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의 홀림에 결국, 밉지 않은 소녀 호객꾼

여행자의 나라 미얀마 그 일상의 얼굴, 여섯 번째-재래시장에 가다

by 청년홈즈

"거기 너! 앞으로!"
군기 바짝 든 신병은 목이 터져라 관등성명을 대며 앞으로 튀어 나갔다.
"앞차기한다! 실시!"
조교의 중저음 명령에 쫄아 이를 악물고 앞차기를 했다.
"이것 봐라! 허우대는 촌시러운 게 딱 수색대구만. 어째 발차기는 맹구야! 뒤로 취침!"

젖 먹던 힘까지 다한 앞차기였지만 돌아온 건 기합이었다. 그때 나는 확실하게 알았다. 누가 봐도 나는 촌스럽게 생겼고, 군대는 촌스러운 외모를 선호한다는 것을.


'촌스럽다'는 '어울린 맛과 세련됨이 없이 어수룩한 데가 있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꾸밈없이 투박하고 뭔가 조금은 부족해 보이는 상태를 말한다. 지나간 과거 사진 속 모습을 보면 먼저 떠오르는 생각이 '참 촌스럽다'라는 생각일 것이다. 그 당시는 최고의 멋을 부린 모습이었겠지만 지나고 보면 투박하고 촌스러워 보인다. 본질은 그대로이나 시간이 만든 눈속임이다. 그러니 촌스러운 건 결코 나쁘거나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양곤 국제공항에 첫 발을 디뎠을 때 떠오른 첫 단어가 바로 '촌스럽다'였다. 한 나라의 관문치고는 너무나 소박하고 허름한 모습 때문이었다. 미얀마 여행은 첫인상부터 그렇게 촌스러움으로 다가왔다.

나는 시장을 참 좋아한다. 시장은 정보교류의 공간이자 그곳 사람들의 의식주가 모두 들어 있기 때문이다. 미얀마에서도 여행지마다 시장은 나의 필수코스가 되었다. 기대한 대로 미얀마 시장 속에서 날 것 그대로의 미얀마 사람들 사는 모습을 보며 나는 미얀마의 '촌스러움'에 점점 빠져들었다.


시장1.jpg ▲ 600만 거대도시 양곤의 촌스러움: 가로수와 최신 자동차 조합이 이채롭다.


시장.jpg ▲ 어디일까요? : 양곤 근교의 미용실, 참 소박하고 촌스럽다

거대 도시 양곤의 시장, 정전은 일상다반사

양곤은 인구 600만(2014년 550만, 현재는 600~700만 추정)이 넘는 거대도시다. 이곳에서는 현대화된 재래시장인 유자나 플라자 시장, 보족 아웅산 마켓과 양곤 근교 타욱짜 재래시장을 둘러보았다.

유자나 플라자는 우리나라로 치면 동대문 시장 같은 곳이다. 각종 물품을 도소매 하는 곳으로 거대한 현대식 건물(우리 기준의 깨끗한 건물은 상상하지 말자)로 되어 있다. 이런 현대식 큰 건물도 구경하는 동안 정전이 3~4번 일어나서 미얀마 전기 사정이 좋지 않다는 것을 몸으로 직접 체험하기도 했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다 갑자기 정전이 되었는데 관광객들은 당황하며 어쩔 줄 몰라했지만 대부분 미얀마 사람들은 한두 번 있는 일이 아닌 듯 덤덤한 표정으로 기다렸다.

시장2.jpg ▲ 흥정:미얀마 시장에서 흥정은 기본이다.


시장3.jpg ▲ 보족 아웅산 마켓: 양곤의 명소로 대부분 관광객은 한 번쯤 들르는 곳이다. 시장 구석에서 맛본 모힝가 맛이 끝내줬다.


양곤에서 제일 유명한 시장은 바로 보족 아웅산 마켓이다. 보족(Bogyoke)은 미얀마 말로 장군이라는 뜻이니 아웅산 장군 시장이다. 미얀마 사람들이 아웅산 장군을 얼마나 존경하는지 알 수 있는 이름이다. 이곳은 관광객들의 필수코스일 정도로 많이 알려져 있다. 둘러보니 너무 인위적으로 현대화시켜 놓아서 사람 사는 시장 맛은 덜했다.

기억에 남는 것은 시장 한구석에서 팔던 300짯짜리 미얀마 전통 국수 '모힝가'의 맛이다. 그때까지 먹어본 모힝가 중에는 약간 비린 맛이 나는 것도 있었는데 이곳 모힝가는 담백한 맛이 입에 착 붙었다. 혹시 보족 아웅산 마켓을 방문하는 여행자가 있다면 시장 어디쯤 모힝가 파는 곳에서 한 그릇 해보시라. 국물이 정말 끝내 준다.

시장4.jpg ▲ 째조 마켓: 만달레이 째조 마켓은 미얀마 최대 재래시장이다. 눈길을 끌었던 것은 폐타이어로 만든 생활용품들이었다.


재활용의 달인들이 모인 만달레이 째조 시장
째조 마켓(Zeigyo Market)은 만달레이의 중심이자 미얀마 북부의 물류 중심 시장이다. 크기도 어마어마하게 크고 그곳에는 정말 없는 게 없었다. 미얀마 최대 재래시장이라는 말답게 반나절 넘게 구경했는데도 일부밖에 볼 수 없었다.
째조 시장을 돌다가 본 폐타이어를 재활용하여 만든 쪼리(샌들)와 기타 살림도구들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투박하고 촌스러워 세련된 맛은 없지만 사람 냄새가 풀풀 풍겨 정겹고 좋았다. 재활용에는 그대로 다시 사용하는 '리사이클링'이 있고 한 단계 너머 새로운 디자인으로 재탄생시키는 '업사이클링'이 있는데, 폐타이어 재활용 상품들을 보니 미얀마 사람들이 진정한 '업사이클링'의 고수들이란 생각이 들었다.

우리 아파트 분리수거장에 멀쩡하게 버려진 수많은 물건들이 떠올라 미안하기도 하고 풍요 속에 살면서도 너무 고마움을 모르고 산 것 같아 살짝 부끄러운 마음도 들었다.


시장5.jpg ▲ 제이드 시장: 보석(제이드) 가공을 하는 소년을 보면서 1970년대 청계천에서 일했던 선배들이 떠올랐다.

만달레이에는 이곳 말고도 미얀마 최고의 보석으로 일컬어지는 제이드(옥)를 가공하는 짜와이 제이드 마켓(Jade Market)이 있다. 이곳에는 미얀마 각지에서 모여든 보석 상인들로 열기가 엄청났다. 시장 안을 구경하려면 외국인 관광객은 1달러 정도 입장료를 내야 한다. 우리 일행은 그것을 모르고 들어갔다가 뒤늦게 쫓아온 경비에게 엄청 잔소리를 들으며 시달린 기억이 있다. 그곳 수많은 보석 가공공장의 뽀얀 돌 먼지를 뒤집어쓰고 일하는 어린 소년들을 보면서 우리의 70~80년대 선배들의 모습이 떠올라 마음이 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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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6.jpg ▲따웅지 시장 이모저모

미얀마 현지 물가를 체험한 따웅지 시장

따웅지는 도시 전체가 시장 같았다. 인레 호수에서 북동쪽으로 약 30km 떨어진 따웅지는 해발 1400m의 고원에 위치하고 있다. 미얀마 말로 '따웅'은 산이고 '지'는 크다는 의미이니 '큰 산'이라는 뜻의 고산도시다.
큰길을 따라 올드 마켓과 뉴 마켓인 묘마 마켓(Myoma)으로 이루어졌는데 각종 채소와 과일 등 이곳에도 없는 게 없는 것처럼 보였다. 배고파 찾아 들어간 시장 건물 2층 식당에서 정말 엄청 싼 가격에 푸짐한 음식을 먹으면서 미얀마 현지인 물가를 체험했다.


시장7.jpg ▲ 현지 식당에서 개비 담배를 팔고 있었다. 우리나라 1970~1980년대 보았던 모습이다.


3명이 음식 다섯 종류를 시켰는데(이름 모를 튀김류는 서비스) 3500짯을 냈다. 그 식당에서 흘러간 추억을 하나 발견하였다. 1980년대 학원가에서 흔히 보았던 개비 담배였다. 그곳에서 뜬금없이 만나니 반갑기도 하고 잠시 추억을 떠올리게 했다.
따웅지는 샨주의 주도다. 그렇다면 주로 샨족이 모여 살고 있을 터인데 복장으로 봐서는 여느 미얀마 사람들과 비슷해서 누가 샨족인지는 잘 모르겠고 복장이 특이한 빠오족을 많이 볼 수 있었다.

시장8.jpg ▲ 미얀마 재래시장 바간의 냥우 시장. 시장에 가면 사람 사는 모습을 그대로 볼 수 있다.


소녀 장사꾼의 홀림에 넘어가다.

미얀마 시장은 모두 비슷비슷하지만 가는 곳마다 그 지역 사람들의 특징이 조금씩 묻어나 흥미로웠다. 미얀마 재래시장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호객행위를 잘하지 않는다. 시장 사람들도 눈이 마주치면 부끄러워하면서 살짝 미소를 지어 줄 뿐 사람을 직접 끌어들이려고 하지는 않는다. '저래 가지고 먹고 살겠나' 싶은 생각도 든다.참 어수룩한 장사꾼들이다. 그런데 바간의 냥우 시장 상인들은 조금 달랐다. 다는 아니지만 시장 모퉁이 모퉁이를 돌 때마다 앞을 막아서며 호객행위하는 상인들이 많았다. 바간이 워낙 유명한 곳이라 관광객이 많다 보니 이들도 점점 상술을 터득한 것 같았다.

시장을 한 바퀴 돌고 나오다 구석에서 어느 소녀의 적극적인 대시(?)를 받게 되었다. 미얀마 전통 의상 론지와 티셔츠 등을 파는 가게였는데 소녀의 적극적인 홀림에 얼떨결에 6000짯을 주고 코끼리 바지를 두 개나 샀다. 충동구매 결과물은 한국으로 넘어 와 한 개는 지난여름까지 몇 년 동안 여행도 함께 다니며 잘 지내다 수명을 다해 떠났고 하나는 여전히 잠잘 때 나와 함께 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생각하니 충동구매가 아니라 날 홀려준 소녀에게 감사 할 일이다. 그때의 경험 때문인지 두번째 여행에서는 시장을 돌 때마다 은근 누가 날 홀려주길 기대했었지만 이번에는 결과물이 없었다.

시장9.jpg ▲ 소박한 조각 제품: 목각에 볼트와 너트로 병따개를 만들었다

미얀마의 투박한 촌스러움, 나는 좋다.

미얀마는 아직 경제적 빈곤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나라다. 숫자상으로 봐도 연간 국민소득은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1,338달러(약 156만 원, 2018년 기준)로 아직 세계 최빈국 수준이다. 실제 미얀마 곳곳을 여행해보면 ‘그리 넉넉지 않은 나라구나'라는 느낌이 바로 전해온다. 600만의 거대도시 양곤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도시 전체가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30~40년 전으로 돌아가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함께 간 몇몇 동료는 이런 촌스러움 때문에 불편하고 빨리 떠나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이러한 미얀마의 촌스러움이 푸근하고 정겨워 참 좋았다.

"세련된 것만 좋은 게 아니여. 된장 맛처럼 구수하고 푹 익은 맛이 진짜 우리 멋이지."
중요 무형문화재 임실 필봉농악 예능보유자셨던 돌아가신 양순용 선생님으로부터 배운 말이다. 그때는 잘 몰랐으나 지나고 나니 어떤 의미인지 이제야 조금은 알 것 같다. 선생님 말씀처럼 촌스러운 미얀마 속에 투박하지만 사람 사는 정이 들어 있고 느림과 여유, 멋이 들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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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10.jpg ▲ 양곤 산 파야 수산시장(San Pya Fish WholesaleMaket): 양곤강에서 잡은 물고기가 지천이었다.


돌아가신 아버지는 목수였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먹고살기 위해 젊은 시절 배운 기술이 목수질이었다. 그런 아버지는 가끔 작은 손 달구지(요즘 아이들 타는 장난감 자동차)를 만들어 주기도 하고, 겨울에는 썰매도 후딱 만들어 주었다. 공부 잘하라며 작은 책상도 뚝딱뚝딱 만들어 주었다. 아직도 고향집 사랑방에 놓여 있는 책상을 보면 참 투박하고 촌스럽지만 나는 세련된 최신식 책상보다 정이 가고 훨씬 맘이 간다. 미얀마 바간의 냥우 시장을 돌며 발견한 나무를 깎아 만든 투박하고 촌스러운 병따개를 보면서 문득 돌아가신 아버지가 떠올랐다. 촌스러운 게 다 버려야 할 것은 아니다.

백제의 고도 부여에는 5일마다 큰 장이 열린다. 내 고향마을 인근이라 어려서부터 엄마 따라다녔던 장이다. 규모는 줄었지만 지금도 5일장은 계속 선다고 한다.


어느 좋은 날, 미얀마 시장 구경은 못 가더라도 사람 구경, 정(情) 구경, '부여 장구경'이 급당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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