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흥용 작가의 새벽날개 중에서
신랑이 결혼 후 나에게서 발견한 의외의 면 중의 하나는, 내가 웹툰을 좋아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웹툰을 주로, 회사에서 정말 그 무엇을 해도 잠이 안 깰 때 화장실에서 한 편 보거나... (정말 신기하다. 금세 잠이 홀딱 달아날 뿐 아니라 읽다 보면 10분이 후딱 가 있다.) 나와 영화 취향이 맞지 않는 신랑이 주말에 거실에서 영화 볼 사이 심심해진 내가 침대에 누워 괜찮다고 검색된 웹툰을 정주행 할 때 이용한다. (이러다 날밤 샌 적이 꽤 있었지...)
한 마디로 웹툰은 킬링타임용으로 딱이지만, 이렇게 시간을 들여 웹툰을 검색해 이것저것 보다 보면 정말 괜찮은 수작들을 만난다. 재미를 위해 쉽게 스크롤을 후딱 내려버리며 대충 읽을 수 없고, 장면과 장면 사이 의미를 곱씹어 보며, 대사에서 의미하는 속뜻을 헤아리게 될 때 전율이 돋고 코끝이 찡해지는 작품들 말이다.
박흥용 화백의 '새벽날개'는 정말 아끼는 지인 여럿에게 추천한 작품으로, 삶이란 무엇인지, 행복과 사랑의 의미는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그렇다. 단순히 답을 던져주는 것이 아니라,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 이 작품의 묘미다.
'새벽날개'는 오토바이 퀵배달 기사를 하는 주인공과 주변 인물들을 통해 에피소드를 그려 나가는데, 내용은 말할 것도 없고, 요란하지 않고 담백한 문체와 그림체, 생각할 여유를 주는 것처럼 느껴지는 그림의 여백도 좋았다.
그중 웹툰을 보고 나서 마음이 먹먹해져 원노트의 감상을 적어두었던 한 편을 소개하고자 한다.
만화이지만, 수필이고 에세이 같은 박흥용 작가의 ‘새벽날개' 34화 [가치] 에피소드는 내 삶의 만족과 의미는 어디에 있는지 생각해 보게 한다.
에피소드는 신문배달원으로 시작해 명문대 졸업을 거쳐 CEO로 정년 퇴임한, 사회적으로 성공해 보이는 한 남자가 학생 시절 신문보급소 동기와 해후하며 대화하는 내용이다. 퇴임한 CEO는 세상이 말하는 출세가도를 달렸고 부족함이 없지만, 삶이 허전하다고 말한다.
보급소 동기는 '사는 것이 1회용 건전지 같은 것' 같다고 하며, TV 리모컨, 현관문 도어록 등 주어진 위치에서 수명을 다하는 건전지처럼 각자 가치 있다고 믿는 일에 매달려 방전하는 것이 삶이 아니냐고 한다.
그는 무학력자도 시작할 수 있는 일인 '염습' 일을 하며 마주하는 고인을 볼 때마다 그가 어떤 일에 가치를 두고 살았을지를 생각해본다.
작가는 절대적인 가치와 상대적인 가치를 얘기하며, 내 목숨과 바꿀 만큼 세상에 가치 있는 일, 결국은 죽을 인생에서 꼭 해야 하는, 만족스러운 삶을 만드는 가치는 무엇인지 묻는다.
'방전'이라는 단어가 참 가슴 아프게 와 닿았다. 쓰임을 다했지만, 결국은 재충전되지 못하고 버려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각자의 커리어에 따라 할 수 있는 일이 한정되고, 일을 할 수 있는 나이도 한계가 있기 때문에... 그러니까 외적인 요인 때문에 '방전'이라는 단어를 선택한 것으로 느껴지지 않아서 더 가슴이 아렸다.
내 삶의 단 하나 의미 있는 가치와 일을 찾지 못하고, 상대적인 가치와 세상 논리에 따라 할 수 있는 일을 선택하기 때문에... 내면의 소리를 듣지 못하기 때문에, 내일 죽을 것처럼 살지 않기 때문에 모든 목표나 과업을 이루고도 퇴임한 CEO처럼 '허전한' 삶이 아닐까.
자신만의 절대적인 가치를 따라 산다면... 외부의 일반적 필요가 끝나면 내 가치도 끝나는 '방전'이 아니라, 내 스스로 필요를 창출해서 늘 충전되어 있는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1회용 건전지 같은 삶이 되지 않으려면... 진정 노력하고 원하는 것을 쟁취하고도 마음 한 구석이 '허전한' 삶이 되지 않으려면... 상대적인 가치가 아닌 나만의 '절대적인 가치'를 찾고 또 그의 실현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렇다면, 그것이 바로 '만족스러운 삶'일 것이다.
그렇다면 나만의 절대적인 가치는 무엇이고, 어떤 방향이 되어야 할까.
있다가도 없어질 영원하지 않은 부, 명예, 인정에 가치를 두는 것은 퇴임한 CEO의 삶과 같다. 모든 것을 다 가진 것 같은 유명인사나 연예인이 그토록 마약에 많이 빠지고 자살하는 뉴스를 보면, 절대적인 가치는 이런 방향이 되어서는 안 될 것 같다.
그렇다고 노력 없이 무력하게 사는 것이 추구해야 할 방향이라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삶을 방전한 건전지 같다고 하는 보급소 동기의 말을 보면, 그도 역시 절대적인 가치를 찾고 의미 있는 삶을 사는 인물 같지는 않기 때문이다.
행복은 자기만족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가치 있는 목표를 향한 헌신적인 행동에서 나옵니다. (헬렌 켈러)
삶의 질은 자신이 맺고 있는 관계의 질이다. (내가 만난 1%의 사람들 중)
자족하는 사람은 세상 좋은 것을 다 소유한 사람이 아니라 무엇이든 좋은 것으로 만드는 사람이다. 자족하는 마음은 영적인 경험이다. 폭풍우 가운데서도 평온을 유지할 줄 아는 마음이고, 이 평온함은 수동적인 상태가 아니다. 오히려 매우 능동적이다. 자족할 줄 아는 사람은 더 나은 사람이 되려 하고 더 선한 행동을 하려고 노력한다. 자족하는 마음은 정체되어 발전이 없고 가만히 고여있는 상태가 아니다. (내 아이에게 무엇을 물려줄 것인가 중)
행복은 내 손에 쥔 것의 소중함과 위대함을 마음속에 담고 사는 사람에게 후하다. 새로 갈망하는 것을 줄이고 손에 쥔 것들의 가치를 지켜내는 일상에 행복이 있다. 행복하지 않으면서 행복하다고 착각하거나 행복한 척해서는 진짜 행복을 누리며 살기 어렵다. 가족과 자신을 속이지 않으며 사는 진정한 시간과 본질에 몰입하는 생활방식에 더 큰 행복이 머문다.
인격과 삶의 질은 농밀한 관계다. 인격은 삶에 대한 감사와 사람에 대한 예의 그리고 남을 무시하지 않는 따뜻한 마음이 내뿜는 향기다. 인격의 깊이가 행복과 성공에 미치는 영향은 지대하다. 행복과 성공은 높이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깊이 들어가는 내면의 힘에 있다. (잘 살고 있나요 중)
읽은 책 중에서 행복에 대해 서술한 문장 중 기억에 남는 것을 정리해 본 것이다.
어떤 위대한 '명사'를 향해 달려가지 않고, 일평생 동일한 '동사'를 실현하며 사는 삶을 살고 싶다.
우리 회사의 최초의 여성 본부장이나 세후 연봉 1억의 삶이 아니라...
존중과 사랑으로 더 따뜻한 세상이 되도록 돕는 삶... 다른 사람이 삶의 의미를 찾고 행복하도록 도와주는 삶... 이것이 진정 절대적인 가치가 담긴 의미 있는 삶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러나 아직 나는 다른 사람을 돕고 용서와 사랑으로 관계를 맺는 일보다, 당장 더 편하고 연봉 높은 직장에 이직할 일에 흥분하고 마는 평범인이다.
어느 영화에선가 '사랑'과 '사람'에 가치를 두고 산 사람은 죽을 때 후회하지 않는다고 한 기억이 난다.
만화에서 장례식장이 장례예식장으로 표현된 부분을 보면, 주인공의 마지막 말처럼... '나는 왜 그동안 안 죽을 것처럼 살았는지'를 곱씹게 된다.
조금 더 가치 있게 살자. 조금 더 신념대로 살자. 조금 더 비겁하게 살지 말자.
다짐해 본다.
지금, 당신에게도 묻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