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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년홈즈 Nov 05. 2019

하마터면 바지에다...

미얀마 자존심의 얼굴-두 번째 얼굴, 꼬불꼬불 미얀마 문자


세상에 급똥만큼 위급한 일은 없다. 아랫배에서부터 올라오던 부글거림은 미얀마의 더운 날씨와 합심해 나를 괴롭히며 미치게 했다. 목표는 오로지 하나, 나는 내 근심을 해결해 줄 곳을 찾아 뛰고 또 뛰었다. 하지만 사방이 모두 미얀마 글자만 보일뿐 내가 찾는 표시나 글자는 없었다.
'아~ 급하다 급해. 난 지금 배는 몹시 아프고, 한글은 무지 고프다.'                      

                                                              

▲ 우 베인 다리: 우 베인 다리에서 바라보는 석양은 황홀하다.

   

아름다운 우 베인 다리 위의 지저분한 추억
사진 좀 안다 하는 사람은 한 번쯤 가본다는 만달레이 근교 우 베인 다리(U-Bein Bridge)를 방문했을 때다. 이 다리는 일몰 시 석양과 어우러진 황홀한 풍광으로 잘 알려진 곳이다. 현명한 가이드는 시간 조절을 잘해 이때를 놓치지 않는다. 나는 이와 더불어 이 다리 구경할 때는 신진대사 시간 조절이 필요함을 절실하게 깨달았다.

드디어 다리에 석양이 걸렸다.

"와우~환상이다. 대박이야"

이곳저곳 말의 잔치가 벌어진다. 나도 합세 해 황홀경에 빠져 허우적대는 사이 내 아랫배는 뭔가 꿈틀거리는 신호가 주며 점점 더 큰일을 만들고 있었다. 꽃이 피면 지듯 아름답던 풍광도 서서히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때서야 나는 아랫배의 묵직한 신호를 감지할 수 있었다. 그때까지는 우 베인 다리가 그렇게 긴 줄 몰랐다.
'큰일이다.'
깨닫는 순간 앞에는 뱀같이 길게 뻗은 다리가 공포로 늘어져 있었다. 이 다리는 길이가 무려 1.2km에 이른다. 방금 전까지 황홀하고 아름답던 다리는 이제 지옥의 길이 되었다.     

                                                                                 

▲ 우 베인 다리 : 티크 목재로 만든 우 베인 다리는 길이가   1.2km에 이르며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다리라고 한다.

괄약근에 온 힘을 모으고 정신없이 뛰었다. 다리를 빠져나와 용케도 아직 내 머릿속에 남아 있던 생존 '영어'를 꺼냈다. 미소 가득한 미얀마 눈을 마주칠 때마다 나는 처절한 눈빛으로 외쳤다. "익스큐즈 미, 웨어 이즈 더 바스룸(Excuse me, where is the bathroom)?" 맞는 표현인지 아닌지, 영어를 알아듣는지 마는지 생각할 겨를이 없다. 말이 통했는지 눈빛이 통했는지 간절한 내 몸짓이 통했는지 친절한 미얀마 미소가 어딘가를 가리킨다.
 
나는 엉덩이에 힘을 모은 채 최대한 자연스럽게 행동하려 애썼다. 한국인에게 상상 이상의 호감을 표시하는 사람들에게 '코리아로(루=사람)'의 마지막 자존심은 지키고 싶었다. 한참을 걷다 보니 본능적으로 끌리는 곳을 발견했다. 안으로 들어서니 냄새는 분명한데 생각하는 화장실이 아닌 허름한 시멘트 건물만 보인다. 살펴보니 벽에는 그림 같이 생긴 미얀마 글자가 새겨져 있다. 오로지 미얀마어로만 남녀 구분 표시가 되어 있을 줄은 몰랐다.
 
'아! 저 글자 분명 배웠는데 생각이 안 난다. 어디가 남자고 어디가 여자란 말인가?'
 
하지만 그런 걸 따질 겨를이 없다. 복잡할 땐 단순한 게 상책이다. 일단 남자 '맨'은 한 글자, '우먼'은 두 글자니 한 글자 쪽으로 찍고 뛰어들었다. 문을 여는 순간 다나까 바른 미얀마 소녀가 놀란 토끼 눈으로 튀어 나온다. '아 이런 숨고 싶다.' 아랫배는 일촉즉발, 최후의 저항선이 무너지려 했다. 나는 사과도 못하고 반대쪽으로 냅다 뛰었다. 숨 쉴 틈도 없이 문을 열며 동시에 바지를 내리며 앉았다.
'휴우~ 0.1초 간발의 차이로 세이프!'
불과 몇 초 전 '쪽팔림'도 잊은 채 배설의 쾌감에 떠는 이 몸뚱이는 뭐란 말인가? 한없이 가벼운 내 존재를 씹으며 나는 그렇게 씁쓸한 마음으로 급똥을 해결했다.


나중에 알았는데 처음 봤던 한 글자는 미얀마어로 여성을 뜻하는 '마'자였다. 미얀마어로 성(sex/gender)을 구별할 때는 여성은 '마'로 남성은 '짜:'로 표기한다. (아래 사진 참조)
황홀한 자태를 뽐내던 우 베인 다리는 나에게 이런 참 지저분한 추억과 함께 몇 가지 선물을 주었다. 우 베인 다리를 갈 때는 반드시 급한 볼일은 해결하고 가라는 것과 평생 잊히지 않을 미얀마어 '마'와 '짜:' 두 글자를 선물했다. 덤으로 읽기 쉬운 한글을 만들어 준 세종대왕의 위대함을 깨닫는 기회도 주었다.    

                                                                                  

▲ 정신없이 뛰어들었던 우베인 다리 근처 화장실:생각해보니 공중화장실은 아니었던 듯하며 민가 어느 집 화장실이었던 것 같다.
▲ 미얀마 글자 자음 33자, 왼쪽 글자 표를 보고 따라 그렸다(오른쪽)


미얀마 문자는 그들의 자존심이다.
"까카가가으아, 싸사자자냐, 따타다다나, 빠파바바마, 야야라와따 하라아"
앵무새처럼 선생님의 입을 따라 읽던 미얀마어 첫 수업이 생각난다. 그렇잖아도 외국어 알레르기가 있는데 처음 만나는 미얀마어는 외계어 같았다. 발음뿐만 아니라 교재에 있는 글자를 보니 '아휴~' 이건 글자라기보다 그림에 가깝다. 한글에 익숙한 눈으로 뱀처럼 꼬불꼬불 연결된 글자들을 보니 머리가 빙빙 도는 것 같다. 글자들이 둥글둥글 붙어 있어 이런 글자를 끊어서 읽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 보였다.
 
미얀마 사람들은 꼬불꼬불한 암호 같이 어려운 글자를 대부분은 읽고 쓸 줄 안다. 통계 자료에 의하면 미얀마 사람들의 문자 해독률은 89.7%라고 한다. 미얀마의 경제 상황이나 교육 인프라 상황을 고려할 때 상당히 높은 수준이다. 이 통계가 2005년 유엔 개발계획(UNDP) 보고서에 나온 걸 감안하면 지금은 더 높아졌으리라 추측된다.
 
주변국인 방글라데시 41%, 인도 61%, 라오스 68%, 캄보디아 73%와 비교해 보면 미얀마의 문자해독률은 더욱 도드라져 보인다. 이를 보여주듯 미얀마 거리를 걷다 보면 무엇인가를 읽는 사람들을 자주 보게 된다. 와끌래타잉에(미얀마 전통 대나무 의자) 기댄 채 뭔가를 읽고 있는 미얀마 사람들을 보면 세상을 초월한 성자가 떠오른다.                                                                                       

▲ 미얀마 사람들 : 거리를 걷다 보면 종종 뭔가를 읽는 미얀마 사람들과 마주치게 된다.

 

미얀마 사람들의 문자 해독률이 높은 배경에는 높은 교육열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불교의 영향이 크다. 미얀마 사람들에게 불교는 생활의 일부다. 태어나 처음 이름을 지을 때도 스님에게 태어난 요일에 따라 이름을 받는다. 또한 파고다에서는 스님들이 어린아이들에게 글자를 가르친다. 불경 공부를 해야 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파고다가 교육의 일부를 담당하는 측면도 있다.

고유 문자를 가지고 있는 미얀마 사람들은 문자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아직도 웬만한 공공장소에는 미얀마어 중심으로 표기돼 있다. 물론 늦은 개방과 군부정권의 고집일 수도 있지만 내가 느끼기에는 그런 이유를 넘어 자기 문자에 대한 자부심 때문이다.
 
숫자 표기 체계에는 아라비아 숫자, 중국 한자, 로마자 등이 있는데 사실 고유 숫자 표기체계를 가지고 있는 나라는 많지 않다. 한글이라는 고유 문자를 가지고 있는 우리나라도 공식 숫자 표기는 아라비아 숫자 표기법을 쓰고 있다. 숫자 표기체계 자체가 문명 발달 척도는 아니지만 미얀마 사람들은 고유숫자 표기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관광객이 많은 곳에 지금은 영어 공용으로 표기되는 곳이 늘고 있긴 하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양곤 버스 노선 표기도 미얀마 고유 문자로 표기되어 있어 관광객들을 당혹하게 했다. 만달레이의 그 많던 오토바이에 죄다 미얀마 고유숫자로 표기된 번호판이 달려 있는 것을 보고 엄청 놀랐다.
 
공공장소와 생활 속에서 자기 문자를 사용하는 모습에서 미얀마의 자존심이 보였다. 어느 나라인지 모를 정도로 현란한 외래어 간판 천지인 우리 현실과 비교되어 더욱 그들이 멋지다는 생각이 들었다.       

                                                                              

▲ 미얀마 숫자 표기 : 미얀마는 고유의 숫자 표기 체계를 가지고 있다. 만달레이에서 만난 미얀마 오토바이 번호판


우리 한글도 사랑하자
얼마 전 SNS에서 흥미로운 동영상을 보았다. 우리나라에 와 있는 외국인 학생들이 한글날 즈음에 우리말 발음을 영어 알파벳으로 표기하여 읽는 실험을 했다. 그냥 우리말인데도 알파벳으로 표기해 놓으니 다들 읽기 버거워했다. 한글의 우수성과 편리성을 알리기 위한 이벤트였는데 미얀마 글자를 보니 새삼 한글을 만들어 준 세종대왕의 위대성이 돋보인다.  
지갑 속에 빳빳한 세종대왕만 좋아하지 말고 생활 속에서 한글 사용 실천으로 세종대왕님께 고마운 마음을 표현해야겠다.'언제쯤 지갑을 빳빳한 세종대왕으로 채워보나?' 하는 생각으로 살지만 오늘 하루만은 되도록 한글 사용을 실천해 보련다.
 
'그런데 오 이런! ' 그 꼬불꼬불 미얀마 글이 또 그리워지네.'                                                  


※미얀마 문자의 비밀

미얀마어는 언어 계통으로 볼 때 차이나-티벳어족의 티벳-바마어계에 속한다. 차이나-티벳어족의 공통점인 성조를 가지고 있으며 어휘가 대부분 단음절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미얀마어의 기원은 5세기~서기 3년 사이 인도의 브라미(Brami) 문자가 전해진 것으로 알려진다. 이것을 미얀마 토착민인 쀼족과 몬족이 수용하면서 변형되었고 불교가 전해지며 팔리어(Pali)와 산스크리트(Sanskrit) 어가 섞이면서 또 변형되었다.
다시 말해 미얀마어는 고대 브라미 문자, 팔리어, 산스크리트어와 쀼족, 몬족어가 적당히 혼합되어 변형된 문자라고 보면 된다. 한국어와 어순이 같기 때문에 배우기 쉽다고 하는데 어렵고 쉽고는 주관적인 판단인 것 같다. 배워보니 어순은 이해가 가지만 단어나 성조 있는 발음을 알기까지는 상당한 노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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