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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은 Aug 30. 2020

X, Y, Z세대 간식

딸랑, 딸랑, 딸랑~~~ 어디서 있다 나왔는지 동네 꼬마 녀석들이 순식간에 우르르 모여든다. 모두들 양손에 양은냄비며, 국자며, 빈병들을 들고 있다. 난 진로 소주병 두 개를 가슴에 꼭 끌어안았다. 잘못 다뤄 깨지는 날엔 끝이라고 언니들이 단단히 주의를 줬다. 엿장수 아저씨는 아이들을 더 모을 속셈으로 거드름을 피우며 아이들에게 둘러싸여 종만 딸랑거린다. 아이들의 눈은 어떤 아이가 더 많은 양은 냄비를 모았는지, 빈병은 몇 개나 가져왔는지를 연신 살핀다. 부모님의 눈을 피해 몰래 살림을 가져 나온 아이들은 가슴이 콩닥거린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언니들과 공범이 되어 그 마음을 나눠갖긴 했지만 그래도 5살 난 아이의 마음은 여간 콩닥콩닥 거리는 게 아니었다.


엿장수 아저씨는 그중 가장 돈이 돼 보이는 아이의 물건을 먼저 받아 들었다. 엿장수 아저씨가 아이들과 생강엿을 교환하는 일은 어른들이 쫓아와 자기 자식의 귀라도 잡아끌고 가는 날에는 낭패를 보고 다른 동네로 넘어가야 했기 때문에 돈이 되는 물건을 가장 먼저 받는 것이다. 그리곤 대폐를 들고 그 커다랗고 넓적한 갈색의 생강 엿판을 쓱싹쓱싹 소리와 함께 밀었다 당겼다. 대폐 창으로 얇게 썰려서 힘을 읽고 꼬불꼬불 올라오는 생강엿은 모든 아이들의 시각과 후각, 침샘을 자극한다.


생강엿을 먼저 받아 든 아이는 입꼬리가 하늘로 향했다. 몇 차례 지난 후 나도 생강엿을 하나 받아 들었다. 나는 언니와 나눠먹어야 했는데. 다섯 살짜리 동생 손에 든 생강엿이 바닥으로 떨어질까 봐 언니는 안절부절못했다. 엿장수 아저씨는 인심이 후했다. 나처럼 나눠 먹어야 하아이들에겐 조금 더 큰 생강엿을 만들어 주셨다.


우린 누구 것이 더 크고 누구 것이 더 작은지 비교에 비교를 더하며 생강엿을 받아 들고도 쉽게 입으로 가져가지 못했다. 상대 아이의 생강엿을 눈으로 먼저 먹는 시간이다.  생강엿을 가진 아이들은 하나같이 싱글벙글하다. 생강엿을 받지 못한 아이는 아무 물건도 가져오지 못해 풀이 죽다. 하지만 생강엿을 손에 든 아이는 생강엿도 우쭐함도 제 것으로 만들었다. 생강엿을 갖지 못한 아이들은 생강엿을 손에 든 아이들의 콩고물이라도 떨어질까 그 자리를 쉽게 뜨지도 못했다. 생강엿을 가진 아이들에게 어깨가 딱 붙을 정도로 달라붙어 밑에서부터 먹으라는 둥, 금방 땅에 떨어질 것 같다는 둥 너네 엄마가 금방 올 것 같다는 둥 먹는 훈수를 둔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생강엿이 금방 닳아 없어질까 혀끝만 깔짝대는데 저기 시장 갔다가 돌아오는 민수의 엄마가 보인다. 엄마를 보고 놀란 민수는 재빨리 도망가고 아이들은 순식간에 흩어졌다.    

  

간식거리가 많지 않은 시절이었다. 상대적으로 지금보다 식구도 많았다. 구멍가게에다 빈병을 내다 팔아 라면이나 두부, 콩나물 등 다른 식재료로 바꿔 먹던 시절이었다. 국민학교 시절(지금의 초등학교) 엄마가 빈병을 팔아오라고 시키면 그게 그렇게 창피할 수가 없었다. 빈병을 팔러 가는 길에 친구들이나, 같은 반 남자아이라도 맞닥뜨리면 고개를 숙인 채 긴 머리로 얼굴을 가리고 모른 척 지나갔다. 엄마가 그 빈병을 팔아 과자를 사 먹으라 했다면 조금 덜 창피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지금은 아파트 분리수거 함에 나가보면 빈병이 수북이 쌓여있다. 빈병이 돈이 안돼서 재활용으로  내놓는 건 아닐 것이다. 빈병 보증금 제도가 있다. 빈병에 빨간 테두리를 두른 가격이 딱 표시되어있다. 병 하나에 100원, 130원 등 가격에 차이가 있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로 마트에 가져가면 돈으로 환불받거나 물건으로 교환할 수가 있다.


그러나 지금처럼 물자가 풍족한 시대에 굳이 수고로움을 들여 빈병을 교환하지는 않는 듯 보인다. 또 나처럼 어린 시절의 창피함이 남아 교환하지 않는 사람도 한둘은 있을 것이다.           





X세대의 대표 간식으로 치자면 달고나 역시 빼놓을 수가 없. 우리 집 종교는 천주교였다. 따로 용돈이 없던 시절 그나마 받을 수 있는 돈은 일주일에 한 번 주일에 받는 헌금이 다였다. 아빠가 헌금으로 백 원씩 건네주면 언니들과 나는 성당을 향해 가다가 말고 근처 포장마차로 빠졌다. 백원은 그야말로 그 지루한 미사 시간도 때울 수 있고, 백 원이면 달고나 뽑기도 세 판이나 할 수 있으니 일석이조가 아닐 수 없었다.


포장마차에 가면 두 가지 종류의 달고나가 있었다. 하나는 우리 스스로 직접 달고나를 해 먹는 것. 또 하나는 아줌마가 해주시는 것이었다. 전자는 한판에 30원 후자는 50원이었다. 당연히 언니들과 나는 전자를 택했다. 직접 해 먹는 달고나는 소꿉놀이 같지만 진짜 국자를 들고 하는, 어른들을 모방한 놀이여서 더즐거웠다.


먼저 물에 담겨있는 국자와 젓가락을 골라 국자를 연탄 불위에 올리면 아줌마가 설탕을 크게 두 스푼 넣어주셨다. 곱고 하얀 설탕이 스르르 녹아들어 투명의 액체로 변할 즈음 아줌마는 젓가락으로 소다를 찍어 톡 하고 넣어주셨는데 그럼 투명 액체는 캐러멜 색으로 변하며 금세 부풀어 올랐다. 아줌마는 아이들이 만든 달고나에 아이들이 선택한 모양을 찍어 다시 건네주셨다.


언니들이 항상 나 보고 먼저 하라고 시켰다. 먼저 끝난 아이는 제 것을 다 하고도 아직 남아있는 다른 아이가 부럽기 때문이다. 내가 먼저 달고나를 시작했다. 그러면 언니들은 하트가 쉽다는 둥, 선에 침을 바르라는 둥, 이쪽이 약하다는 둥 훈수가 시작됐다. 집에서 핀을 들고 오는 아이도 있었다. 바늘과 이쑤시개도 가져왔다. 이쑤시개에 침을 발라 뽑기 선에 찔러 넣으면 바로 빠개지지 않고 좀 더 모양대로 떼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지은아, 여기~ 여긴 잘해야 해. 언니가 해줄게.”


 셋째 언니가 내가 떼어내던 하트 달고나를 가져간다. 조심조심하며 떼어낸 작은 조각을 언닌 언니 넣었다.


“언니!! 내 것 먹지 마!”


난 언니의 입에 들어간 코딱지 만한 달고나 조각조차 아까워서 소리친다. 순간 하트 모양이 빠직하고 쪼개졌다. 언니는 미안해서 어쩔 줄 몰랐고, 결국 세 판 중 한판은 나에게 빼앗겨야 했다. 시간은 너무도 빨리 흘렀다. 제발 한판더가 나오길 기대하며 조마조마 숨을 깔작거리던 심장은 모든 판이 끝나고야 안정을 찾았다.


달고나 세 판을 하고 나면 십원이 남았다. 언니들과 난 십원씩을 손에 쥐고 성당 미사가 끝나기 전에 성당으로 달렸다. 엄마 아빠 몰래 미사가 끝나기 전에 성당에 앉아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헌금 시간이 다가오고 우린 십원을 쥔, 땀으로 흠뻑 젖은 손을 들킬세라 주먹을 꼭 쥐고 헌금통 깊숙이 넣었다. 일주일 중 딱 하루. 뽑기를 할 수 있는 주일이 되길 손꼽아 기다렸다. 그 시절 달고나는 단순한 간식을 벗어난 극강의 달콤한 추억을 만들어주었다.  

   


생강엿과, 달고나는 단순한 간식을 넘어선 작당이었다. 생강엿을 먹기 위해 빈병을 모으고 찌그러진 냄비를 모으고, 좀 더 싸게 먹기 위해 고사리 같은 손으로 국자를 잡던. 막대기에 달린 매콤 달콤한 생강엿과 달고나의 극강의 달콤함은 사실 그 모의귀여운 작당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최고의 단맛이 아니었을까?  

   

요즘 세대 아이들은 마트에 가서 한꺼번에 과자 여러 개를 사 온다. 우리 집만 해도 장을 볼 때 일주일 정도 먹을 과자를 한꺼번에 산다. 아이들은 엄마를 따라 혹은 친구들끼리 카페에도 자주 간다. 버블티를 마시고 마카롱을 먹는다. 지금의 아이들에게는 그 자체가 추억이 될 수도 있지만 내게는 풍족함이 가져온 감성의 결핍처럼 느껴졌다.      


음식은 추억이라고 한다. 음식의 맛이 있고 없고는 어떤 음식을 누구와 어떤 분위기에서 먹었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그 시절 허물어져 가는 포장마차에서 삼삼오오 머리를 맞대던, 리어카를 둘러싼 아이들의 귀여운 작당이, 지금 그 시절의 음식을 먹는다 해도 그 맛을 살릴 수 없는 까닭이 아닐는지.    

  

지금 아이들에게 빈병을 주고 그걸 팔아서 간식을 사 먹으라 하면 아이들은 어떤 표정을 지을까?   

  

, 이 글을 쓰는 지금, 내 앞의 떡볶이를 먹으며 X, Y, Z 세대를 잇는 간식 중 최고봉은 역시 떡볶이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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