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에친 미얀마
친구 1. 웬트씨
미얀마 여행의 히든카드 깔로트레킹을 위해 바간에서 버스로 장장 6시간을 달려 깔로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2시였다. 미리 예약해둔 숙소는 남자 둘이 자기에는 너무 예뻤다. 잠시 뻘쭘하니 앉아 있다가 호텔 주인이 추천한 쉐우민 파야를 구경 가기로 했다. 여주인은 친절하게도 자전거를 무료로 렌트해 주었다. 쬐끄만 깔로 시내를 벗어나니(그래 봐야 5분) 한적한 시골길이 나온다. 넉넉한 미얀마 풍경 속을 유유자적 달리자니 작은 군부대가 나오고 그 안에 이제는 신기할 것도 없는 황금빛(미얀마 파고다는 대부분 황금빛) 파야가 나왔다. 바간에서 이미 파고다 숲을 보고 온 지라 사실 큰 감흥은 없었다. 대충 둘러보고 나오는데 하늘이 꾸물거렸다. 지금이 막바지지만 미얀마 우기라는 걸 깜빡했다. 우산도 없이 나온 길이라 숙소로 열심히 페달을 밟았으나 비의 속도가 더 빨랐다. 쏟아지는 빗속에서 “아무 데나 들어가” 하는 동생 목소리가 들렸다. 큰 나무 아래 자전거를 대충 던져 놓고 아무 상점 처마 밑으로 달려들어갔다. 비는 금방 그칠 기세가 아니었다. 처마 밑에서 잠시 두리번거리며 서 있는데 옆 가게 주인인 듯한 사람이 “한국사람이세요?”하며 묻는다. 오랜만에 듣는 한국말이라 귀가 번쩍 뜨여 돌아보니 미얀마 청년? 한 사람이 미소를 보낸다. “이리로 들어오세요” 어눌하지만 뚜렷한 한국말이다. 이 말에 끌려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한국사람 반갑습니다. 나 한국 좋아해요” 미얀마 청년 같은 아저씨는 친절이 뚝뚝 묻어 나오는 눈으로 반갑게 맞아 주었다. 자기 이름은 ‘웬트’ 한국에서 8년 있었는데 인천 남동공단 조명회사에 5년, 수원에서 3년을 일했다고 한다. 물론 그 모은 돈으로 이렇게 번듯한 조명가게 사장님이 됐을 테고. 이런저런 얘기하는 중에 비가 그쳤다. 웬트에게 근처 맛있는 식당 추천을 해달라 하니 지도에 삐뚤빼뚤 한글까지 그려가며 두 곳을 추천해 준다. 우리는 저녁식사 장소로 그중 한 곳을 택했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많은 미얀마 사람들 마음속에 들어 있는 친절을 내게 꺼내 준 웬트씨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친구 2. 웬뚜씨
웬트씨가 추천해준 식당을 찾아갔다. 길 한편에 번듯하게 지어진 고급스러운 식당이었다. 들어서자마자 카운터에서 귀에 익숙한 올드 팝송이 들려왔다. 살짝 보니 파란 옷을 입은 어여쁜 카나리아가(우리가 붙여준 즉석 별명) 눈을 마주치며 미소로 맞는다. 온통 미얀마어로 쓰여 있는 메뉴판인지라 인터넷으로 사진 검색까지 하며 심혈을 기울여 주문을 했다. 웬트씨 말대로 음식은 정말 맛있었다. 맛있는 음식에 맛있는 미얀마 맥주, 거기에 더해 촉촉한 날씨, 카나리아 노래까지 곁들이니 이곳이 천국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미얀마를 즐기기에 최고의 분위기였다. 식사를 마치고 미얀마 맥주에 살짝 흥이 올라 늘어져 있는데 갑자기 한 아저씨가 나타나며 “혹시 한국사람이세요?” 묻는다. ‘웬뚜대령’ 쉐우민 파야를 가다가 지났던 깔로를 관할하는 군부대 책임자라고 했다. 웬뚜대령은 한국국방대학원 2년을 유학한 엘리트 군인이었다. 2년의 짧은 유학파라지만 한국말을 엄청 잘해 놀랐다. 웬뚜대령은 우리와 몇 마디 말을 주고받다가 아예 자기 자리에서 안주와 맥주잔을 가지고 우리와 합석했다. 안주는 미얀마에선 고급 요리일 듯한 개구리 튀김 비슷한 것이었고(이거 엄청 맛있었다), 맥주는 미얀마 맥주와 흑맥주를 썩은(추측컨데 한국 있을 때 배운 소맥 문화의 미얀마 버전일 듯) 술이었다. 이야기가 무르익을 무렵 서로 나이 얘기가 나왔다. 내 나이를 말하니 못 믿는 눈치라 민증까지 까야했다. 5년 전 바간에서도 한번 민증깐 일이 있었는데 내가 미얀마에서는 동안으로 먹어주는 얼굴임에 틀림없다. 웬뚜대령 왈 “아이고 형님이네. 난 나보다 어린 줄 알았지” 골프 얘기부터 종교, 미얀마 국내 정세 얘기까지 이런저런 얘기로 꽃을 피우는데 웬뚜대령이 자꾸 눈치를 보는 것 같다. 둘러보니 같이 온 가족들이 기다린다. 마누라 눈치 보는 건 미얀마 남편들도 별 수 없구나. 우리도 자리를 파하고 계산대로 갔는데 이건 웬걸 이미 웬뚜대령이 우리 밥값까지 계산해 버렸다.
후일담이지만 웬뚜대령은 미얀마 군부쿠데타의 주역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만일 우리가 다시 만난다면 나는 미얀마 군부쿠데타를 반대하니까 우리는 정치적으로는 서로 적인 셈이다. 그럼에도 친구로 다시한번 만나보고는 싶다.
친구 3. 바간의 소녀 아예 흘라(가명)
바간의 파고다 숲은 여전히 나를 압도했다. 두 번째 방문이라 그런지 신비감은 좀 줄었지만 친근감은 훅하고 속 깊이 밀려들었다. 조금 변했다고 느꼈던 건 2016년 지진 피해 때문인지 이곳저곳 공사 중인 파고다가 많았고, 대부분 파고다가 상층 진입을 막아 놓아 바간 전체 풍경을 감상할 수 없었다는 점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바간 입장료도 19$로 올라 있었다. (2014년 당시는 15$) 미얀마 물가를 생각하면 상당히 비싼 요금이다. 하지만 세계문화유산 복원에 쓰인다고 생각하고 아까워하지 않기로 했다.
아예 흘라, (가명: 이름은 물어보지 않았으나 일요일에 만난 소녀라 내 맘대로 아예 흘라로 지음) 그녀를 만난 것은 담마양지 파고다를 방문했을 때이다. 이미 많은 파고다를 관람했기에 담마양지도 대충 훑어보고 나오는데 미얀마 여러 공산품을 팔고 있는 소녀를 만났다. 소녀는 간단한 영어로 우리에게 무료로 타나까를 해준다고 권했다. 10살 전후로 보이는 소녀의 말똥말똥한 눈빛에 끌려 나도 모르게 앉아 이미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먼저 왔을 때 타나카를 한번 해보고 싶긴 했었다. 소녀는 능숙한 솜씨로 내 얼굴에 타나카 무늬를 그려 넣었다. 타나카의 시원한 질감이 얼굴에 퍼졌다. 소녀는 작은 거울로 보여주며 수줍은 듯 미소를 보냈다. 아무리 무료라고 해도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나 보답으로 1000짯짜리 염주 팔찌 똑같은 것 두 개를 샀다.(아 나는 여행시 아이들이 파는 물건은 잘 사지 않는다. 그 아이들이 잘 팔수록 학교에 갈 확률은 떨어지니까) 뒤늦은 후회, 이때는 생각 못했다. 두 남자가 똑같은 팔찌를 하고 다니는 것이 의심받기 딱이라는 것을. 다른 것으로 살걸. 기념으로 사진을 찍었다. 나중에 보니 소녀의 표정이 왠지 슬퍼 보였다. 5년 전 바간 어디쯤에서 만난 1$짜리 엽서를 판매하던 소녀 생각이 겹쳤다. 그 소녀는 지금쯤 무엇을 하고 있을까? 그때는 누가 봐도 학교 다닐 나이였는데 지금은 어디 취직했을까? 학교 다닐까? 지금 소녀 아예 흘라도 5년 후에는 이곳에 없겠지. 소녀에게 팔찌를 사서 나오는 동안 머릿속에 여러 생각이 지나갔다.
언젠가 SNS를 달군 소녀들의 노래방 폭행사건이 떠오른다. 괜히 교훈적인 얘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물질적 풍요와 교육적 혜택이 모두 행복과 연결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 의미에서 노래방 폭행사건 소녀들이나 학교 다닐 나이에 생업이 뛰어든 아예 흘라의 삶이나 현재 행복한 삶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고 지금 아예 흘라를 불쌍하거나 안타까운 마음으로는 보지 않는다. 다만 그의 앞날이 행복하길 빌 뿐이다. 나는 세상의 모든 아이들이 행복하길 바라는 우주평화주의자이니까.
친구 4. 달라의 싸이카꾼 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