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에게 유전자로 물려준 몇 가지 중 가장 확실한 게 있다면, 엄마 아빠의 튼실한 허벅지가 아닐까 싶다. 신랑과 나는 남자, 여자 기준으로 우열을 가리기 힘들 정도의 허벅지 둘레를 가지고 있었으니 갓 태어난 아가의 토실한 허벅지에 굵은 주름이 깊게 페인 걸 보며 역시나 우리 아들이 맞는구나 싶어 미소 짓게 했다.
요즘 대세 송가인 씨도 허벅지가 굵은 남자가 이상형이라고 방송에서 얘기할 정도로 남자의 허벅지는 굵을수록 건강함의 상징이나, 여자의 허벅지는 (내가 있어본 결과) 그다지 좋을 게 없다. 한때 가수 유이씨의 탄력 있는 탄탄한 근육의 허벅지가 말벅지라며 인기를 끌기도 했지만 다시 말해도 난 탄탄한 근육의 말벅지가 아닌 그냥 튼실한 허벅지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언니에게 물려받은 조금 타이트한 청바지를 입고 멀리뛰기를 하다가 두 다리가 쭈그린 채로 땅에 닿는 동시에 허벅지의 근육이 팽창되면서 왼다리 허벅지 안쪽 시접이 툭하며 무릎을 지나도록 터져나갔다.
처음엔 너무 당황해서 서지도 앉지도 못하다가 그창피함에 친구가 빌려준 점퍼를 허리 춤에 묶은 채로한 번도 안 쉬고 울면서 집까지 뛰어간 기억이 있다. 또 아가씨 때 한 동안 유행했던 슬림한 스키니 바지도 내가 입으면 앞 벅지, 뒷 벅지가 도드라져서 스모선수를 연상케 했다. 더구나 허리와 허벅지의 사이즈 차이로 인해 바지를 살 때마다 돈을 더 주고 허리사이즈를 주먹 두개만큼 줄여 입어야 했던 게 가장 큰 불편함이었다.
“지은아, 허벅지가 두꺼운 사람이 건강한 거래. 여자는 나이 들수록 허벅지가 두꺼워야 성인병에도 덜 걸린 다더라.”
허벅지가 야리야리한 친구들이 나를 위로했다.
“건강이고 뭐고 난 상관없으니 그냥 얇은 허벅지로 살고 싶다고!!”
나도 나이가 들수록 허벅지가 두꺼운 사람이 건강 하단 말을 티브이 건강 프로그램에서 본 적이 있다.
우리 몸의 모든 근육이 중요하지만 허벅지 근육은 성장호르몬의 공장이며, 인슐린 호르몬의 휴식처라서 허벅지 근육이 튼실한 사람은 회복도 빠르고 혈당조절 능력이 탁월하다고 했다.
하지만 반평생 튼실한 허벅지를 갖은 여자로 살다 보니 그다지 위로가 되는 말은 아니었다. 더욱이 내 허벅지는 대부분 근육보다는 살이 차지하는 비중이 더 컸으므로 실제로 의학상식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그런데 의외의 곳에서 위로받는 일이 생겼다. 바로 우리 아들이 축구선수의 꿈을 키우기 시작하면서부터다. 아들은 엄마 아빠의 슈퍼 허벅지를 그대로 물려받아 그 튼실한 허벅지에서 나오는 슈퍼 킥을 선보였으니, 제 나이 또래에선 대단히 센 킥이었다. 달리 물려줄 유산도 없는데, 아들의 꿈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될 수 있다니 이 얼마나 대단히 기쁜 일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