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들의 산인가? 원숭이들의 천국인가?

안 보면 후회할 미얀마의 대표 얼굴, 네 번째- 뽀빠산

by 청년홈즈

“뽀빠산 가볼까?”

“형 맘대로 해”

자유여행자의 특권 중 하나는 얽매이지 않고 일정 조정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미얀마 여행 첫날부터 우리는 그 특권을 활용해 계획하지 않았던 뽀빠산 일정을 즉석에서 넣었다. 하긴 여행의 반은 동행자 잘 만나는 것인데, 내 두 번째 미얀마 여행은 맘 넓은 동행자 덕에 이미 즐거움의 반을 벌고 시작했다. 다시 한번 괴상한 형 따라다니며 불평 한마디 없이 맞춰 준 친구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뽀빠10.jpg ▲뽀빠산: 뽀빠산은 '낫(Nat)의 고향’이다

밤늦게 도착한 우리는 양곤 공항 근처 숙소에서 미얀마 비어로 간단한 입국 파티를 하고 잠이 들었다. 새벽녘 알람이 울린다. ‘아 맞아 첫 비행기 타야지’ 바간으로 넘어가는 첫 일정부터 꼬일까 봐 새벽잠의 유혹을 물리치고 서둘러 로비에 나왔다. 예약 시 원래 조식제공 조건이었는데 식사시간 전에 출발해야 해서 아침은 포기하기로 했었다. 체크아웃하는데 직원이 웃으며 작은 비닐봉지 두 개를 전한다. 간단한 아침식사용 도시락을 준비했단다. 예상하지 못했던 배려에 고마움과 감동이 쑤욱 밀려왔다. 매니저는 공항까지 택시도 불러 주었다. 우리는 이렇게 뭔가 축복받은 기분으로 미얀마 여행을 시작했다.


미얀마 국내선 공항에 도착하니 낯선 프로펠러 쌍발기가 우릴 반겼다. 양곤 공항에서 아담한 쌍발기로 한 시간여 비행 끝에 냥우 공항(Nyaung Oo Airport)에 도착하니 비가 부슬부슬 내리기 시작했다. 공항 로비에서 바간지역 입장권을 인당 2만5천짯(한화 약 19,800원 2019년 9월 기준-2014년 10불 정도였는데 그사이 5~6달러 올랐다)에 구입했다. 입장권은 예전과 달리 종이티켓이 아니라 QR코드로 바뀌어 있었다. 우리는 각자 핸드폰에 입장권을 저장했다.

뽀빠냥우.jpg ▲미얀마 냥우 공항과 바간지역 입장권

공항터미널 밖으로 나오니 서성이던 젊은 택시기사가 말을 걸어왔다. 우리 행색을 훑어보더니 대뜸 “코리아?”를 외친다. 미얀마 어디를 가나 단번에 우리가 한국 사람임을 알아보는 것은 참으로 신기하다. 제시한 택시비가 비싸지 않아 별도 흥정을 하지 않고 올라탔다. 택시기사는 자기는 투어 택시도 가능하니 하루 가이드 제안을 했다. 우리는 생각해 보겠노라 대답하고 숙소에 내렸다. 호텔에 체크인하고 나니 빗줄기가 더욱 거세졌다. 우리는 원래 바간 투어를 먼저 할 계획이었으나 비도 오고 해서 뽀빠산 택시투어 하기로 즉석에서 결정했다. 잠시 기다린다던 택시기사는 이미 가고 없었다. 진작 결정했으면 그 기사한테 할걸 했는데 호텔 매니저가 자기가 아는 기사가 있다며 불러준다고 했다.


미얀마 정령 신앙 낫(Nat)

뽀빠산은 바간에서 택시로 근 1시간여를 가야 했다. 뽀빠산 가는 길은 대부분 울퉁불퉁 비포장 도로였는데 곳곳에 나뭇가지로 얽기 설기 작은 움막처럼 지어 놓고 지나가는 차에 마치 구걸하는 것처럼 손을 벌리고 앉아 있는 사람들이 인상적이었다. 뽀빠산 찾는 사람들에게서 보시의 맘을 구하는 것 같아 보였다.


뽀빠산(Popa)은 미얀마 정령 신앙인 ‘낫(Nat)의 고향’이다. 미얀마 문화를 보다 깊이 이해하기 위해서는 민간신앙인 낫(Nat)에 대해 알아야 한다. 미얀마 사람들은 모든 곳에 ‘낫’이라는 정령이 있다고 믿는다. ‘낫-Nat’은 주인이라는 의미의 ‘Natha-나타’라는 산스크리트어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그러니까 모든 곳에는 주인인 정령이 있다고 믿는 것이다. 낫은 사람의 힘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를 어떤 대상이나 자연의 힘에 도움을 받고자 생겨난 원시 신앙의 한 형태로 미얀마에 불교가 전파되기 훨씬 전부터 믿어오던 토착신앙이다. 이 낫은 대부분 슬픈 사연으로 죽은 인물을 신으로 모시는데 이 신을 달래주면 그 낫으로부터 보호를 받는다고 믿는다. 반대로 이 낫을 소홀히 하면 노여움을 사서 그 대가를 치른다고 믿는다. 가령 흉년이 들면 농사에 관여하는 ‘비의 낫’이나 ‘바람의 낫’ 모시기를 소홀히 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미얀마 사람들은 항상 이 낫에게 음식과 꽃을 바치며 정성을 다한다. 미얀마를 여행하다 보면 아주머니들 장바구니마다 작은 꽃다발이 꽂혀 있는 것을 자주 보게 되는데 나는 처음에 ‘미얀마 사람들은 꽃을 굉장히 좋아하는구나’라고만 생각했는데 이것이 낫과 연관되어 있음을 알게 되었다.

뽀빠18.jpg ▲미얀마 정령 신앙인 낫(Nat)

미얀마에는 원래 모든 곳에 낫이 있다고 믿었었기에 수많은 낫이 존재했으나 11세기 중엽 현재의 37개의 낫으로 정리되었다. 미얀마 최초의 통일왕국을 건설한 아노라타(Anawrahta, 1044-1077) 왕은 따톤(Thaton) 왕국에서 온 신 아라한(Shin Arahan)에 의해 불교신자가 된 다음 강력한 왕권 강화와 바간 왕조 통합을 위해 상좌불교를 정식 종교로 받아들였다. 상좌불교가 전파되기 전 미얀마인들에게는 숭배하던 수많은 낫과 힌두교 등이 혼재하며 종교적으로 매우 혼란한 시기였다. 아노라따왕은 낫 숭배를 금지시켰으나 수백 년 동안 뿌리내려 마음속 깊이 자리 잡은 낫 신앙을 없애기는 불가능했다. 아노라따왕은 낫 신앙을 없애는 대신 수많은 낫을 총 37개 낫으로 정리하였다. 이때 정리한 37개 낫이 현재 미얀마 공식적인 낫 숫자가 되었다. 이런 역사적 이유로 불교신자가 대부분인 미얀마 사람들은 부처와 낫을 별개의 존재로 생각하며 낫을 배척하지 않고 불교의 수호신으로 생각한다. 미얀마 곳곳에는 낫을 모시는 사당이 있으며 어떤 불교사원에는 낫과 부처가 함께 모셔져 있는 것을 볼 수가 있다.

뽀빠5.jpg ▲미얀마 정령신앙 낫(Nat)

낫 신앙의 고향 뽀빠산, 그 미끌미끌 똥판길

뽀빠산(Popa)은 바간에서 남쪽으로 약 50km 위치한 해발 1,518m로 기묘하게 솟아 있는 바위산이다. 많은 미얀마 사람들이 자주 찾는 아주 유명한 산이다. 많은 사람들이 찾는 이유는 산의 생김이 기묘해서라기 보다는 이곳이 바로 미얀마 정령 신앙인 낫(Nat)의 고향이기 때문이다. 뽀빠(Popa)는 산스크리트어로 꽃이라는 의미다. 뽀빠산 주변에 꽃과 나무가 가득해서 그리 부른다는데 내 눈에는 드넓은 밀림지대 위에 한송이 꽃처럼 불뚝 솟아 있는 산이라서 그리 불렸을지 모른다는 내 맘대로 생각을 했다. 실제 뽀빠산은 멀리서 바라보면 사람들이 거주하는 마을에서 갑자기 바위산이 거의 수직으로 무려 737m나 솟아 있어 기묘하게 보인다.


뽀빠산 오르는 길은 고행길이었다. 뽀빠산 입구에서부터 정상까지는 가파른 계단으로 30여분 올라가야 한다. 그것도 미얀마 어느 사원 입장할 때와 마찬가지로 맨발로 올라야 한다. 문제는 우리가 방문할 시기는 우기여서 빗물과 원숭이 똥이 뒤범벅되어 미끌미끌 똥판길이었다는 점이다. 발바닥을 통해 전해지는 미끈거리는 똥물의 촉감과 가끔 밟히는 덩어리 똥의 질감 때문에 중간중간 포기하고픈 마음이 들락거렸다. 우리 바로 앞에 금발 미녀 4인방이 올라가고 있었는데 발을 디딜 때마다 인상을 찌푸리며 찰진 영어 욕을 쏟아 냈다. 평소 영어울렁증이 있음에도 금발미녀들의 투덜거리는 영어 대화가 신기하게 모두 들렸다. 그 찰진 욕들에 내 마음이 동화되어 그 처자들과 동질감을 느끼며 정상까지 함께 올랐다.

뽀빠3.jpg ▲고난의 뽀빠 오르는 길: 거의 수직에 가까운 계단길을 30여분이나 올라야 했다. 그것도 원숭이 똥판길을.

세상의 모든 부모는 위대하다.

뽀빠산 오르는 길은 내내 원숭이들과 함께 해야 한다. 동물원 우리 속에서만 봤던 원숭이가 바로 길옆에 있는 것도 생경한 경험이었지만 한두 마리도 아니고 원숭이 떼들이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가끔 웃을 잡아당기기도 하는 경험은 잊기 힘든 경험이었다. 원숭이 떼들은 관광객들을 따라다니며 손을 벌렸다. 이 또한 삶 속에 보시가 습관화되어 있는 미얀마 사람들의 작품이었다.


뽀빠산 오르는 길 곳곳에는 담배 길이의 신문지 묶음을 팔고 있었다. 원숭이들에게 먹이로 던져 주는 미얀마 땅콩이다. 미얀마 사람들은 한 묶음씩 갖고 다니며 원숭이들에게 던져 주었다. 던지자마자 원숭이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어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잽싸게 한두 개를 낚아채 도망가는 놈, 몇 개를 양 볼이 터져라 암팡지게 물고 욕심을 부리며 두 손으로 남의 것을 빼앗는 놈, 구석에서 눈치를 보다 비호처럼 한 개를 낚아 달리는 놈, 끝까지 던져준 사람을 집요하게 따라다니며 더 얻어 내려는 놈, 뒤편에 밀려 있다 한바탕 아수라장이 끝난 뒤 바닥에 떨어진 걸 주워 먹는 놈 등 잠시 지켜보자니 천태만상 인간세상의 축소판 같았다.


원숭이들의 난장판 속에 갓 태어난 듯한 어린 새끼를 안고 손을 벌리고 앉아 있는 한 팔 없는 원숭이를 발견하였다. 천방지축 새끼 원숭이는 연신 엄마 원숭이를 타고 오르며 천진난만하게 놀고 있고, 팔 잘린 엄마 원숭이는 위험을 무릅쓰고 새끼를 위해 낯선 이방인 위협자에게 손을 벌리고 있었다. 원숭이 똥에 진저리가 날 무렵 만난 이 원숭이 모자를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세상에 모든 부모는 똑같구나’ 돌아가신 울 엄마가 생각났다. 올라오면서 속으로 ‘이 더러운 원숭이들아 꺼져버려’했던 마음이 스르르 없어졌다. 미얀마 사람들의 숭배하는 정령들의 고향에 함께 살아가는 원숭이들은 뽀빠를 지키는 뽀빠의 낫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뽀빠원.jpg ▲한쪽 팔의 엄마 원숭이:세상의 부모는 다 똑같다.

내려오는 길에 원숭이들이 왜 사람을 졸졸 따라다니게 되었는지를 알 수 있는 재미있는 장면을 목격하게 되었다. 미얀마 전통의상을 화사하게 차려입은(그것도 흰옷을) 아가씨들이 원숭이들을 불러 모으고 땅콩을 나눠 주는 것이었다. 아가씨들은 원숭이 무리에 둘러 싸여 원숭이들의 똥 묻은 손과 발로 옷을 엉망으로 만들며 엉겨 붙음에도 하하 호호 거리며 몇 번을 반복하며 먹이를 주었다. 아마도 그런 보시 행위를 통해 나름 축복을 받는 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이런 미얀마 사람들의 삶 속에 보시 행위가 뽀빠산 원숭이들이 사람들 속에 섞여 함께 살아가게 된 이유일 것이다.

뽀빠원숭이.jpg ▲미얀마 사람들의 삶 속의 보시:뽀빠산 원숭이도 이들의 보시문화 작품이다.

부슬부슬 비가 내리던 날, 뽀빠산 오르는 길 내내 발바닥을 타고 오르던 그 느낌을 잊지 못한다. 원숭이 똥과 섞여 끈적거리던 촉감은 지금도 발바닥이 미끈거리는 것 같아 기분이 별로다. 그런데 그 기분 나빴던 뽀빠를 또 가고 싶은 것 뭔가? 괜히 왔다는 생각으로 올랐던 뽀빠산을 내려와 멀리 바라봤던 한 송이 꽃 같던 뽀빠산 전경이 지금도 아른거린다. 거참 이상하다. 뽀빠산 정령이 있긴 있나 보다.


‘뽀빠의 정령이 날 부르니 이거 어쩌지. 휴가라도 내고 또 가야 하나’

뽀빠9.jpg ▲뽀빠산: 미끌거리던 기억도 잠시 다시 가고 싶어 지는 건 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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