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19로 집 앞 복지관 운동장이 다시 닫혔다. 아들이 축구 훈련을 하는 곳이다. 가까운 복지관이 문을 닫자 축구클럽에서는 시흥의 사설 운동장을 빌렸다. 하지만 그것도 정부의 정책으로 일주일간 쉬기로 결정했다.
학교도, 학원도, 축구도 모든 시간이 멈추었다. 아니 시간은 얄밉게 잘도 흐르고 산 중턱에 걸쳐 놓았던 가을도 데려다 저 하늘 높이 매달아 놨지만, 집안에선 어제가 오늘인 듯 오늘이 어제인 듯 한 삶이 이어지고 있었다.
초 3인 아들의 꿈은 축구선수다. 훈련을 쉬면서 매일 줄넘기 500개와 리프팅 300개를 하기로 계획을 세웠다. 온라인 클래스로 오전을 보내고 잠시 쉬다가 집 앞으로 운동을 하러 나가면 리프팅과 줄넘기, 나와 함께 배드민턴을 치고 족히 한 시간이 지나 땀범벅이 된 채로 집에 들어왔다.
올 1월쯤 선수반에 입단하고 리프팅을 꾸준히 해서 지난주까지만 해도 124개가 최고 기록이었다. 하지만 그 자리에서 한동안 머물렀고, 일주일에 오일 훈련을 할 때면 클럽에서 하는 리프팅 외엔 따로 연습을 하지 않았다. 훈련이 멈춘 동안 요번 주의 기록을 보면 124개에서 시작한 기록은 매일같이 경신되어 어제까지 184개로 최고 기록을 갈아치웠다. 운동을 나가기 전엔 온몸을 비틀며 나도 쉬고 싶다를 외치면서도 기록을 경신하는 날엔 그 행복감에 입꼬리가 가볍게 하늘로 향했다.
주 초에 습하고 덥던 날씨가 주말이 될수록 선선한 바람을 몰고 와서 운동이 한층 편해졌다. 하지만 아들은 또다시 나도 사람이다 나 좀 쉬 자를 외쳐댔다. 그런 아들을 살살 꼬셔서 데리고 나갔다. 축구 선수를 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운동하는 아이들이 건강해 보였고, 한 시간이라도 햇볕을 보면 건강에도 좋고, 밤에 잠도 잘 오기 때문에 하루 중 딱 한 시간 만이라도 운동에 시간을 보태고 싶었다.
나가자마자 리프팅을 시작했다. 아들은 30개에서 멈추고 32개에서 멈추고 14개에서 멈추더니 신발이 커서 안됀다느니, 숫자는 엄마 마음속으로 세라느니 슬슬 짜증을 더했다. 다시 하나, 둘, 124, 185,,,, 개를 넘어서 311개에서 멈췄다. 아들의 목소리가 떨려왔다.
“엄마 나 311개 했어. 역시 아빠 말이 맞았어 백개가 지나면 잘 될 거라는 말 말이야.”
옆에서 속으로 개수를 세던 나도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하루에 열댓 개씩 그 수를 더해 갱신하던 수치가 아니었다. 아들이 물을 마신다며 물병을 든 손은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엄마 나 진정이 안돼. 흐흐흐, 어떻게. 나 너무 좋아서 몸이 막 떨려.”
“율아 엄마도 그 기분 알 것 같아 전에 브런치 글이 다음 메인에 소개됐을 때 엄마 글을 본 사람이 오만이 넘어서 엄마도 손이 덜덜 떨리고 가슴도 막 콩딱 거리고 일도 손에 안 잡혔거든, 율이도 그런 기분이지?”
아들은 도저히 진정이 안되니까 그냥 배드민턴을 치자 했다. 하지만, 아들의 떨리는 손은 멈추지 않았다. 평소 나보다 더 잘 치는 배드민턴을 오늘은 손에 힘이 빠진 사람처럼 라켓이 휘청됐다. 줄넘기도 마찬가지였다. 우린 자리를 정리하고 집으로 들어왔다.
아들의 흥분은 한동안 계속됐다. 목욕을 하면서 아들이 말했다.
“엄마 친구 D가 전에 리프팅 300개 넘게 한다고 했는데, 이제 나도 그 친구를 뛰어넘었네?”
“율아, 너의 목표가 축구 선수지? 목표가 친구와의 경쟁으로 바뀌어서는 안 돼. 네가 가고 있는 목표를 잃어버리지는 마. 경쟁은 너와 네가 하는 거야. 다른 친구와 경쟁을 하다 보면 그 친구를 넘어서는 순간 넌 축구에 재미가 없어지고 흥미를 잃을지도 몰라. 목표가 그 친구가 되어버렸다는 얘기지. 율아 어제의 너와 경쟁하면 돼. 내일은 또 오늘의 너와 경쟁을 하고. 엄마 말 무슨 말인지 알겠어?”
“응, 엄마. 엄마가 나 나가기 싫어하는 데 살살 꼬셔서 데리고 나가줘서 너무 고마워.”
아들이 최고 기록을 경신한 것보다 아들의 고마워하는 마음이 너무 고마워 순간 내가 너의 엄마라서 정말 다행이다 하고 생각했다.
아이가 어릴 땐 몸이 힘들고 아이가 자라면 머리가 힘들다고 했다. 아이가 어느 정도 자라자 주변에 발 빠른 엄마들은 아이들의 인생에 지름길을 정해놓고 그 길로 인도했다. 난 내가 너무 못난 엄마라고 생각됐다. 다른 엄마들이 다 아는 지름길도 모르고 심지어 너무 모르니 그들의 말이 내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나만 뒤쳐진 엄마였고, 내 아이를 위해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엄마라는 생각이 들자 밤에 잠이 안 올 정도로 불안했다. 울기도 많이 울었다. 다들 어쩜 그리도 정보가 많은지 그 정보는 어디서 오는지 알지 못해서, 알고 싶어서 난 휘청됐다. 한때 난 내 성향을 무시하고 그들의 정보를 얻기 위해 그들과 어울리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하지만 내발에 맞지 않은 구두를 신은 것처럼 밤마다 마음에 물집이 잡혀서 신음했다. 절대다수에 의해 내 생각이 뿌리째 흔들렸다.
축구도 마찬가지였다. 친구들과 패스를 하는 축구를 하고 싶다고 일 년을 조르는 아들 말만 듣고 멋모르고 그곳에 몸을 담았다. 하지만 그곳에서도 난 아무것도 모르는 엄마였다. 골을 넣으면 축구화를 사주겠다는 엄마가 아닌 친구가 골을 넣었을 때 같이 축하해 주면 축구화를 사주겠다고 말하는 어이없는 엄마였다. 그들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공감할 수 없어 괴로워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항상 앞만 보는 인형처럼 난 그들에게 내 시선을 고정시킨 채 나를 보지 못했다. 내가 아이를 낳으며 고민했던 삶의 지표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절대다수의 길이 내 길인 듯 한 삶을 이어갔다. 문득 뒤를 돌아봤을 땐 등 뒤에서 내 옷을 잡고 헐떡이며 힘들게 따라오는 아들이 보였다. 난 당장 그 길 어딘가에 맞지 않는 신발을 덩그러니 벗어놓고 황급히 그 길을 빠져나왔다.
난 아들의 길에 등대가 되는 삶을 살겠다고 다짐했었다. 언젠가는 아들이 혼자 가야 하는 길이 두렵지 않게 빛을 비춰주고 싶었다. 아들의 비장함에 움직이는 엄마이고 싶었다. 절대 먼저 끓고 싶진 않았다. 또다시 중요한 시기가 다가오면 난 또 흔들릴 것이다. 그때마다 아들이 정답이라는 것을 마음에 새기는 엄마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