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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르 Apr 08. 2021

20210408 다 하면 안돼요?


아이는 올해 5살로, 완벽하게 자신의 감정이나 하루 있었던 일을 설명하지는 못하지만, 어느정도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으로 말을 깨우치게 됐다. 하루의 대부분의 시간을 유치원에서 보내므로, 이제 키운다기 보다, 나는 집에서 잠재워주고 밥만 먹여주는 꼴에 가깝다. 유치원에 다니면서 아이가 부쩍 큰 느낌이 드는데, 실제로 제법 성장했기도 하고, 보육보다는 교육이 메인인 유치원에서 무언가 계속 새로운걸 배워오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아기 때는 머릿속이 말랑말랑해서 새로운 것을 부담없이 받아들이는 것 같다. 나이가 들수록 새로운 것을 배운다는 게 벅차게 느껴지는 것은 배움의 양 자체가 점점 적어져 뇌가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기 부담스러워 하기 때문이 아닐까. 매일매일 왜냐고 물어보는게 아이의 일상인데, 어른인 나는 왜라고 질문해본 적이 언제일까. 분명 아이의 왕성한 호기심은 나로부터 물려받았을 거다라고 확신했지만, 지금의 나는 누군가에게 떳떳하게 '나는 질문을 하는 사람'이라고 선언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좋은 물음이라는 닉네임을 지어놓았으면서도..)


잠들기 전 아이와 대화를 한다. 은은한 조명과 푹신한 침대만 있으면 하루의 긴장이 스르르 풀린다. 언제서부터인지 정확히 기억은 나지않지만, 자기 전 책을 2권씩 읽어주는 것이 아이의 수면루틴이다. 원래 한글책 1권, 영어책 1권이 목표였으나 영어책이 아니라 한글책만 2권 가져오는 날도 많다. 항상 질문이 많은 아이는 책을 읽으면서 많은 질문을 한다. 왜? 왜? 왜 그런거야? 연신 질문을 던진다. 가끔은 대답해주다가 지칠 때도 많아 얼버무릴 때도 많다. 호기심이 많다는건 좋은건데, 내 귀찮아하는 대답이 아이의 호기심 천국을 망쳐버릴까 가끔은 겁도 난다. 이 날도 역시 책을 읽고 나서 유치원에서 있었던 일을 종알종알 이야기하고 있었다. 방과후 활동시간에 발레와 미술을 배우는데, 호기심 많은 아이는 이 시간이 무척 즐거운것 같았다. 매일 유치원을 가면서 "오늘은 발레하는 날이야!", "오늘은 미술하는 날이야!" 했다. 오늘은 특히 다른 친구는 클레이를 한다며 자신도 클레이가 하고싶다고 했다.


"그런데 클레이를 하려면, 미술이나 발레중에 하나를 포기해야해."

"왜?"

"특기활동은 2가지밖에 선택할 수가 없어. 2개만 선택해야해"

아이가 갑자기 울먹거리기 시작했다.

"다 하고싶어요"

옆에서 지켜보던 남편이 말했다.

"클레이는 집에서 하자! 어때?"

울먹거리던 아이가 금새 눈물을 그쳤고,

"내일 유치원 갔다와서 클레이할래요" 라고 하고는 곤히 잠들었다.

다음 날 아침, 아이는 잠에서 깨자마자 할머니에게 "오늘 유치원 다녀와서 클레이 할거에요" 라고 말했고, 나는 아차싶어 얼른 클레이를 주문했다. 하마터면 깜빡할 뻔 했다.


호기심 많은 아이는 다 하고 싶은 것이다. 이것도, 저것도, 재미있는 건 다. 하고싶은 것이 하고싶어 눈물을 글썽거리는 아이를 보며 나는 무엇이 하고싶어 눈물이 나는 삶을 한번이라도 살아본 적이 있는가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하기싫어서(회사 가기 싫어서) 눈물 흘린적은 많은데, 하고싶어서 눈물 흘린 적은 없는 것 같다. 간절히 원하는 일이 성인이 되어갈 수록 사라진다. 욕심 없이 사는 것이 마음편하면서도, 언제서부턴가 내 마음이 간절함을 놓아버린 것일지 모른다. 호기심을 가지고 산다는 것은, 간절한 마음의 끝자락을 어루만지며 사는 것이다.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좋다. 매일 피어오르는 작은 열망이 나를 소리없이 지피우는 삶을 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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