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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은 Aug 18. 2020

미역줄기 국

서른 살에 결혼을 하면서도 내가 할 수 있는 반찬이라곤, 시금치나물, 가지나물, 미역국, 콩나물국, 콩나물, 등 지극히 평범하면서도 몇 개 안 되는 정도였다. 정확히 말해서 밥을 먹기 위해 딱 필요한 최소한의 음식만 할 줄 알았고, 다행 지금의 남편이 음식 솜씨로 결혼하자 한건 아니었기에, 음식을 못해 스트레스를 받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서로 눈에 콩깍지가 벗겨지기 전 어느 여유로운 주말. 신랑과 나는 집 앞 시장으로 가서 늦은 점심을 시장 떡볶이와 뜨끈한 어묵으로 때우고, 신랑 두 손 가득 장을 봐서 돌아왔다. 장을 볼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거의 변함없는 재료들이었다. 한 번은 시금치 한 번은 콩나물 한 번은 가지....., 매번 같은 음식을 맛있게 먹어주는 남편이었다. 음식 타박은 일도 하지 않는, 대신 맛있다는 리액션 또한 일절 없는 남편은 무뚝뚝한 경상도 사나이 었다.      


장 봐온 것들을 냉장고에 다 정리하고, 저녁 찬거리를 꺼냈다. 매번 똑같은 음식만 하는 게 미안해서 처음으로 미역줄기를 사봤는데, 굵은소금 한 움큼에 절여 있는 미역줄기를 막상 반찬을 하려니 어떻게 해야 하나 난감했다. 최대한 엄마가 해줬던 기억을 짜내고 보니, 프라이팬에 들기름을 넣고 마늘을 볶다가 미역줄기를 넣고 어느 때는 간도 안 하고 볶다가 살짝 뜸을 들여  깨를 넣고 마무리했던 기억이 났다.    

  

오호, 나도 그 정도쯤은 할 수 있겠거니, 도와줄 거 없냐며 주방을 어슬렁 거리던 신랑을 소파로 몰아내고 나는 팔을 걷어 올렸다. 일단 미역줄기를 바득바득 씻어냈다. 생각대로, 프라이팬에 기름 두르고, 마늘을 볶고, 미역줄기를 넣어 볶았다. 고소한 들기름 냄새가 주방 가득 퍼지고 간을 본다고 한 젓가락 떠서 입에 넣었는데,,,,,,,

우웩!!!!!!!     


엄청나게 짠, 아니 짠맛을 넘어 쓴맛이, 이건 사람이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아니었다. 미역줄기가 이렇게 짜면, 대체 엄마는 어떻게 했던 거지? 내가 잘못 사 온 건가? 당장에 그냥 버렸어야 했지만 음식을 버리면 벌 받는다고 교육을 받고 자란 터라 난 쉽게 버릴 생각을 하지 못했다.      


“미역줄기 잘 돼가? 고소한 냄새가 나는데?”     


시간이 제법 흘렀는데도 밥상이 차려질 기미가 없자 신랑이 주방을 쳐다보며 물었다. “응~ 거의 다 돼가~ 배고프지? 조금만 기다려.” 난 이마에 땀이 삐질 흘렀다. ‘어떡하지?’ 그때 머리를 울리며 한 가지 생각이 났다. 바로 미. 역. 국. 이렇게 짜니 간도 따로 할 필요 없이 국물만 잘 내면 한 끼 맛있게 먹을 수 있겠다 싶었다. 물을 받아서 빨간 건새우를 넣고 볶은 미역줄기를 넣고 팔팔 끓였다. 그리고 밥상을 차려놓고, 신랑이 어서 맛보길 기다리고 있는데, 입에 한 숟가락 떠 넣은 신랑이 박장대소하며, 대체 이런 음식은 어디서 가르쳐 주는 거냐며 낄낄 거리며 웃었고, 내가 맛을 보니, 퉤퉤!! 국물은 밍밍하고 미역줄기는 본연의 맛이 다 빠져서는 전선 씹는 식감만이 느껴질 뿐이었다. 난 그냥 버리고 벌 받자며 신랑한테 먹지 말라고 만류했지만 신랑은 끝내 한 그릇을 다 비웠다.

      

십 년이 지난 지금 난 미역줄기는 요리 전 20분 정도 물에 담가 염분을 빼야 한다는 걸 알았고, 갈비탕, 감자탕, 갈비찜 등 할 줄 아는 음식도 많이 늘고, 제법 맛있게 하는 음식도 생겼으며, 손도 그때보다 세배는 빨라졌다.


그때나 지금이나 리엑션 일도 없는 남편이지만, 주방에서 힘들게 준비했을 나를 위해, 언제나 맛있게 한 그릇 뚝딱 해주는 그 한결같은, 고마운 마음이 나를 키운 것 같아 난 지금도 음식을 못 놓고, 아니 안 놓고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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