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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은 Aug 01. 2020

시작의 이유

나에게서 머물다

나의 20대엔 나만의 시간이 왜 필요한지 알지 못했다. 그저 친구를 좋아하고, 영화를 좋아하고, 여행을 다니고, 십자수를 놓고, 우리들의 수다로 밤하늘을 수놓기도 했었다. 그때그때 하고 싶은 것이 생기면 했고, 놀고 싶으면 놀았다. 그러다가 나와 꼭 맞는 짝을 만났다.      


나의 30대엔 그 짝과 결혼을 하고, 우리를 닮은 아들을 하나 낳았다. 아이를 위해 삼십 분에 한 번씩 사십 분에 한 번씩 윗옷을 올리고 젖을 물리고, 내가 가장 아껴 매번 손빨래하던 옷은 세탁기로 향하고, 아이의 가제수건을 손빨래하고, 아이가 물고 빠는 장난감을 소독했다. 아이가 잠이 올 땐 내가 즐겨 부르던 나의 노래 대신 아이의 노래를 불렀고, 가끔 나도 모르게 센티해지는 날엔 나의 시 대신 아이의 시를 읊었다. 아이가 웃으며 나를 보면 난 나의 단어 대신 아이의 단어를 쓰며 얼굴을 맞대고, 아이가 조금 더 자랐을 땐 일 더하기 일을 하기 위해 나의 열 손가락을 움직이고, 곧게 잘 뻗은 숫자 일을 닮은 과자를 고르고, 숫자 일을 닮은 막대기를 찾아다니기도 했다. 그렇게 아이가 자랐다.     

 

내 나이 사십. 내가 십 년을 아이를 키우는 동안 아이는 쑥쑥 자랐고 난 작아졌다. 마흔을 바라보며 아이는 더 이상 내게 삼십 분에 한번 사십 분에 한번 젖을 요구하지 않았고, 친구와 놀다 오겠다며 해맑게 웃고 나가는 날이 많아졌다. 나에게 시간이 머무는 게 고통스럽게 느껴졌다. 내가 마치 아무것도 하지 않는, 할 수 없는 쓸모없는 사람이 된 것 같은 허탈감이 나를 순간순간 비참하게 만들었고, 그때마다 난 추락했고 부서져갔다. 그렇게 몇 년을 고통스럽게 흘려보냈다. 물론 그 몇 년을 아무것도 안 했던 건 아니다. 찾아다녔다. 내가 하고 싶은 게 뭔지. 내가 잘할 수 있는 게 뭔지. 미친 듯이 찾고 싶었고. 절실했다. 그러던 중 인터넷에 올라온 글을 읽으며 눈물이 났다. 자존감이 떨어져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어느 젊은 여자의 사연이었다. 내가 읽은 사연은 내 마음을 대변하는 듯했고, 단숨에 사연을 읽어 내렸다. 그리고 알아버렸다. 내가 아이를 위해 오롯이 아이를 키우는 동안 나는 아이만을 사랑했고 나를 돌보지 않았다는 것을. 왠지 모르게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난 엄마니까. 그 시간을 후회하는 건 아니다. 아니 오히려 너무 잘했다고 말해주고 싶다. 다만 그 긴 시간에 아이도 사랑하고 나도 사랑했더라면. 어쩜 부서져 가는 나의 몸을 붙잡느라 아이에게 짜증을 내는 횟수가 줄어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아이에게도 나에게도 모두 힘든 시간이었음이 가슴 아플 뿐이다.       


그녀에게 설루션이 내려졌다. 그것은 매일매일 나의 하루를 나를 위해 정성스럽게 보내는 것이다. 몇 년을 힘들게 찾아다니다 보니 매일매일 나의 하루를 나를 위해 정성스럽게 보낸다는 것이 어떤 의미 인지 어렴풋이나마 알 것 같다. 그래서 내가 나에게 내리는 첫 번째 설루션은 정성을 다해 글을 써보는 것이다. 하루하루 나의 생각을 정리하고 그것을 글로 옮기다 보면 어렸을 때 엄마가 한 올 한 올 내 머리카락을 정성스럽게 빗겨준 것처럼 나 스스로 나의 몸을. 나의 마음을 쓰다듬을 수 있는 힘이 길러지길. 그렇게 위로받은 나의 몸과 마음이 좀 더 탄탄한 자아를 길러 낼 수 있길 기대해본다. 정성스럽게 보낸 하루가 나를 더욱 나답게 빛내줄 날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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