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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르 Jan 01. 2018

2018년 1월 1일의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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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산 후 뻐근해진 몸을 조금씩 풀어내고자 유튜브를 보며 요가를 시작했다.

이 날은 수월하게 육아퇴근한 날이라,

요가를 30분정도하고 유튜브로 이것저것 영상도 보고 침대에 누우니 저녁 10시.

신랑과 30분정도 '슬기로운 감빵생활'이라는 드라마를 보다가,

재미없어서 꺼버리고 30분정도 수다를 떨다보니 11시.

신랑은 12시에 깨워주겠다고, 아니면 1시간만 더 깨어있다가 새해를 함께 맞이하자고 권유했지만

새벽에 언제깰 지 모르는 아가가 있는 엄마는 그럴 여유가 없다.

피곤할 땐 일단 자는 게 남는거다.

아침에 일어나니 신랑이 12시가 되자마자 나에게 '해피뉴이어'라고 했다고 한다.

나는 그저 얼굴을 찡그리며 계속 잠을 이어갔다고.

자고 있는 아내에게 해피뉴이어라고 말하는 남자와

미안하게도 별 감흥이 없는 여자의 2017년 12월 31일.


다가오는 새해에 설레하지 않는걸 보니

산타클로스는 실존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버린 아이의 마음처럼

살짝 아쉽고, 조금은 안타깝고, 몹시 씁쓸한

서른을 맞은 한 아이의 엄마이자 여자사람의 2018년 새해 첫 날이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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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니 2016년 말, 2017년 초.

나는 원인모를 우울감에 시달리다 정신과에 드나들며 약을 먹고 있었다.

신랑은 여행을 가자고 권했고,우리의 연말연초 여행지는 오키나와였다.

이 오키나와 여행은 기적같은 힐링을 가져다줌과 동시에

우리 부부에게 아기 천사가 찾아온 계기가 되었다.

12월 31일과 1월 1일은 무조건 추운줄만 알았는데,

따뜻한 오키나와에서 맞은 새해는 무척 특별했다.

그리고 앞으로는 연말연시는 무조건 따뜻한 곳에서 맞아야겠다는

무리한 다짐을 하곤 했다.


그로부터 1년 후, 남은 것은 오키나와에서의 추억과 그리고 아기방에서 곤히 낮잠자고 있는 아기.

+ 아기랑 똑같은 표정으로 내 무릎을 베고 잠든 신랑과 함께 보내는 오후.

맛있는 음식과 멋진 풍경이 있는 여행지에서 맞는 연말연시도 좋지만,

그저 아무 탈 없이, 서서히 지고 있는 오후 5시즈음의 석양을보며

글을 써내려가는 이 순간의 1월 1일도

평생 잊지못할 기억으로 남을 것 같다.


아직 거두지 않은 트리가 있다. 매일매일이 크리스마스 같았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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