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은 Aug 22. 2020

우리 이대로 살아가는가. 우리 이대로 사라지는가.

초등 3학년이 된 아들이 온라인 클래스 과학수업을 듣다가 멈추고, 내게로 쪼르르 달려왔다.      


“엄마, 멸망이 뭐야?”      

    

“뭔가가 망해서 없어지는 거야.”    

      

“엄마, 그럼 지구가 망했어?"  


한참 우리가 사는 지구에 대해 호기심을 갖고 서서히 다가가 탐구하며, 배워야 할 나이의 아이들에게 지구의 멸망부터 가르쳐야 하다니 난, 땅이 푹 꺼지는 한숨을 내 쉬었다.          

 

“지구가 병이 들었데. 인간들이 너무 많이 파헤치고 오염시켜서. 지구가 아프데. 계속 이렇게 살아가다가는 지구가 멸망할지도 모른다는 얘기야.”   


“엄마, 그럼 지구가 멸망하면 어떻게 되는 건데?”       

   

나도 잘 모르는 얘기다. 지구가 멸망하면 어떻게 되는지. 어렴풋이 생각하면, 인간들의 시체만이 나 뒹구는 지구가 떠오를 뿐. 그 주위를 바퀴벌레 떼가 득실대고 그들은 인간들로부터 숨어 지낸 지난날들을 떠올려 승자를 논하며 밤새도록 인간의 썩은 시체 앞에서 치얼스를 외칠지도 모를 일이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이상 기온 소식을 전하는 뉴스를 보면서, '지구의 시간이 정말 다 된 것일까. 누구도 멈출 순 없는 것일까'를 생각하다 아들의 궁금증은 나를 더 깊은 곳으로 그렇지만 끝이 없는 곳으로 끌고 가고 있었다.          

고속도로 위에 집을 잃고 방황하다 차에 치어 죽어있는 고라니를 보면서, 친구가 하는 작은 카페에서 나오는 하루치 플라스틱 컵의 어마어마한 양을 보면서, 인터넷 장으로부터 배달되어온, 음식을 하려고 뜯은 식재료의 포장지들을 보면서 정말 이래도 될까라는 생각이 하루에도 몇 번씩 문득문득 들었다. 배달 음식의 포장은 또 어떤가, 우리 정말 이래도 되는 걸까.    


남의 집에 들어와 주인 행세하며 하루가 멀다고 온 산을 리모델링하며, 편하게 좀 더 편하게, 돈이 되는 거라면 모조리 깎아버리고, 파고, 메우며 산 죄로, 지구의 몸을 허락도 없이 수만 가지의 쓰레기로 살 찌운 죄로, 지구는 인간들이 예측할 수 없는 바이러스를 만들어 인간들이 죽어나가는 까닭이, 갈수록 세계적으로 불임률이 늘어나는 까닭이, 인간의 개체수를 줄여서라도 인간들 때문에 암덩어리로 비대해진 지구 스스로 항암치료에 들어간 건 아닐지. 지구가 우리의 죗값으로 다음 세대들에게 종신형을 선고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에 온몸에 난 털들이 오소소 일어났다.   


아니라고 사실은 그게 아니라고. 그렇게 생각하기엔 우리 모두가 공범인 것을. 그 큰 죄인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     


인간의 개체수가 늘어나면서 지구의 오염도는 더 심해졌으니, 어쩜 지구에서 태어나 지구에서 사는 것 자체가 원죄였던 거라고. 그건 인간이 내 마음대로 우주별을 선택해 태어날 수 없으니 어찌할 수 없는 일이었다고, 삶이라는 게 원래 그런 거라고, 인간은 타고나길 소고기를 먹게끔  태어났고, 인간이 머리가 좋아 모든 물자를 자체적으로 개발해 내는 것이,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이, 그것이 지구에 얼마나 나쁜 영향을 끼치든 그게 인간 다운 거라고, 그건 인간이 저지른 개발과, 오염과, 훼손 때문에 지구가 아픈 거라고 정당화하면 안 되는 거라고 말하고 싶었다.


처음부터 우리가 지구의 주인이었고, 지구의 주인인 우리가 무엇을 했든 간에 지구는 지구별로 태어난 소명을 다해야 하는 거라고, 스스로를 소모품으로 만들어 인간에게 지구 종말의 시간을 카운트 다운하면 안 되는 거라고, 지구한테 다 뒤집어 씌우고, 지구는 처음부터 그냥 오래가는 배터리 에너자이저처럼 아주 오래오래 가는 소모품에 불과했던 거라고 말하고 싶지만,          


난 살면서 아직은 곳곳에 남아있는 지구의 아름다움을 보았고, 그 자연의 경이로움을 보고 감탄했으며, 그 실체를 마주하고 꿀렁이는 가슴을 느꼈고, 그것들로 하여금 위로받은 인간들 중 하나이기에 그것마저 아니라고 반박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앞으로 인간이 예측할 수 없는 수만 가지의 바이러스가 팽배하고, 인간은 그저 그 바이러스를 죽일 방법과 예방할 방법을 찾기 위해 수많은 아름다운 날들을 쏟아부어야 하고, 수많은 평화로운 날들을 쏟아부어야 하며, 그렇게 불안을 키우며, 안팎으로 안전을 위협당하며 안정되지 않은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일까. 인간의 적응 능력은 어쩌면 이럴 때 쓰기 위해 시시때때로 훈련되어 온 것은 아닐까.     


“엄마, 그럼 지구가 멸망하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데?”   


아들이 분리수거 통을 뒤진다. 페트병에 둘러진 비닐을 뜯어내고, 우유갑을 들고 와 물을 넣어 흔든 다음 가위로 그 생김 데로 잘라 나간다. 평소 샤워시간 같았으면 물을 한참이나 틀어놓고 엉덩춤을 춰도 열두 번을 더 췄을 텐데, 오늘은 욕조에 물을 찰방 하게 받아놓고 그 낮은 물에서 놀거리를 찾는다.


우리는 알지 않는가, 얼마나 많은 개발과, 많은 훼손. 또 얼마나 많은 오염을 지구에게 퍼부어왔는지, 단 한 세대만이 아닌, 차차 누적된 결과가 결국은 인간의 존재를 아주 미약하게 만들었다. 인간의 존재를 바로 세울 수 있는 것, 그것이 인간이 지구를 살려야 하는 일이며, 인간에게 주어진 소명인 것을, 우리 다음 세대가 그리고 다음 세대가 또 그다음 세대가 지구에서의 삶을 조금 더 길고 평온하게 영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 그것을 우리 모두가 알고 있으며, 앎으로 끝나서는 안됀다는 것을. 실천만이 지구의 시간을 늦출 수 있다는 것 또한 알고 있다.


난 텀블러에 내려놓은 뜨거운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재활용이라고는 하지만 카페에서 나오는 많은 양의 쓰레기를 보며 큰맘 먹고 텀블러를 하나 샀었다. 들고 다니며 커피를 받아 마시다 보니 집에서도 습관처럼 예쁜 컵을 놔두고 꼭 텀블러에 커피를 마신다. 텀블러는 찬 음료는 더욱 오래도록 차게, 뜨거운 음료는 오래도록 뜨겁게 해 줘서 다 마실 때까지 첫맛을 느끼게 해 주었다. 당연히 재활용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쓰레기가 안 나오게 하려는 근본적인 움직임이 더 절실하게 필요한 것 같다. 난 아들이 씻어 잘라놓은 우유갑을 베란다 창가로 가져간다. 오늘도 미비하지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나가는 것. 우리가 사라지지 않고 살아가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작은 발걸음을 내디뎌본다.           


우린 오늘도 코로나 19가 남긴 과제, 지구의 온난화가 남긴 과제, 기후의 변화가 가져올 과제에 위태로우며, 불안하고, 모든 관계가 축소된 삶을 살아간다.      


우리 이대로 살아가는가. 우리 이대로 사라지는가.

 

작가의 이전글 미역줄기 국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