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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년홈즈 Oct 30. 2019

매일 아침 자기 얼굴에 낙서하는 사람들

1. 미얀마를 대표하는 독특한 얼굴- 첫 번째 얼굴, 타나카

이른아침 부스스 깨자 마자 아무 리액션 없이 주변 사람을 웃겨 본적이 있는가? 장난끼 충만했던 학창시절 술취 해 자는 친구 얼굴에 수성 펜으로 아무 낙서나 해놓고아침에 시침 뚝 떼고 놀리는 재미는 해본 사람만 안다. 정작 본인은 왜 웃긴지도 모른 체 남들 따라 깔깔거리는 상황을 한번 상상해 보라. 이런 재미난 놀이를 스스로 자기 얼굴에 하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미얀마 사람들이다. 미얀마 사람들은 자기 얼굴에 갈색분으로 낙서를 하며 하루를 시작한다. 정말이다.

▲좌) 학창 시절 얼굴 낙서 장난, 우) 자기 얼굴에 낙서하는 미얀마 사람들

미얀마와의 강렬한 첫만남 타나카

늦은밤 도착한 양곤 공항은 명색이 국제공항인데도 인천공항은 고사하고 김포공항의 반에 반도 안 되는 너무나 소박한 공항이었다. 공항 입국 심사대에서 낯선 땅에 대한 호기심으로 두리번거리던 중 제복 입은 사람들 사이로 얼굴에 분칠을 한독특한 여인이 눈에 들어왔다. 보는 순간 홍콩영화 중에 하얀 분칠을 하고 뛰어다니던 강시영화가 생각났다. 멀쩡하게 생긴 예쁜 얼굴에 낙서처럼 갈색 분칠을 한 모습은 괴이하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했다. 바로 미얀마의 독특한 얼굴 타나카였다. 이처럼 나는 첫만남을 강렬한타나카 얼굴로 미얀마여행을 시작했다.                                                                         

▲타나카를 바른 미얀마의 얼굴들: 이 아이들도 이제는 아가씨가 되어 있겠지.


실제 미얀마 거리에서는 이렇게 갈색 칠을 한 수많은 타나카 얼굴을 만날 수 있다. 타나카 바른 모습을 처음 대하면 아프리카 추장들의 얼굴 페인팅 같기도 하고 가끔 영화에서 본 적이 있는 아메리카 인디언 모습 같기도 하다. 미얀마 땅에 들어서자 마자 한두 명이 아니고 대부분 여인의 얼굴에서 볼 수 있는 이런 모습은 엄청 낯설기도 하고 이곳이 타국 임을 강렬하게 느끼게 한다. 


타나카는 타나카라는 나무를 갈아 만든 것이다. 타나카 나무를 작은 돌판에 물을 조금씩 뿌리면서 먹을 갈 듯이 갈면 타나카 가루들이 물과 희석되어 고운 분처럼 나오게 된다. 가이드 말에 의하면 2천 년 전 고대도시국가 시대부터 애용했었다는 기록이 있다고 한다. 이렇게 오랜 된 관습을 거의 원형대로 21세기까지 이어오고 있다는 점이 참으로 놀랍다. 물론 요즘은 이처럼 원형대로 갈아만 쓰는 건 아니다. 양곤 보족 아웅 산 마켓에서 보니 파운데이션, 썬블록 크림, 수분 크림 등 현대식 화장품으로 가공한 제품들도 나와 있었다. 하지만 서민들이 사기에 부담스러운 가격 탓인지 아직은 일반화되어 있지 않다고 한다. 아무리 세련된 화장품이라도 기능만 살린 화장품이 원형대로 바르며 느끼는 타나카 본래의 정신을 다 담을 수 없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타나카는 미얀마 사람들에게 화장품으로의 기능 보다는 삶의 일부처럼 보였다. 가이드 말에 의하면 미얀마 사람들은 해외에 이민을 가도 타나카 나무와 맷돌을 가지고 간다 한다. 그곳에서 타나카를 바르든 안 바르든 가져간다고 하는데 미얀마 사람들에게 타나카란 그만큼 화장품 개념을 넘는 고향 같은 의미라고 할 수 있다. 


타나카를 바르면 강력한 자외선 차단 효과가 있고 또한 피부의 기름기를 조절해주고 피부 건조도 막아 주며 미얀마 여인들이 좋아하는 향을 낸다고 한다. 이런 이유로 밖에서 일하는 미얀마 인부들은 유난히 따가운 햇볕으로부터 피부를 보호하기 위해 볼과 코에 타나카를 두껍게 바른다.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면 양 볼에 부적처럼 집중적으로 바르고 그 외 부분은 노출되어 있어 어차피 자외선 차단 효과는 부분적일 듯하다. 그러니까 미얀마 사람들은 타나카를 외출할 때 옷을 입듯이 습관적으로 바른다고 봐야 한다. 태어나면서부터 누구나 타나카를 바르면서 자랐기 때문에 오히려 바르지 않은 모습이 더 어색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 나라 사람들이 타나카를 얼마나 많이 애용하고 있는지 시장에 가보면 확실히 알 수 있다. 미얀마의 어느 시장에 가나 곳곳에 타나카 나무와 돌판 그리고 갈아서 뭉쳐 만든 갈색의 타나카 덩어리들을 수북하게 쌓아 놓고 판다. 이처럼 타나카는 미얀마 사람들의 삶 자체이다. 

                                                                          

▲ 시장에 쌓여   있는 타나카 시장에 가면 타나카   재료들을 수북하게 쌓아 놓고 판다. 돌판, 타나카를 갈아   뭉친 덩어리, 타나카 나무(왼쪽 아래부터 시계방:

잊지 못할 타나카 소녀의 미소

린린! 내가 그녀를 만난 것은 2014년 미얀마를 처음 방문했을 때이다. 양곤 외곽 타욱짜 시장 근처 저수지 위에 양계장을 지어 놓고 닭들의 배설물로 물고기를 키우는 양어와 양계를 동시에 하는 독특한 농장을 방문한 후였다. 근처 노점상에서 음료수를 살 생각으로 들렀는데 타나카 바른 소녀의 미소에 홀렸다. 14~15살로 보이는 수줍어하는 소녀의 미소 속에는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마력이 있었다. 사실 이 소녀의 나이는 15살을 더 먹었을 수도 있다.


미얀마에서 얼굴로 나이를 가늠하는 일은 무척 어렵다. 특히 여성인 경우는 더욱 그렇다. 미얀마 여인들의 얼굴이 작아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피부 결이 우리보다 고와서 그런 것인지 미얀마 여행 시 내 나이 가늠 대부분은 헛발질이었다. 어린아이 같이 보여도 19~20살인 경우가 많았고 어른들의 경우는 오히려 보이는 얼굴보다 실제 나이는 훨씬 어렸다. 


▲린린(가명): 양곤 외곽 타욱짜 시장 근처에서 만난 타나카 미소가 아름다웠던린린

린린이라는 이름은 사실 그녀의 진짜 이름이 아니다. 수줍은 듯 귀여운 타나카 소녀의 미소를 보면서 문득 아기코끼리가 생각났고 그런 이유로 수요일에 태어난 '린린 LinLin'이라는 이름이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미얀마 사람들은 태어난 요일에 따라 이름을 짓는다. 코끼리를 상징동물로 하는 수요일에 태어난 사람의 이름에는 린 Lin이라는 이름이 들어가기 때문에 떠오른 이름이 바로 '린린'이었다.(미얀마 사람들의 이름 짓기에 대해서는 추후 별도로 다루어 보겠다).        

  ▲린린의 동생: 어린이들에게는 남녀 불문 타나카를 발라준다. 사진기를 들이 대자 귀여운 포즈를 취해 주었다. 지금은 소년이 되어 있겠다.  

린린의 가족들은 도로 옆에 허름하게 대나무 집을 지어 놓고 작은 가게에 의지하여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지나가는 뜨내기손님들 푼돈으로는 아마도 생계유지가 어려울 것이다. 그리 넉넉하지 않은 살림에도 린린 가족들 얼굴에서는 궁핍함이나 고단함보다는 삶을 관조하는 듯한 미소가 넘쳤다. 내 짧은 미얀마어로는 소통의 한계가 있었지만 말하지 않아도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잠깐의 만남이었지만 린린 가족들의 맑은 타나카 미소를 보며 왜 사람들이 미얀마를 미소의 나라라고 하는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린린 가족이 선사한 선물 같은 수줍은 타나카 미소가 나를 더 깊숙이 미얀마 매력으로 끌어들였다.

  

타나카의 미소가 벌써 그립다  

돌아와 미얀마 현지 가이드 떼떼씨에게 타나카란 미얀마인에게 어떤 의미인지 물어보았다. 떼떼씨는 미얀마 사람임에도 타나카를 바르지 않았었다. 그것 또한 궁금하기도 하여 겸사겸사 질문을 했다.  


"미얀마 여인들에게 타나카란 무엇인가요?" 

"미얀마 사람에게 타나카란? 전통을 시키면서 심플하고 순수하게 예쁠 수 있는 화장품으로 미얀마 사람들(특히 남자들)은 타나카 바른 여자가 순수하고 미얀마 전통을 시키는 여자로 생각합니다.(그 느낌을 표현한 노래들도 많아요) '아이라이너 쓰는 여자는 여자 친구로 타나카 바른 여자는 결혼할 여자로' 이런 말도 있어요. 제가 타나카를 안 바른 이유는 땀이 많이 나는 편이라 타나카 바르면 얼굴이 더럽게 보여서요 ㅎㅎㅎ"

  

이번에(2019년) 다시 가보니 떼떼씨 말대로 양곤의 젊은이들은 타나까 바른 사람이 많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보니 지난 5년 동안 미얀마가 많은 변화를 겪었음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5년 전에는 가끔 타나카를 안 바른 사람을 본 적이 있었는데 반대로 지금 양곤의 번화가에선 타나카 바른 젊은 여성들이 드물었다. 허나 아직까지도 대도시를 제외한 대부분 미얀마 사람들은 타나카와 함께 산다. 언듯 보면 광대 분장을 한 것처럼 보이는 이런 화장법을 21세기에도 대부분 사람들이 즐겨하고 있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참 신기한 일이다. 이방인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니 타나카는 단순한 화장품이 아니라 전통을 중시하며 살아가는 미얀마 사람들의 자존심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번 미얀마 여행 시 나는 지난번 여행 때 경험하지 못했던 타나카 체험을 했다. 바간 파고다 투어 중 담마양지 파고다에서 여러 공산품을 팔고 있는 소녀는 간단한 영어로 우리에게 무료로 타나카를 해준다고 권했다. 10살 전후로 보이는 소녀의 현란한 손놀림으로 얼굴에 타나카 세례를 받았다. 생각보다 느낌이 참 좋았다. 혹시 미얀마 여행 간다면 꼭 한번 타나카 체험을 해보시길 권한다.

  ▲타나카 체험: 바간 담마양지 사원 근처에서 멋진 소녀의 솜씨로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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