기술의 평가기준이 되기도 한다. 그런 이유로 많은 나라에서는 '세계 최장교 건설'이니 '세계 최고층 다리' 건설이니 하며 유명세를 위해 끝없는 경쟁을 벌이고 있다.


고대 로마 사람들은 '다리는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상징'이라 여겼다. 우리나라 대부분 사찰 앞에는 다리 하나쯤 놓여 있는데 이는 극락 세상과 현실 세상을 연결해주는 의미를 갖는다고 한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다리는 하늘과 땅, 극락 세상과 현세를 이어주는 연결고리 역할로 단순한 교통수단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이처럼 다리는 어떤 대상들을 이어주는 연결고리다. 이승과 저승을 이어주고, 천국과 지옥을 연결해 주며 이 마을과 저 마을을 연결해 준다. 고로 세상의 모든 다리는 소통의 고리이며 두 세상을 연결하는 통로다.

우6.jpg ▲우 베인 다리(U-Bein Bridge) : 티크 나무로 만들어진 가장 오래된 목조 다리


티크로 만들어진 가장 오래된 목조 다리
미얀마에도 세계 어느 유명 다리에 뒤지지 않는 명성이 자자한 다리가 있다. 이 다리는 세계 최장교이거나 최신식으로 지어진 다리는 아니다.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나무로 만든 세계에서 가장 길고(1.2km) 가장 오래된 낡은 다리일 뿐이다. 그럼에도 사진 좀 찍는다 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석양이 걸려 있는 이 다리를 보고 싶어 한다니 그 유명세는 세계 어느 다리 못지않다.

바로 '우 베인 다리(U-Bein Bridge)' 얘기다. 가기 전 멋진 다리라고 충분히 들었고 현지 가이드의 자자한 칭송에 '다리 하나 가지고 너무 호들갑 아닌가?' 하는 의구심도 가졌었다. 하지만 다리를 직접 만났을 때, 왜 사람들이 '우 베인 다리'를 그렇게 칭송하는지 금방 알 수 있었다.

우 베인 다리는 지금부터 약 170여 년 전(1849~1851) 아마라푸라(Amarapura)의 시장이었던 '우 베인'이 마하간다옹 사원의 스님들이 호수 건너편 마을로 탁발 공양을 갈 수 있도록 보시 한 다리다. 여기에 사용된 목재는 미얀마의 특산품인 티크(teak상록 활엽 교목: 신축성이 작고, 내구성이 크며, 가공하기 쉬움. 가구재ㆍ차량재ㆍ선박재 등으로 쓰임)다. 보도파야 왕은 수도를 이전하면서 잉와 궁전에서 해체된 티크 목재를 아마라프라 왕궁 건설에 사용했다. 이때 남은 티크 목재를 이용해 만든 다리가 바로 넓은 타웅타만(Taungthamam) 호수를 가로지르는 우 베인 다리다.

우7.jpg ▲ 우 베인 다리 : 석양이 걸친 우베인 다리는 황홀하게 아름답다
우8.jpg ▲ 타웅타만(Taungthamam) 호수 : 석양이 물든 호수를 보노라면 평화로움 속애 빠져든다.


우 베인 다리 위의 미얀마 사람들의 삶

우 베인 다리는 미얀마 사람들이 가족 나들이 장소로 가장 가고 싶어 하는 곳 중 하나라고 한다. 이뿐 아니라 우 베인 다리는 스님들의 탁발 공양의 길이 되기도 하고, 결혼을 앞둔 젊은 예비부부의 웨딩 촬영 장소가 되기도 한다. 또한 근처 사는 사람들은 이 호수에서 고기를 잡아 다리를 찾는 관광객을 대상으로 팔아가며 생계를 유지하기도 한다. 우 베인 다리 위를 걸으며 이 다리에 기대어 살고 있는 많은 미얀마 사람들을 보니 단지 오래된 목재다리라서 유명한 것이 아니라, 근 170여 년 동안 호수 위를 지키며 미얀마 사람들의 지혜로운 역사와 현재의 희로애락을 품고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미얀마 만달레이를 찾는 여행자 대부분은 우 베인 다리를 찾는다. 혹시 가거든 사진 찍는 것에 너무 몰두하지 말고 천천히 다리를 걸으며 먼저 그 속에 묻어 있는 미얀마 사람들의 삶을 찾아보길 권한다. 그 삶이 보일 때 170여 년 전 이 다리를 보시한 우 베인 시장의 마음이 보일 것이며, 그 마음의 바탕에 서 있는 석양에 물든 우 베인 다리의 진짜 아름다움이 보일 것이다. 그 마음으로 찍어 얻은 인생 샷은 덤이다.

우3.jpg ▲ 우베인 다리 위 사람들: 웨딩촬영 중인 예비부부, 가족 나들이, 호수에서 잡은 물고기, 독특한 방법으로 낚시하는 강태공들(왼쪽 위에서부터 시계방향)

이 아름다운 우 베인 다리는 나에게 아름답지 못한 굴욕 하나를 안겨 주었다. 아름다운 얘기 하다 갑자기 똥 얘기하려니 뜬금없어 보이지만 혹시 처음 가려는 사람을 위해 정보 차원에서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공개한다. 평소 그리 장이 튼튼하지 않은 나는 우 베인 다리 길이를 무시했다가 하마터면 바지에 똥을 쌀 뻔했다. 다리 중간쯤부터 아픈 배를 부여잡고 식은땀 뻘뻘 흘리며 뛰는지 나는지도 모르게 화장실을 찾아 헤매던 걸 생각하면 지금도 식은땀이 난다. 다행히 간발의 차이로 덜어내긴 했지만 지우고 싶은 아찔한 기억이다. 우 베인 다리에는 중간에 화장실이 없다. 왕복 2.4km 다리 길이를 무시하면 안 된다. 미리 볼일을 해결하고 가야 여유 있는 다리 구경을 할 수 있다. 아무리 다리가 아름다워도 급한 볼 일 앞에선 다리가 아니라 미로일 뿐이기 때문이다.

우.jpg ▲ 우 베인 다리(U-Bein Bridge): 미얀마 사람들이 가족 나들이 장소로 가장 가고 싶어 하는 곳 중 하나다.


다리에 대해 글을 쓰자니 자꾸 어린 시절 들었던 ‘갱갱이 쪽다리’가 생각난다. 사실 난 아직까지도 어른들이 왜 하필 '갱갱이 쪽다리 밑'에서 주워 왔다고 했는지, ‘갱갱이’에는 실제 그 쪽다리가 존재하는지도 잘 모른다. 다시 생각해보니 정말 궁금하긴 하다.
뜬금없이 만달레이 근처 엄마들은 "엄마 나 어디서 나왔어?"라고 물으면 뭐라고 대답할지 급 궁금해진다. 설마 이 말은 아니겠지?


"넌 우 베인 다리 밑에서 주워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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