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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청 Sep 08. 2020

돌고래를 좋아하는 너에게

진짜배기 애정은

Dolphins (2018), 진청


작가마다 각자 천착하는 소재가 있다.

프리다 칼로에게는 원숭이, 호크니에게는 물, 쿠사마 야요이에게는 동그라미.


내게 그 대상은 돌고래다.

돌고래를 처음 본 건 열두 살, 미국에서 살 때였다. 가족여행으로 바하마 섬에 갔는데, (지금이라면 돈을 줘도 안 할) '돌고래와 수영하기' 체험을 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돌고래를 실제로, 그리고 가까이서 본 순간이었다. 이 프로그램은 대략 돌고래와 오 분 정도 수영하게 해 주고, 만지게 해 주고, 마지막으로 돌고래가 사람 볼에 뽀뽀해주는 구성이었다. 돌고래를 만져본 손의 감각은 아직도 생생하다. 마치 공기로 꽉 찬 풍선을 만지는 듯한 뽀드득함. 그리고 웬만한 사람보다 더 큰 몸집에도 불구하고 어딘가 사람을 감내해주는 듯한 인상이 있었다.


아빠랑 같이 들어갔는데, 체험 후 물 밖으로 나와보니 아빠 발이 어디에 베였는지 피가 꽤 많이 나고 있었다. 돌고래의 후각은 사람보다 훨씬 민감하고, 물속에서라면 그 냄새를 맡지 못했을 리가 없는데 돌고래는 미동조차 없었다. 하필이면 '돌고래와 수영하기' 체험장 바로 옆이 '철갑옷 입고 상어와 수영하기'였는데 만약 우리가 들어갔던 물에 돌고래가 아니라 상어가 있었다면 어땠을지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어쨌든 첫 만남을 계기로 나는 돌고래에 완전히 반해버렸고, 돌고래와 관련된 거라면 뭐든지 다 모으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의 주변인들 모두가 나의 공공연한 돌고래 사랑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돌고래와 관련된 물건만 보면 까마귀처럼 내게 가져다주었다. 그렇게 여태까지 약 15년가량 모은 물건들이 돌고래인형부터 시작해 돌고래가 주인공인 소설, 돌고래 스티커, 돌고래 귀걸이, 돌고래 반지, 돌고래 키링까지 끝도 없다.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후로부터 돌고래는 자연스레 내 그림의 단골 등장 소재가 되었다. 돌고래는 부드러우면서도 날렵한 유선형 몸에 볼록하고 귀여운 이마를 가지고 있는데, 그 형태가 그리기에 굉장히 재밌다. 돌고래 다큐멘터리나 백과사전을 보면서 아예 돌고래만 몇십 마리를 그린, 돌고래 전용 스케치북도 있을 정도다. 형태를 그리고 눈과 입을 그려주면 완성되는 그 얼굴을 보다보면 사랑에 빠진다.


비록 돌고래에게 처음으로 매료된 순간은 '가둬진' 돌고래를 봤을 때였지만, 지금부터라도 작은 수조 속에 갇힌 돌고래들을 바다로 돌려보내는 일에 그림으로 거들고 싶다는 꿈이 있다. 얼마 전에도 여수 수족관에서 벨루가 고래가 폐사한 일이 있었고, 인간이 고래류를 가두는 한 비슷한 일은 끊임없이 반복될 것이다. 진심으로 돌고래와 고래를 좋아한다면, 가두고 가까이서 예뻐해주는 게 아니라 바다에서 자유롭게 수영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진짜배기 애정일 것이다.


인스타그램: @byjeanc

웹사이트: https://www.artbyjeanc.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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