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3 아들과의 싸움은 대부분 말투에서 시작된다. 아들의 짜증 섞인 말투가 오래 지속된다거나 너무 무시하는 말투일 때 그럴 땐 부모로서 위계나 친구 같은 관계 사이에서 갈등하다 저울이 위계로 쏠리게 되면 나도 참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자식은 친구가 될 수 없다고 못 박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난 아직도 서로의 위치에서 예의를 지켜준다면 자식도 친구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 친구도 그렇지 않은가. 아무리 친한 불알친구여도 서로 넘지 말아야 할 선이 있고 지켜야 할 예의가 있는 거다.
코로나로 계속 붙어 있을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우린 서로를 아주 많이 침범하고 있다. 아들은 아들의 방이 따로 있지만 어려서 인지 아직은 내가 실 생활하는 거실을 주 활동공간으로 산다. 나 역시 예전부터 방은 잠잘 때 외엔 잘 들어가지 않기 때문에 모든 영역이 한눈에 들어오는 거실이 주 활동공간이다. 코로나 이후로 둘이 함께 거실에서 생활하는 시간은 일 평균 11시간이다. 이쯤 되다 보니 서로 컨디션이 조금 안 좋은 날은 사사건건 부딪친다.
가장 많이 부딪치는 건 식사메뉴다. 아침에 눈떠서부터 “엄마 아침밥 뭐야? 점심은? 저녁은?”이 인사가 됐다. 그나마 아들이 좋아하는 떡볶이, 라면, 국수, 스파게티, 떡국 등의 메뉴가 하루 한 끼에라도 있을 때면 역시 엄마 최고를 외치며 상쾌하게 기상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을 때면 눈을 뜨는 순간부터가 전쟁이 예고되는 것이다.
온라인 클래스를 하면서도 주방을 힐끔거린다. 메뉴를 놓고 이건 저렇고 저건 이렇고 말이 많아진다.
아들의 말투는 거의 짜증을 데리고 다녔다. 정말 좋아하는 음식이나 게임을 해야 할 때를 빼곤 자주 짜증 섞인 말투를 냈는데 여간 거슬리는 게 아니었다. 어느 날은 좋게 좋게 받아주다가도 내 상태가 좋지 않을 땐 짜증으로 응수하는 경우도 많았다.
지금은 특수한 경우니까 하루 중 많은 시간을 집에만 있으면 그래 너도 많이 힘들겠다 이해를 하려 해도 순간 잘 참았다 싶으면 또다시 짜증을 내는 아이를 보고 내 안에서도 화를 준비했었나 보다.
요 며칠 추석으로 인한 행사로 이래저래 피곤했을 아들 눈에 커다랗게 다래끼가 났다. 며칠을 눈을 엄청 깜박여서 왜 그러나 예의주시 중이었는데 눈 아래쪽이 빨갛게 부어올랐다. 아들과 안과를 가기로 하고 준비를 하는데 아들 마음이 불안했나 보다.
“엄마, 안과 가면 수술해? 아님 주사 놔?” 하고 묻는다.
하지만 난 자랄 때 다래끼가 한 번도 안 났던 터라 “글세 엄마도 가봐야 알 것 같아.” 하고 말했다.
“율아 뭐해? 온라인 수업한 거 책 정리하고 가자. 미술 수업 준비도 해놓고 가야 할 것 같아. 우리가 얼마나 걸릴지 모르잖아.”
“아~ 뭐~ 옷 입어!! 알았다고 알았어. 그럼 자기가 해주던가.”
슬슬 준비 중인 화가 장전에 들어갔다.
별로 싸우고 싶지는 않다. 낮엔 거의 둘만 있는데 한집에서 대면 대면한 상태로 마주하는 것도 싫고 워낙 유년 시절을 부모님의 강압에 의해 살다 보니 그런 모습을 보이는 것 자체도 싫기 때문이다. 하지만 반드시 싸워야 할 때는 싸워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뭐 그렇다고 내 인생 토털 별로 그럴 일도 없었지만 말이다.
최대한 마음을 가다듬고 ‘아들을 가르치기 위한 거야. 화를 내기 위함이 아니야'라고 되뇌었다.
“후~, 율이 이리 나와봐~”
“아 왜~~~~ 옷 입으라며!!”
“나오라고!!!!”
단전에서 끌어올린 샤우팅이다.
“왜 짜증이 났는지 말해봐.”
“....”
“말 안 해? 짜증이 났으면 이유가 있을 것 아냐. 얘길 해야 알지~ 말해봐.”
가르치는 거라고 화내면 안 되는 거라고 다짐했지만 나의 목소리는 경계를 자주 이탈해서 한옥타브를 오르락내리락하고 있었다.
“엄마가 짜증은 말이 아니랬잖아. 너 정리하라고 말해 준 건데 정리는 하나도 안 하고 그래서 또 알려주면 잔소리한다고 하고 도대체 엄마가 어떻게 해야 하는 건데!”
“왜 말이 없어! 네가 원하는 게 있으면 말해 그래야 엄마가 알지 계속 짜증 내는 투면 더 이상 네 말을 듣고 싶지가 않단 말이야.”
“알았어.”
“그만 짜증 내. 안 그럼 엄마도 하루 종일 짜증 낼 테니까. 알았어?”
“응.”
돌아서 가는 아이가 알지 못할 노래를 흥얼댄다. 굴복하지 않겠다는 의미다. 어떻게든 지지 않으려는 의지의 표출이다. 율 자가 입 밖으로 튀어나오려는 걸 간신히 참아냈다. 넌 어떻게 혼이 나고 바로 노래를 부르냐고 따질 순 없었다. 내가 할 말은 다했으니까. 노래를 부르는 건 아이의 마음이니까. 혼나고 바로 노래를 부르는 게 잘못은 아니니까.
일단락 지었지만 가슴이 아직 평온하지 않았다. 서둘러 감정을 희석하러 나가야 했다. 집안의 온도와 밖의 온도는 다르니까.
급하게 옷을 입고 먼저 나가 현관문을 닫았다. 아이가 노래를 흥얼거리던 모습이 자꾸 나를 찌르고 있다. 엘리베이터를 눌렀다. 엘리베이터는 20층에서 천천히 내려오고 있었다. 아들이 나왔다. 돌아보지 않았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서도 난 속도를 늦추지 않고 빠르게 걸었다. 아이가 잠시 걱정됐지만 돌아보지 않았다. 필요하다면 아이가 뛸 것이다. 안과가 대충 어디쯤인지는 알지만 비슷한 건물이 여러 개여서 가서 찾아야 했다. 하지만 아이가 장소를 모른다는 이유로 내 탬포를 아이와 함께하고 싶지는 않았다.
아이는 초등 1학년이 돼서부터 나와 손잡고 걷는 걸 꺼려했다. 다른 아이들보다 조금 더 조숙한 아이가 자기보다 한참 터울의 형들과 축구를 하다 보니 형들의 것을 많이 배웠구나 했다. 억지로 손을 잡거나 붙어가려고 하진 않았지만 내심 속상했었다. 너무 일찍 사춘기가 온 것 같아 아쉬운 맘도 있고 뭐 남자아이들이 보통 그런다고 하니 발달과정을 놓고 힘겨루기를 하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내 상한 기분이 ‘그래 내가 떨어져서 걸어야 좋아하니까 네가 편한 데로 해줄게’로 억지를 부리기 시작했다. 신호가 걸렸을 때만 빼고 빠르게 걸었다. 그래도 내 의식의 얼마 정도는 뒤에서 쫒아오는 아이를 챙겼다.
건물을 찾는데 아이가 한층 상냥해진 목소리로 “엄마 저기 같아” 하고 말했다. 난 짧게 “응” 하고 올라갔다.
아래 눈두덩이를 뒤집어서 굵은, 바늘귀가 달린 주삿바늘로 뚫어서 고름을 짜냈다. 엄청 아팠을 텐데 엄청 긴장했을 텐데도 아들은 의사 선생님도 놀랄 정도로 묵묵히 참아냈다. 약을 지어서 돌아오는데
“일 초면 된다더니 왜 계속 아픈 거야?” 한다.
난 여전히 눈을 보지 않고 말했다.
“정말 잘 참더라. 한동안 아프고 불편할 거야.”
어느샌가 모르게 아들과 손을 잡고 있다. 순간 ‘엥? 웬일이래?’ 싶었다. 누가 먼저 잡았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내가 먼저 잡았다 할지라도 아들이 손을 빼내지 않았다는 게 정말 신기했다. 내가 들고 있던 부피가 큰 약봉지까지 가져간다. 괜찮다고 했는데도 "엄만 가방도 있잖아" 한다.
내 기분이 좋아졌다. 아들의 눈을 보고 말했다.
“정말 잘했어. 눈이 불편하니 오늘은 미술 쉬었으면 하는데 율인 어때?”
아이가 한쪽 눈이 반쯤 감긴 상태로 고개를 끄덕인다.
아들의 노래를 들으며 꾹 참았던 내가 정말 잘했구나 싶었다.
사람은 꽃이, 나무가 그러하듯 구름이 그렇듯 어제 죽어지고 오늘 태어나기를 매일같이 한다. 하루하루 다시 태어난다. 단 하루도 같은 날이 없다. 어제보다 키가 조금 더 크고, 손톱이 조금 더 자란다. 보송한 솜털에서 뻣뻣한 털이 난다. 몸무게가 빠지거나 더해지고, 어제보다 주름이 깊어지고 흰머리가 난다. 조금 더 아프기도 하고 조금 덜 아프기도 하다. 어제는 완벽한 사랑을 했다가 오늘은 완벽하지 않다고 떠나기도 한다. 조금 더 사랑하기도 하고, 덜 사랑하기도 한다. 죽을 것처럼 아팠다가 언제 그랬냐고 웃는다. 어제는 기다가 오늘은 엉덩방아 쿵쿵 찧으며 다시 일어서는 아기처럼 말이다.
그것만 가슴에 새긴다면 어제의 일로 마음이 불편하지 않을 텐데 생각했다. 내가 화가 났던 부분이 계속되어온 아들의 짜증이었다. 어제는 어제의 일로 짜증이 난 것이니 오늘은 오늘의 일로 짜증이 났을 아이의 마음을 스스로 들여다볼 수 있도록 도와주면 되는 것을 과거의 케케묵은 감정과 짜증까지 겹겹이 다 데리고 와 내 감정을 태우는 장작으로 사용한 것이다.
아들의 작은 손이 어느새 좀 더 커져있었다. 전보다 도톰해진 아이의 손이 따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