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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년홈즈 Nov 03. 2023

한국인 K, 자부심이 있습니까?

대한민국, Korea, 한국인 그리고 K

“항상 자부심을 갖습니다. 나는 한국사람이다. 코리아야. 얼마나 좋습니까?”

가난한 나라 한국은 차관의 대가로 1963년부터 1977년까지 2만여 명의 광부와 간호사들을 머나먼 타국 땅으로 보내야 했다. 1977년 독일로 간 청년은 이제 73살의 노인이 되었다. 마지막 파독 광부 정정수선생의 담담한 소회가 가슴을 울렸다. 지금의 K는 이들의 피와 땀을 먹고 자란 열매다. 한국인이라는 자부심으로 이룬 이 귀한 열매를 우리는 지금 너무 과소평가하고 있지 않은 지 돌아볼 일이다.

'한국인 K, 당신은 자부심이 있습니까?'


집 나가면 개고생이라지만 여행은 그 개고생을 기꺼이 즐기는 멋진 일이다. 프랑스의 소설가 아나톨 프랑스는 ‘여행은 장소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생각과 편견을 바꿔주는 것이다.’라 했다. 여행은 단지 보고 즐기는 것뿐 아니라 낯선 것들과 만나며 자신을 들여다볼 수 있는 멋진 일이다. 특히 밖에 나가면 애국자 된다는 말처럼 한국인으로서 내 나라에 대해 더 깊은 애정을 갖게 된다. K팝, K드라마 등 K콘텐츠와 K푸드, K뷰티를 넘어 심지어 김밥, 떡볶이, 핫도그에 호미까지 인기가 있다고 아무리 말해줘도 그저 국뽕으로만 취급했던 사람들도 나가보면 알게 된다. 


1년 전, 중앙아시아 여행이 그랬다. 여행 시작하기 전부터 영어도 짧은데 러시아권(구소련) 나라는 처음이라서 두려움이 더욱 컸다. 하지만 두려움과 낯섦이 반가움과 놀라움으로 바뀌는 데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공항에서부터 우리 모습을 보더니 택시 기사들이 우르르 몰려들며 어설픈 한국말로 아는 체를 했다. 그 낯선 나라 어디를 가더라도 ‘Korea’라고만 하면 호감을 표시하며 환대해 주었다. 이뿐인가? 먼 나라 중앙아시아의 작은 소도시 마트에서도 소주, 라면, 고추장 같은 한국제품을 볼 줄은 몰랐다. 이제 해외여행 간다고 번거롭게 이것저것 챙기는 사람은 옛날 사람이 돼 버렸다. 그저 놀랍고 신기했다. 


지금의 K 위상은 몇 년 전 한국이 아니다. 불과 몇 년 사이 K는 국제사회 셀럽이 되었다. 그야말로 K는 지금 상종가다. 이제 세계 어디를 가던 ‘Korea’하면 그들이 먼저 ‘BTS, 블랙핑크, 스퀴드 게임(오징어게임), 패러사이트(기생충)’을 외치며 호감을 표시한다. 세계 문화 예술계의 큰손들도 이러한 콘텐츠 강국 K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2022년 9월, 세계 3대 아트페어 ‘프리즈’는 아시아 최초로 서울에서 개최되었다. 프리즈 CEO 사이먼 폭스(Simon Fox)는 서울을 선택한 이유를 다음과 같이 밝혔다. 

"서울은 예술가와 갤러리, 박물관, 조각, 음악, 패션이 넘치는 도시다"


명품 브랜드 구찌는 2023년 5월 경복궁에서 ‘2024년 컬렉션 패션쇼’를 개최했다. 이제 세계 패션 트렌드를 미리 서울에서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할리우드 영화가 한국을 세계 최초 개봉지로 택한 지는 이미 오래다. 독일 공영방송 도이체벨레(Deutsche Welle)는 ‘전통과 미래가 있는 영화의 나라’라고 한국을 추켜 세웠다. K는 지금 문화 예술 트렌드를 선도하는 셀럽이 되어 세계 문화예술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백 년 전 백범 김구선생이 꿈은 현재진행형이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K는 이제 매력적인 브랜드가 되었다. K는 이제 하나의 현상이 되었다. 정작 우리만 그 파급력을 느끼지 못하고 있거나 평가절하하고 있을 뿐이다. 여전히 많은 한국인들은 이런 현상을 일시적인 유행으로 바라보거나 국뽕으로 치부하기 일쑤다. 기성세대들은 K팝, K드라마가 세계를 휩쓸고 있음에도 그저 연예인 몇 명의 인기쯤으로 그 영향력을 과소 평가한다. 청년들에게 이 나라는 그저 희망 없는 ‘헬조선’ 일뿐이다. 편의점 알바, 계약직 등으로 대변되는 이 시대 청년들의 퍽퍽한 삶을 생각하면 일면 이해는 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헬조선, 이생망, 육포세대, 지옥불 반도와 같은 평가는 너무 절망적이고 부정적인 평가절하다.


물론 이 나라에 도사리고 있는 엄청난 문제들을 무시하자는 것은 아니다. 세계 최저 출산율, OECD 최고 자살률, OECD 우울증 환자 1위, 청소년 자살률, 노인 빈곤, 정치권의 부패, 망가진 언론 등 부끄러운 문제들을 안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분명 자랑할만한 것들도 많고 K-바람의 실체도 존재하는데 너무 비관적으로만 보고 있지 않은 지 살펴보자는 말이다. 지옥불 반도, 헬조선으로 평가하는 이 나라가 지구촌 저편 한 청년의 버킷리스트에는 꼭 가보고 싶은 나라 1순위에 올라 있고 또 어떤 청년에게는 코리안드림의 대상이 된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아르헨티나의 소녀 ‘소피아’는 오늘도 아르바이트하느라 하루가 짧다. BTS의 나라 한국을 꼭 한번 가보고 싶기 때문이다. 소피아는 벌써 몇 달째 한국행 경비를 모으고 있는 중이다. 아프리카 케냐의 가난한 청년 ‘주마’는 낮에는 가족의 생계를 위해 일하고 저녁에는 피곤과 싸우며 세종학당에서 한글을 배운다. 한국어를 배워 한국에 유학 가는 것이 가난을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키르기스스탄 청년 ‘빌렛’이 한국어 공부에 열심인 이유는 한국산업연수생 선발시험에 합격하기 위해서다. 그는 한국에서 돈을 벌어 비슈케크에 K-푸드 식당을 여는 것이 꿈이다. 이들뿐인가? 인도네시아, 베트남, 방글라데시, 브라질, 러시아, 튀르키예 등 세계 곳곳에 소피아, 주마, 빌렛 같은 청년들이 수없이 많다. 


오늘도 세계 곳곳 세종학당에는 몰려든 학생들로 넘쳐난다. 이들은 하나 같이 한국을 알고 싶어서, 한국에서 돈을 벌고 싶어서 또는 K-팝, K-드라마를 더 잘 즐기기 위해 한글을 배운다. 이들의 작은 소망은 하나같이 우리가 지옥불반도, 헬조선이라 부르는 한국에 한번 가보는 일이다. 희망이 없다는 이 나라가 그들의 희망이 되고 있는 현실은 어찌 볼 것인가? 밖에서는 희망이 있다고 하는데 정작 우리만 그 희망을 보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 K-바람은 분명 존재하는데 그 가치를 너무 가볍게 여기고 있지 않은 지 돌아볼 일이다. 

코리안드림을 찾아서:키르기스스탄 산업연수생들 입국, 2022년 7월 인천국제공항


돌이켜보면 우리는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IMF 등 그 험난했던 시련을 모두 이겨낸 사람들이다. 한국인의 내면에는 어떤 고난과 역경도 헤쳐 나갈 수 있는 엄청난 힘이 들어 있다. 힘들다고 말하는 시대 이 어려움을 헤쳐 나갈 힘은 바로 한국인으로서 자부심과 자긍심을 높이는 일이다. 그 힘의 실체가 바로 지금 K팝, K드라마, K푸드 등을 넘어 다양한 분야로 확산되고 있는 K-바람이다. K-바람의 실체 속에 한국인의 자부심과 자긍심을 살릴 수 있는 힘이 들어 있다.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립대 샘 리처드 교수는 서양중심의 문화주도권이 아시아로 특히 한국으로 이동하고 있으며 앞으로 한류, BTS를 모르면 21세기 시장경제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며 말한다. 


"K팝이 됐든 영화나 드라마가 됐든, 한국이 더 알려지게 되고, 그러면서 한국은 힘 있는 국가로 품격 있는 국가로 점점 더 알려지게 되는 거죠"

미국인도 아는 이 사실을 정작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 

마지막 파독 광부 정정수선생의 음성이 죽비소리처럼 들린다. 

“한국인 K, 당신은 정말 자부심이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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