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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르 Apr 07. 2021

20210407 세상과 맞서지 못했던 옳음

영화 '자산어보'를 보고


코로나 이후로 처음 영화를 보러갔다. 평일의 영화관에는 3,4명 남짓한 사람들이 있었다. 평일 저녁이 이 정도라면, 평일 낮에는 아무도 없어 영화를 상영하지 않을 정도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랜만에 간 영화관에서 본 영화는 깊은 몰입감을 선물해주었다. 영화관도 오랜만이지만 영화 자체도 오랜만에 보는 것이었는데, 아무래도 집에서 보는 것과는 집중도가 다르다. 영화를 보는 동안은 나를 잊는다. 내가 온전히 그 화면안에 들어가 있는듯한 느낌이 든다.



나는 영화를 보기 전에 영화 관련 정보를 거의 보지않는다. 대신 영화를 검색했을 때 자주 등장하는 주요 키워드나 블로그 타이틀, 출연배우 등을 보고 볼 지를 결정하는데, 이 영화 역시 자세한 줄거리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고 본것이었다. 초반에는 천주교 이야기가 나와서, 앗, 이 영화는 천주교에 대한 영화인가? 까지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사실 천주교는 영화 전체의 아주 일부분에 대한 것 뿐이고, 전반적인 내용을 이끌어가는데 초반에만 역할을 하는 것이었다. (개인적으로 종교영화를 별로 안좋아한다.)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흑백으로 이루어져있다. (아, 한 장면만이 일부로 컬러로 나오는 부분이 있다. 이 장면 정말 아름다우니 영화에서 꼭 확인하시기를-) 동주때도 그렇고, 자산어보도 그렇고 흑백으로 제작된 영화를 볼때면 처음에는 익숙하지 않다. 왜인지 옛날로 거슬로 올라가 흑백 텔레비전을 보고있는 느낌에 뭔가 답답하게 느껴진다. 결국에는 흑백이 아니면 전달력이 반감되어 버리지 않을까 우려가 들 정도로, 색이 아닌 장면에, 배우들의 표정에, 자연의 소리에 집중할 수 있도록 배려한 감독의 선택에 감동하게 된다. 흑백영화를 이끌어가는 힘은 화려한 영상미가 아니라, 온전히 감독의 연출력과 배우 연기력의 몫일터다. 이 말은 즉, 주인공인 설경구, 변요한, 그리고 (개인적으로 훌륭한 역할이었다고 생각하는) 정약전의 아내역 이정은이 부족함 없이 스크린 안을 빈틈없이 메꾼다는 뜻이다. 오히려 나는 이 영화가 흑백이 아니었으면 어떻게했을 뻔 했나 라는 안도감까지 든다.


정약전 형제는 그들이 받아들인 새로운 세상, 서양학을 실용주의로 세상에 덕을 퍼트리고자 하였으나, 유교사상을 반대한다는 사이비라 오해받고 전부 유배를 가게된다. 버티는 것이 답임을 안 정약전은 흑산도라는 먼 유배지에서 정 많은 흑산도 사람들을 만나 인간미 넘치는 유배생활을 하게 된다. 그 중 '창대'라는 소년은 물고기와 바다에 대한 지식이 해박하고, 글을 좋아하는 청년으로, 정약전이 자산어보를 쓰자는 결심을 하게되는 중요한 인물이다. 창대라는 인물은 출세가 하고싶어, 스승인 정약전을 떠나 결국 진사자리에 오르게되나 탐관오리들의 치졸한 행태를 알게되고 좌절한다. 결국 자신이 행하려는 옳은 성리학, 목민심서의 내용대로 백성을 다스릴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데는 오래걸리지 않는다. 모든 양반 생활을 정리하고 흑산도로 돌아오는 도중, 스승 정약전이 자산어보를 마무리 지으러 들어간 우이도에 들르게 되는데, 여기에서 창대는 스승의 죽음을 목격한다. 그들이 옳다고 생각한 세상, 믿음은 정약전의 죽음과 창대의 귀환에 힘없이 무너지고 만다.


순수히 공부에 매진하는 창대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믿음이 세상과 통용되지 않을때, 그 괴로움을 내가 어찌 감히 알 수 있을까? 현실을 살아가는 내가 가지고 있는 믿음이야 얄팍하고 주워들은 지식들의 조합일 뿐이며, 특히 나는 현실과 가까운 정치에 대해서는 관심도, 열정도 없는 무지한 소시민축에 속한다. 정당한 것을 외치는 쪽은 항상 괴롭고 어렵다라는 선입견이 있어서인지 선뜻 그쪽에는 발을 담그기 어렵다. 이 영화를 보고 문득 기득권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세금을 쭉쭉 빨아먹는 국가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과연 나는 이대로 계속 걸어가도 좋은 것인가에 대한 답을 하기가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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