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회 도계 전 '끝남과 시작' 참관기 1
온통 검은색일 줄 알았다. 하지만 도시는 상상했던 검은 도시가 아니었다. 석탄이라는 이미지와는 정반대로 너무나 깨끗하고 정돈된 느낌이었다. 누가 말해주지 않으면 이곳이 탄광도시라는 것을 절대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도시는 깨끗했으며 정적이고 단아했다.
1박 2일 강원도 삼척시 도계읍을 다녀왔다. 삼척 도계는 국내 최대 석탄 생산지였다. 충청도 금강 변 촌놈인 나에게 탄광이라는 단어는 여전히 낯설다. 그저 연탄과 막장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는 것이 전부일 정도로 탄광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처음 와 보는 탄광도시는 맑은 하늘 때문인지 도시를 감싼 산봉우리의 푸르름 때문인지 너무나 조용하고 한적했다. 마치 어떤 외계 생명체의 습격을 받고 건물만 남긴 채 모두 떠나버린 영화 속 장면 같았다. 한적한 것은 여느 지방 소도시와 같았지만 전체적인 느낌은 뭔가 달랐다. '삼척, 무장공비, 도계, 탄광, 광부, 석탄, 연탄, 막장' 이러한 단어들에 대한 막연했던 선입견과 눈 앞 풍경의 부조화 때문이었을 것이다.
곧 폐광될 국내 최대 석탄 생산지 삼척 도계
석탄산업은 대한민국 경제발전의 초석이 되었던 산업이었다. 특히 삼척 도계는 국내 3대 석탄 생산지로서 번영을 누리던 곳이었다. 오픈식에서 특강을 해주었던 삼척시 박물관장 김태수 관장의 설명에 의하면 탄광이 번영을 누리던 시절에는 삼척 도계 지역에만 무려 30만에 육박하는 사람들로 북적였다고 한다.
지금의 한적함을 생각하면 믿기지 않는 얘기였다. 영화를 누렸던 도시는 이제 탄광 산업의 몰락과 함께 점점 소멸해 가고 있다. 난방 연료의 변화로 석탄의 수요가 감소하였고, 채굴 조건의 악화로 인한 비용 증가와 안전 문제로 생산량이 급감했기 때문이다.
결국 정부는 1989년 경제성 없는 탄광을 폐광시키는 방향을 제시하며 석탄산업 합리화 정책을 추진하게 되었다. 그 뒤로 전국의 수많은 탄광이 폐쇄되었으며 이제 2025년이면 우리나라 석탄 생산은 완전히 멈추게 된다. 오는 7월 1일 자로 대한석탄공사가 소유한 3대 탄광 중 하나인 태백 장성 탄광이 폐쇄될 예정이라 한다. 그렇게 되면 이제 삼척 도계광업소는 우리나라 마지막 탄광이 된다. 하지만 그마저도 내년까지가 끝이다.
이런 폐광 절차는 2023년 2월 대한석탄공사와 노조 측의 합의안에 따른 것이다. 합의안에 따라 3대 탄광인 전남 화순 탄광은 이미 폐광 되었으며(2023년 6월 폐광), 다음으로 오는 7월 1일에 태백 장성 탄광이 폐광되며, 마지막으로 남게 된 삼척 도계 탄광도 내년이면 문을 닫게 되는 것이다.
탄광이 폐광되면 도계의 소멸은 불을 보듯 뻔하다. 이미 석탄 생산량이 많이 줄어 활기가 없어진 지 오래지만 그나마 탄광이 지역경제를 지탱해 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위기 속에 지역을 살리고자 여러 방면에서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 중 한 사람이 바로 이번 도계전을 기획하고 준비한 옻칠공예가 옻뜰(ott ddeul) 대표 이종헌 선생이다. 이종헌 선생은 원주에서 활동하다 2년 전쯤 이곳 도계에 들어왔다고 한다. 선생은 이곳에 들어오자마자 일을 벌였다. 그 일이 지난해 열렸던 제1회 도계전이다. 선생은 제1회 도계전 서문에서 도계전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밝혔다.
'도계는 오랜 역사적 사실들이 겹겹이 누적된 유서 깊고 삶이 농축되어 있는 땅이다. 70~80년대 경제성장의 현장에 있었던 누군가에게는 다시 떠올리기 싫은 막장으로 기억되기도 한다. 누군가는 자식들을 위해 목숨을 담보로 돈을 벌어야 했고, 또 예기치 않은 진폐증으로 인해 많은 사람이 고통 속에서 보상도 없이 살아온 아픈 추억을 간직한 곳이다. 그런데 과거에 그치지 않고 도계는 지금도 여전히 석탄뿐만 아니라 시멘트 생산을 위한 석회석이 채굴되고 있다.
또한 버려진 폐광에 대도시의 쓰레기와 원자력 폐기물을 매장하려 하고 친환경에너지라는 미명 아래 한민족의 기운을 막겠다고 박은 일제의 쇠말뚝보다 더 큰 말뚝을 산 위에 박고 풍력 발전의 대형 모터 소음과 고압선이 주민의 생활마저 휘감는 기이한 풍광을 만들고 있다. 이것은 바람직한 발전 방향이 아니다. 소외된 지역의 땅과 그 속에 사는 사람들의 삶을 망가트리고도 이를 외면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제1회 도계전 도록 서문 중 발췌)
지난 3월 평소 친분이 있었던 이종헌 선생으로부터 짧은 메시지가 왔다. 제2회 도계전을 준비하고 있으니, 축하 공연을 해달라는 내용이었다. 지인 결혼식에 들렀다가 잠깐 얼굴을 스치며 던진 말이 화근이었다.
'삼척 도계의 고사리라는 마을에 이미 폐교가 된 소달중학교라는 곳에서 전시회를 합니다. 전국의 다양한 작가들이 참여합니다. 작년에 38명 정도 참여하여 1달간 전시를 했고, 반응이 좋아 올해도 준비하고 있습니다. 올해는 60여 명이 참석할 것 같습니다.'
워낙 미천한 잔재주라 참석하겠다는 대답을 선뜻 못했으나 이번 행사가 어떤 의미인지 알고 있었던 터라 거절하기도 뭐해 수락하고 말았다. 다녀오고 나니 이종헌 선생에게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아이들 웃음소리 대신 작품이 걸린 교실
이번 제2회 도계전은 6월17일~ 7월 17일까지 폐교된 소달중학교에서 진행된다. 석탄산업의 쇠퇴와 함께 쓰러져 가는 지역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폐교를 미술관으로 바꿀 생각을 한 이종헌 선생의 참신한 기획에 박수를 보낸다.
아이들의 재잘거리던 웃음소리로 가득했을 교실과 복도 곳곳에 전시된 작품들을 보니 정돈된 미술관은 아니지만 폐교가 주는 소박함과 정감이 있어 오히려 좋았다. 그렇다고 작품까지 소박한 것은 아니다. 전국의 다양한 작가들이 참여한 이번 전시회는 그림뿐만 아니라 글씨, 도자기, 설치미술, 영상아트 등 참여작가의 폭이 넓다. 깊이 있게 작품을 보는 눈은 없지만 묵직한 주제로 울림을 주는 작품들 앞에서는 한동안 걸음을 멈춰야 했다.
미술에 문외한이라도 국내 최대 석탄 생산지의 흥망성쇠를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의미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다. 이에 도움을 주는 곳이 바로 '삼척 도계 도시재생현장지원센터'이다(삼척 도계 도시재생 현장지원센터:삼척시 도계읍 전두시장길 20, 2층/ 전화 033-541-7723).
우리 일행도 오픈식 다음날 이곳을 방문해 권병성 국장의 안내로 도계의 역사와 현재에 대해 친절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권 국장은 이곳 도계에서 나고 자랐으며 아버지도 광부였다고 한다. 그런 때문인지 도계 지역에 대해 자세하게 알고 있었으며 지역 사랑이 남달라 보였다. 이번 도계전도 이곳 도시재생현장지역센터와 권 국장의 도움이 컸다고 한다.
혹시 아직 여름휴가 일정으로 동해 어느 바닷가 해수욕장을 생각했다면 지나는 길에 폐교에 차려진 정감 있는 미술관도 둘러보고 한때 번성했던 국내 최대 석탄 생산지를 둘러보는 것을 추천한다. 이종헌 선생이 제2회 도계전 도록 서문의 말로 초대의 말을 대신한다.
'장자 외편 추수(秋水) 제17에 "시작과 끝은 하나의 원과 같다. 성장과 쇠퇴는 변형의 연속일 뿐, 끝이 있는 곳에 시작이 있다."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미술인으로서 그 시작에 조그만 보탬이 되고자 제2회 도계전 -끝남과 시작- 전을 마련합니다. 많은 성원과 격려 바랍니다.'
[제2회 도계展 -끝남과 시작]
장소:삼척시 도계읍 고사리 소달중학교(폐교)
기간: 2024년 6월 17일~7월 17일
문의: 삼척 도계 도시재생현장지원센터, 033-541-7723
주최·주관:옻뜰(ott ddeul), 사)한국옻칠협회
오마이뉴스 기고: https://omn.kr/294c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