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시멀리스트 작가의 소유에 대한 심경 변화
나는 맥시멀리스트다.
어렸을 때부터 이런저런 물건 모으길 좋아했는데, 또 잘 버리진 못해서 온갖 물건들로 방이 가득하다. 특히나 여덟 살 때부터 지금까지 20년 이상 같은 집에서 살다 보니 내 방은 내가 모은 물건들의 역사나 다름없게 되었다.
다니던 회사를 퇴사하고 창작하는 삶을 살면서 얼마간은 수입이 딱히 없었다. 회사를 다니며 모아둔 돈에 의지해 생활비를 아끼는 수밖에 없었는데, 회사 다닐 때 스트레스 받으면 물건에 소비하는 습관을 못 버려 처음 몇 달은 그대로 사고 싶은 게 있으면 샀다.
그러다 작업실을 구하고, 작업량이 많아지면서 화구 사는 지출이 점점 커졌다. 물감은 생각보다 비싸고, 생각보다 빨리 쓴다. 어느 날 가계부를 보는데 전체 지출에서 작업실 비용, 물감, 종이 등등 그림 그리는 데에 들어가는 비용이 차지하는 비율을 보고 깜짝 놀랐다. 이대로 가면 회사 다닐 때 저축해둔 돈은 내 예상보다 빨리 동날 것이 틀림없었다. 결국 제작비와 식비, 통신비 등 꼭 필요한 지출을 제외하고는 줄여야 한다는 결론이 났다.
맥시멀리스트인 나에게 꼭 필요한 것만, 때로는 필요한 것도 사지 않는 삶이 반강제적으로 찾아왔다. 옷이랑 화장품도 거의 안 사고, 인테리어 소품도 안 사고, 친구랑 어디 놀러 갔다가 예쁜 걸 보고 충동구매하는 일도 없어졌다. 8월 기준으로 내 소비는 화구 사는 지출을 포함해도 연초에 비해 반절 이상 줄었다.
이렇게 몇 달 살아보니 아무것도 안 사도 사는 데 아무 지장 없는데 나는 왜 그렇게 소비하는 삶을 놓지 못했던 걸까. 물건에 쓴 돈을 더 야무지게 쓸 수 있지 않았을까 하고 다소간의 후회도 든다. 가령, 펀드를 하나라도 더 들어놨다거나 아니면 새로운 경험들을 하는데에 썼다면 더 좋았을 텐데.
나는 내가 누구인지가 중요한 사람인데, 소유물로 스스로를 정의하려 했던 것 같다. 그래서 일 년에 몇 번 입지도 못할 옷을 사 입고, 필요도 없는 화장품을 하늘 아래 같은 색조는 없다며 쟁여두고, 놓을 데도 없는 인테리어 소품들을 사다가 방에 전리품 마냥 진열해뒀나보다. 옷장이 아닌 뇌와 마음을 채워야하는 걸 알면서도, 단시간에 나를 표현하고 정의할 수 있는 쉬운 방법들에 돈을 투자한 것이다.
당장 미니멀리스트가 될 수도 없고, 미니멀한 삶이 꼭 지향점이 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몇 달간의 물욕을 억제한 시간은 한 가지를 알려주었다.
소유로는 스스로를 정의할 수 없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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