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자의 나라 미얀마 그 일상의 얼굴, 여덟 번째- 너무 친절한 미얀마씨
‘Excuse me(실례합니다)!’
거리를 걷는데 갑자기 어떤 이방인이 다가와 말을 건다면 당신은 어떻게 하겠는가? 영어 울렁증이 있는 나는 10년 넘게 영어를 배웠지만 눈 마주치려는 낯선 외국인은 늘 경계대상이다. 하지만 미얀마 사람들은 달랐다.
“아이, 진짜! 벌써 몇 시간째야. 도대체 어디 있는 거야?”
송곳 같은 미얀마 따웅지 햇빛 속을 헤매다 지친 일행의 투덜거림은 짜증으로 변했다.
“한 번만 더 물어보자고”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지나가는 젊은 학생에게 물었다. 걸음을 멈춘 학생은 역시 친절한 미얀마 미소를 보여주며 영어와 미얀마 말이 뒤섞인 이방인의 말을 알아들었다는 듯 손짓과 영어단어와 미야마 말이 뒤섞인 외계어를 구사하며 최선을 다해 알려준다. 지친 우리는 알려준 대로 또 걸었다.
“저기다!”
누군가 소리쳤다. 그런데 주변이 낯익었다. 이런! 그곳은 처음 출발했던 장소에서 불과 50여 미터 떨어진 곳이었다. 미얀마 땡볕 거리를 두 시간이나 헤맸던 여정의 싱거운 결말이었다.
따웅지에서 우리가 먼저 가기로 했던 목적지는 이슬람 사원이었다. 불교가 대다수인 나라에서 이슬람교를 믿는 소수의 사람들이 궁금했기 때문이다.
“째쥬쀼삐(실례합니다)”
지나가는 아저씨에게 짧은 미얀마 말과 영어를 섞어가며 사원을 물었다. 그는 친절히 가르쳐 주었다. 그때까지 우리의 ‘이슬람 사원 찾기’ 여정이 그렇게 험난한 길이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 워낙 자신만만 친절한 미소로 알려주는 통에 일행 중 그 아저씨가 우리말을 못 알아 들었을 거란 생각은 아무도 하지 않았다. 아저씨가 알려준 대로 한참을 걸었다. 그런데 사원은 나오지 않았다. 우리는 아저씨를 이심하지 않은 채 우리가 잘못 알아들었나 싶어 지나가는 아가씨에게 다시 물었다. 이 아가씨 역시 우리말을 듣더니 다 알아들은 듯한 표정과 함께 환한 미얀마 미소를 보이며 오른쪽으로 돌아가면 나온다고 알려 준다. 우리는 의심 없이 또 걸었다. 하지만 역시 그곳에 사원은 없었다. 그때부터 우리는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거리를 헤맨 지 1시간째, 인내심은 한계에 다다르고 있었다. 짜증을 억누르며 다시 한 가게에 들어가 젊은 직원에게 손짓, 발짓을 섞어 가며 물었다. 젊은 직원들이 모여 뭐라고 하더니 종이에 두 줄짜리 미얀마 글을 써 주었다. 그런 그들의 모습에 우리 일행은 모두 ‘아 이번에는 찾을 수 있겠네’ 하는 안도의 표정을 지었다. 우리는 직원이 써준 쪽지를 철석같이 믿고 다시 길을 나섰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니 이상했다. 사람마다 알려주는 곳이 제 각각이었다. ‘미얀마 사람들이 우리를 골탕 먹이려는 게 아닐까?’하는 의심마저 들었다. 포기하고 싶을 때쯤 사원은 마침내 우리 앞에 나타났다. 그것도 출발 장소 바로 옆에서.
“골탕 먹이려던 게 아니고 너무 친절해서 그런 겁니다. 거절을 잘 못하는 미얀마 사람들은 잘 몰라도 자신이 아는 만큼 가르쳐주었던 것이지요”
나중에 만난 현지 가이드가 말해 줬다.
미얀마 여행 내내 느꼈던 것은 가이드 말처럼 미얀마 사람들은 참으로 친절하다. 이는 아마도 미얀마인들의 삶의 기준이 되는 종교관에서 비롯된 것 같다. 미얀마인들이 추구하는 불교는 남방 상좌부 불교라 하여 스스로 수행 정진하며 날마다 덕을 쌓음으로써 자신의 수행단계를 조금이라도 높은 단계에 오르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러한 사고가 기본이 되어 매일매일 덕을 쌓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므로 미얀마 사람들이 남을 돕는 것은 당연히 해야 하는 수행의 기본이라 할 수 있다. 아마도 이런 미얀마 사람들의 불교에 바탕이 된 삶의 철학 때문에 누군가 그들에게 도움을 청하면 거절하지 못하고 몰라도 그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기 위해 최선을 다한 결과가 따웅지 땡볕 헤매기의 원인 아니었나 하는 생각 한다. 당일에는 잘 모르면서 아는 채 한 덕에 우리만 고생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와서 생각하니 낯선 곳에 와서 어쩔 줄 몰라하는 이방인 도울 마음으로 최선을 다한 마음에 또 다른 고마움이 올라온다.
미얀마인은 두 번 용서한다는 말이 있다고 한다. 처음에는 몰라서 그렇게 했을 수도 있기 때문에 용서한다. 그리고 또다시 알면서도 그 일을 저질렀을 때는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있었을 것이라 여겨 용서해 준다고 한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참으로 부처님 같은 자비로운 인품을 가진 사람들이 아닌가 한다.
‘친절해도 너무 친절한 미얀마씨! 반만 친절했다면 따웅지 땡볕도 반만 먹었을 텐데.’ 잠시나마 이런 생각을 했던 나를 돌아본다. 두 번을 용서한다는 미얀마 사람들 반만 닮았어도 그 친절함에 감사함만으로 즐거웠을 텐데……
다음에 가면 따웅지 시내를 물어 물어 하루 종일 돌아도 절대 친절한 미얀마씨 원망을 말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