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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은 Aug 22. 2020

게코도마뱀의 가출

율이가 2학년 때 방과 후 생명과학에서 게코도마뱀을 데리고 왔다. 도마뱀이라 해서 정말 징그럽겠다 싶었는데, 와서 보니 정말이지 너무~~~ 이쁜 아가 도마뱀이었다. 몸통은 내 새끼손가락 정도 길이에 세모난 얼굴, 눈은 정말이지, 보석을 담은 반짝이는 눈이었다. 그렇다 해도, 난 도마뱀을 만질 생각은 꿈에도 없었으며, 파충류에서 뿜어져 나오는 그 징그러운 이미지는 게코도마뱀의 얼굴이 제아무리 예쁘다 해도 지울 수가 없었다.

     

예쁜 집을 샀다. 코코넛 안식처도 넣어주고, 베딩도 폭신하게 깔아주었다. 아침저녁으로 습하게 물을 뿌려주고, 꿈틀거리는 밀웜도 두 마리씩 꼬박꼬박 넣어주었다.      


율이의 친구들이 몰려왔고, 하나같이 예쁘다며, 너무 키우고 싶다며 율이를 부러워했다. 그중에는 게코도마뱀을 꺼내서 손에 놓고 노는 친구도 있었다. (꺅~~~ 대단해 대단해)     


게코도마뱀은 부끄럼 쟁이었다. 하루 종일 안식처에서만 있다가 식구들이 모두 잠이든 후에야 밖으로 나왔다. 한 번씩 불을 끄고 조용히 다가가면 그 비싼 얼굴을 볼 수 있었는데 정말이지 모기를 제외하고 그 어떤 곤충도 만지지 못하는 나도 살짝 쓰다듬어 보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아침이 되고 물을 뿌려주려는데, 느낌이 살짝 이상했다. 안식처를 들어 올려 도마뱀의 안부를 확인하려는데. 엥? 없다. 게코도마뱀이 없다. 아무리 이곳저곳을 다 들추고 찾아봐도 없다.


그렇게 게코도마뱀은 가출을 했다.      


생명과학수업을 같이 듣던 율이 친구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아~~ 가출? 에이 설마 우리 집 도마뱀은 밀웜들이 잡아먹었어요.”;;;;      


우웩~~~~ 어찌 이런 일이;;; 먹이로 준 밀웜들이 반란을 일으키다니      


“아냐 그럼 뼈라도 남아있어야지 흔적도 없다니까”  

    

“뚜껑도 잘 덮어 놨다며, 그런데 어떻게 가출을 해~ 밀웜 소행이라니까. 아~ 언니 혹시 태로가??(우리 집 강아지)”      


태로를 불러서 끌어안고 태로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물었다.      

“태로야 설마~~~ 너 아니지? 그치? 우리 태로가 그럴 리가 없지? 살아있는걸 아그작 아그작~~ 했을 리가 없지?”     

여전히 녀석이 수사대상 일 순위지만 녀석의 묵비권 행사에 그만 더 이상의 취조는 의미 없는 일이었다.

 

그렇게 두 달여의 시간이 흘렀다. 밀웜 때의 습격이었을까. 태로의 깜찍한 범죄였을까. 그렇게 사건은 미궁으로 빠져 들고 있었다.      


추석이 되어 제사를 지내러 어머님이 오셨다. 어머님은 울산에서 올라오시느라 고단하셨는지 금방 깊은 잠에 빠지셨고, 드렁드렁 코까지 고셨다. 다음날이 되어 “어머니 편히 주무셨어요?” 하고 밤사이 안부를 여쭈었다.      

“응~ 잘 잤다. 고단했는지 오랜만에 단잠을 잤다. 근데 야야 너그들 도마뱀을 풀어놓고  키우나?”     


“네? 도마뱀이요?”      


“그래, 어제 자다가 오줌이 마려워 화장실을 가려는데 벽에 딱 붙어서 뽈뽈뽈 기어가더라.”      


“에이~ 설마요. 도마뱀이 없어지진 두 달이나 지났어요. 어머니 잘못 보신 거 아니에요?”      


“아니다 진짜다. 진짜 도마뱀이 뽈뽈뽈 지나가더라 지난번 아버지 제사 때 율이가 보여준 그거 맞다.”     


난 순간 도마뱀이 살아있다는 소식에 너무 기쁘면서도, 두 달여를 먹이 없이 지냈을 도마뱀이 아직 살아있다니 설마 잘못 보신 거 아닐까 의심이 되었다. 다음날도 어머님은 도마뱀을 보셨다고 하셨다.      


어머님이 내려가시고, 언니가 우리 집에 놀러 왔다. 잠이 안 온다며 거실에서 불을 끄고 늦게 까지 티브이를 보던 언니의 비명은 캄캄한 새벽을 갈기갈기 찢어놓았다.      


“지은아!!!!~~ 도마뱀!!!!~~~~~”     


안방에서 잠을 자던 나는 언니의 비명에 벌떡 일어나 거실로 뛰쳐나왔고, 도마뱀을 목격한 언니는 도마뱀이 사라진 곳을 응시하며 그대로 굳어져 있었다.     


그제야 난 도마뱀이 살아서 모두가 잠든 밤을 돌아다닌다는 사실을 믿게 되었다. 다음날 난 바로 밀웜을 주문했다. 이틀 후 밀웜 두 마리를 작은 그릇에 담아 티브이 옆에 두었다. 다음날, 밀웜이 사라졌다. 그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요 녀석이 먹이만 날름 먹고 온 집안을 돌아다니며 자유로운 방랑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요번엔 작전을 바꾸었다. 다시 도마뱀의 집을 만들었다. 폭신하게 나무와 흙이 섞인 배딩을 깔고, 은신처를 놓고, 밀웜을 넣었다. 그리고 도마뱀의 집 문을 활짝 열어두었다.


불을 끄고 숨을 죽인 채 밀웜이 놓여있는 곳을 맞은편 소파에 앉아서 보고 있을 때였다. 녀석이 나타났다. 녀석은 곧장 자신의 집 안에 있는 밀웜을 투명 창을 통해 바라보았다. 한참을 머리를 치켜세우고 이리저리 바라보다가 이내 몸을 축 늘어뜨린 채 망연자실하게 서 있었다. 또다시 머리를 치켜세우고 몇 분을 투명 창을 통해 바라보다가 이내 어깨를 늘어뜨렸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너무 짠해서 밀웜을 괜히 집에 넣어놨나 하는 후회가 밀려왔다. 그렇게를 반복하던 녀석은 그대로 배를 깔고 엎드려 한동안 일어나지를 않았다. 온몸으로 실망감을 표현하고 있었다. 저녁 만찬을 잔뜩 기대하고 왔을 녀석이 너무 안쓰러웠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렇게 풀어놓은 채 동거를 하다가 태로가 덥석 먹어버리면,,,,, 아무튼 그건 너무 위험한 일이었다. 그렇게 며칠을 버텼다. 나도 안쓰러움을 외면하며 녀석이 못버틸정도로 배가 고파지길 그래서 스스로 제 발로 집으로 걸어 들어가길 바라며 버텼고, 녀석은 다시 갇히고 싶지 않아 굶주린 배를 안고 버텼다.   

  

일주일이 지났을까. 집에 놀러 온 언니가 티브이 옆에 있는 가습기에 물을 넣으려는데 바로 옆에 도마뱀이 제집 뚜껑 위에 올라가 있는 걸 발견했고, 언니의 인기척에 놀란 녀석은 얼떨결에 집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렇게 도마뱀의 가출은 해피엔딩으로 끝이 났고, 지금도 너무너무 잘 살고 있다. 지금 녀석은 자유를 꿈꾸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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