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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청 Sep 06. 2020

성수동 작업실

1.5평짜리 나만의 공간

Pages from my sketchbook (2019), 진청


코로나와 장마가 휩쓴 이번 여름, 성수동에 작업실을 구했다. 작업실을 구해야겠다고 생각한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첫 번째는, 그림과 삶을 조금이라도 분리할 필요성을 느꼈다. 어느 순간부턴가 내 삶은 그림을 빼면 아무것도 없는 삶이 되어버렸다. 회사를 퇴사한 후 얼마 있지 않아 코로나 사태가 터져서 거의 집에만 있게 됐는데, 하루 종일 책상에서 그림 그리다 밤에는 책상 옆 침대에서 자는 루틴을 반복하다 보니 일과 일상이 아예 분리되지 않아 혼란스러웠다.


두 번째는, 환경이 작업에 미치는 영향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한 지역에서 다른 지역으로 거처를 옮긴 작가들의 작품을 보면, 화풍이 변한 것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태어나서부터 현재까지 이사 가지 않고 계속 같은 동네에 살고 있는 나는 새로운 변화가 내 그림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궁금했다.


마지막으로, 물감이 나의 모든 옷과 물건에 묻기 시작했다. 생활공간과는 분리된 그림 그리는 공간이 절실했다.


작업실 매물 사이트를 5월부터는 매일 같이 한두 달 정도 본 것 같다. 게시물로 올라오는 대부분의 작업실은 홍대나 양재 쪽에 위치해있었는데 둘 다 내가 선호하는 지역은 아니었다. 그러다 우연히 성수동 작업실 사진을 봤는데 채광과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고, 성수동이라는 미지의 동네에 매력을 느꼈다.


작업실을 보러 가는 길은 유난히 하늘이 청명했다. 거리상으로는 그렇게 멀진 않았지만 교통이 불편해서 집에서 작업실까지는 한 50분 정도 거리였고, 걷는 시간만 약 30분 정도 소요됐다. 버스 정류장에서 내려서 작업실까지 걸어가는 골목은 거의 다 1층에서 3층 정도의 저층 건물들이었다. 그래서 하늘이 시원하게 트여 보였고, 가게마다 사람 냄새 물씬 나는 옛날 서울 느낌이 짙었다.


그렇게 걸어 걸어 도착한 작업실은 2층짜리 건물의 2층과 옥상을 사용할 수 있는 형태였다. 가까운 거리에 작은 밥집들, 베이커리, 편의점이 있었고 인터넷에서 본 사진처럼 채광이 좋고 아늑한 공간이었다. 그리고 스튜디오 형식이라 다른 작가님들과도 교류할 수 있었다. 여태 본 작업실 중에서 가장 좋은 조건에 가장 마음에 드는 공간이었던지라 더 고민하지 않고 그 자리에서 계약했다.


7월 22일에 입주해서 아직 입주한 지 두 달도 안 됐지만 이제는 곧잘 지도 없이 주변을 잘 다닐 수 있다. 내 작업실의 가장 큰 장점은 걸어서 5분이면 한강, 20분이면 서울숲에 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림이 손에 안 잡히거나 허리가 아프면 언제든 탁 트인 한강이나 서울숲을 걸을 수 있다. 그리고 아직 코로나 때문에 제대로 다녀보진 못했지만 소위 말하는 '힙'의 성지답게 분위기 좋은 카페, 펍, 식당으로 가득하다.


1.5평 남짓의 작은 공간에, 옆길로 버스가 지나가면 진동이 느껴질 정도로 낡은 건물이지만 그조차도 낭만으로 느껴지는 나만의 공간. 내 첫 번째 작업실.

성수동에서의 생활이 앞으로 내 작업을 어떤 방향으로 흐르게할지 기대된다.



인스타그램: @byjeanc

웹사이트: https://www.artbyjeanc.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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