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은 Aug 11. 2020

아이는 바람처럼

바람이 가는 길

아이는 바람처럼 그렇게 내게로 왔다.      


엄마의 뱃속에서 10개월을 지낸 아이는 그렇게 사계절을 품고, 딱 사계절만큼의 변화무쌍한 바람이 되어 내게로 왔다.      


봄을 품은 아이는 아직 봄은 아니었다. 조금은 더 쌩하니, 찬바람을 품고 있었지만, 화해의 온기를 품기도 했다. 내가 아이를 보며 웃으면 잠깐 찡그렸던 아이도 방긋 웃는다. 아이는 많은 설렘으로 다가와, 관찰자가 되었다. 선한 바람으로 아이는 아이의 세상을, 온 우주를 핥고 다녔다. 모든 궁금한 것을 짝할짝 핥아가며, 아이의 세상을 간지렀다. 세상 어디에도 없는 선한 바람으로 아이의 세상을 물들였다. 많은 사람들이 아이를 궁금해했고, 또 보고 싶어 했다.      



여름을 품은 아이는 뚱했다. 뭔가 불만이 많아 보이기는 했지만, 입을 꼭 다물었다. 숨이 목까지 차올라도 아이는 말이 없다. 그러다가 아이는 커다란 태풍이 되어 한꺼번에 쏟아부었다. 왜 그러는지 이유도 없이, 아이는 순식간에 모든 것을 파괴하고 지나갔다. 사실은 아이도 아이 스스로 왜 그러는지 알 수 없었다. 어느 순간 순식간에 커져버린 아이는 스스로 그 거대한 몸집을 다스리지 못했고, 아이가 자랄수록 아이는 순간순간 자신도 어쩌지 못하는, 혼자서는 감당이 안 되는 감정에 휩쓸렸다. 그러다 또 어느 순간 아이 자신도 소멸됨을 느끼곤 했다.     



가을을 품은 아이는 제법 싸늘함을 풍겼다. 아이는 맞고 틀림에 가을바람처럼 정확하게 따지고 들었고, 문을 열어 아이를 맞이하면 아이는 어느샌가 그 냉랭한 싸늘함으로 쾅하고 문을 닫아 버렸다. 얇은 외투를 입어야 할지, 두꺼운 외투를 입어야 할지 그날그날 나를 고민하게 했으며, 아이 스스로 자주 세차게 흔들렸다. 아이는 어디까지 떠밀려 가야 하는지 알지 못한 채로 떠밀려 가며 괴로워했고, 떠밀려 가는 목적지를 아이는 알지 못해 두려워했다.      



겨울을 품은 아이는 얼음처럼 차가웠다. 아이는 나에게 항상 두툼한 외투를 준비하게 했고, 아이는 종종 그 차가움으로 내가 아무리 두꺼운 외투를 꺼내 입어도 내 가슴을 뚫어 놓았다. 아이는 아무도 그 누구도 가까이 오지 못하게 연신 칼바람을 불어댔다. 그런 아이를 몇 번이고 품으려 했지만 함께 꽁꽁 얼어붙어 난 단 한 걸음조차 뗄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아이는 휑하니 나만을 남겨놓고 떠났다.  그러다 아이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다시 돌아왔다.   

    


누구도 바람을 예측할 순 없다. 더운 여름 땀을 식혀주는 친절한 바람이, 작은 불씨도 화를 키워 엄청난 손실을 야기하는 뿔난 바람이. 난 꼭 우리 아이들 같아서, 언제 갈지 또 언제 다시 올지 모르는 바람이, 그저 자신의 속도로, 자신을 찾아 언제든 떠날 수 있도록, 어디일지 모르는 길을 갔다가도 아니다 싶으면 언제든 돌아올 수 있도록, 난 바람을, 아이를 내 속도로 품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