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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청 Sep 09. 2020

아홉수

서른의 나도 나야

Midnight (2019), 진청


어제는 나의 스물아홉 번째 생일이었다.

열아홉의 나는 다가올 이십 대를 두 팔 벌려 반겼는데, 스물아홉의 나는 어떻게든 나이 앞자리가 바뀌는 일만은 피하고 싶은 마음이다.


정작 삼십 대에 입성하면 아무렇지도 않다는 말을 많이 듣긴 했지만, 지금의 나는 숫자에 초연하기가 어렵다. 내가 곧 서른이라니 믿을 수가 없고 초조하다. 작년부터 나는 이십 대의 마지막 일 년은 후회 없이 보내고 싶다는 일념으로 많은 일들을 계획했었다.


오랜 준비 끝에 올해 가을부터 영국에서 당분간 있을 수 있게 되었고, 비자만 받으면 되는 상황이었는데, 코로나가 터지면서 영국에서의 생활도 함께 물거품이 되어버렸다. 여름이 오기 전까지만 해도 막연히 코로나가 잠잠해지고 갈 수 있을 거라고 희망을 가지고 있었다.


결국 상황은 좋아지지 않았고 난 그대로 한국에 남아 있다. 뿐만 아니라, 올해 계획했던 그림 클래스와 페어 일정 등도 코로나 사태로 모두 무기한 연기되거나 취소되었다.


그리고 어느새 9월이 되었고 나의 이십 대는 네 달도 채 남지 않았다.

계획했던 일들이 무산된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이십 대의 마지막을 후회 없이, 의미 있게 보낼 수 있는 걸까. 이런 생각도 다 나이에 대한 강박에 불과한 걸까. 20대에 충분히 삶을 살아내지 못했다고 생각이 들어서 그런 걸까. 아니면 아직도 스스로 애같이 느껴지는 내가 몇 달만에 어떤 일련의 행동들을 통해서 어른이 될 수 있다고 무의식 중에 생각하는 걸까.


어찌 됐든 난 지금 뭐라도 하지 않으면 미래에 후회할 것만 같았다. 아직은 나이 앞 자릿수가 곧 바뀔 미래가 실감이 나질 않는다. 그렇지만 발버둥 치며 현실을 부정하는 것보단 아무렇지 않게 '서른의 나도 나야'라고 받아들이는 편이 훨씬 멋지단 걸 알고 있다.


생각해보면 마흔의 나, 쉰의 나, 예순의 내가 뒤돌아보기에 서른이라는 나이는 수만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청춘일 테니.


인스타그램: @byjeanc

웹사이트: https://www.artbyjeanc.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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