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상처 없이 사마귀 제거하는 방법 1

제 1화

by 지은

작년 뜨거운 여름. 계곡으로 바다로 워터파크로 물놀이에 신이 난 아들은 본격적으로 수영을 배우고 싶어 했다. 기껏해야 몇 초 물 안에서 잠수하는 게 다였던 아들의 눈에 멋지게 팔을 휘저으며 물살을 가르는 사람들이 들어왔고, 바위 위에서 마치 독수리가 먹잇감을 향해 빠른 속도로 하강하듯 다이빙하는 사람들을 넋을 잃고 바라볼 정도로 아들은 부러운 마음을 한가득 쌓아갔다. 식어가는 날씨조차 수영에 불붙은 마음을 달랠 길이 없자 아들은 수영 학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누구보다 즐겁게 수영을 배우던 12월의 어느 날 약지 발가락에서 이. 삼 센티 정도 떨어진 발바닥에 지름 0.3센티 정도의 투명하고 동그란 젤리뽀처럼 생긴 물집이 잡혔다. 발바닥 안쪽으로 잡힌 물집은 손으로 만져지지는 않았지만 뭔가 생겼다는 게 확실하게 보였다. 별다른 방법이 없어 하루 이틀 지켜보기만 했는데, 아들은 그 물집으로 크게 불편함은 없어 보였으나 발바닥에 뭔가 있다는 게 내심 걸리는지 자리에 앉기만 하면 연신 고개를 푹 숙이고 발바닥을 들여다봤다.


얼마 후 물집은 조금 더 커지더니 얼굴색을 바꾸고 본색을 드러냈다. 점점 단단해지며 노르스름해진 모습이 어렸을 때 내 엄지손톱 옆에 바짝 붙어서 난 티눈과 흡사했다. 아들이 하루 두 시간씩 축구를 하다 보니 발가락뼈와 발 바닥 뼈가 만나 도드라지는 부위에 마찰로 인한 티눈이 생겼을 거라 추측했다.


“티눈이 생겼네? 아들 안 아파? 축구할 땐 어때?”

“막 아프거나 그러진 않은데 자꾸 신경 쓰여서 쳐다보게 돼.”


난 어렸을 때 시도 때도 없이 손톱으로 티눈을 긁어댔다. 피가 나고 아물고를 계속하며, 피로 인해 불었다가 다시 딱쟁이처럼 바짝 말라 쪼그라들기를 반복하던 어느 날 큰 코딱지를 파낸 것처럼 시원하게 티눈이 똑 떨어져 나갔다. 별것도 아닌 것이 가져다준 쾌감은 지금도 잊히지 않을 만큼 커다랬다. 그래서 아들의 티눈도 크게 불편하지 않다면 언젠가는 없어지겠지 하고 가볍게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아들은 통증을 얘기했다.


“엄마, 그냥 있을 땐 안 아픈데 운동할 땐 베기는 느낌이나. 그리고 계속하다 보면 아파.”

난 약국에 가서 티눈 약을 사서 아들의 발바닥에 바르고 또 붙였다. 하지만 별 차도는 없었다. 아들은 갈수록 더 아파했다.


우리 동네엔 피부과가 많았지만 인구 밀도가 높아서 그런지 가는 곳마다 기본 한 시간 반을 기다려야 했고, 어떨 땐 두 시간 반을 기다린 적도 있었다. 당연히 예약은 안되었다. 난 수고로움을 줄이고자 애들한테 티눈이 생기면 어떻게 하는지, 어느 병원엘 가는지를 주변 엄마들에게 물어보았다.


“언니, 우리 아들 발바닥에 티눈이 생겼어. 혹시 괜찮은 피부과 아는 데 있어?”


“지은아, 티눈 맞아? 율이 수영 다닌다고 했지? 그거 티눈 아닐 수도 있어. 수영장 다니는 애들 사마귀 잘 옮아.”


“사마귀? 나 어릴 적 났던 티눈 하고 같던데......”

“육안으론 구별이 잘 안될 수 있어, 사마귀가 맞다면 병원에서 아마 냉동 치료하자고 할 거야. 근데 그거 많이 아파서 애들이 힘들어한다던데. 아참. 좀 옛날 방식으로 하는 병원이 있어. 엄마들도 많이들 가는데 거기가 봐라. 근데 의사가 참 별로야. 너, 마음 단단히 먹고 가야 할 거야. 워낙 막말하기로 정평이 나있어.”


“언니. 근데 엄마들은 왜 막말하는 그런데를 가? 의사가 그만큼 잘 본데?”

“뭐 S피부과는 사람이 너무 많고, 그보다 사람이 조금 적고 그 의사, 말만 아니면 나머지는 괜찮나 봐. 욕하면서도 많이들 가더라고.”


난 상처 받으면서까지 가야 하나 싶었지만 S병원에서 두 시간 반을 기다린 경험이 있고, 코로나가 터진 지 얼마 안 됐 터라 최대한 사람들과 접촉하는 시간을 줄이려는 심산으로 무리수를 두면서 까지 아들과 함께 그 병원을 찾았다. 역시나 생각했던 대로 사람들이 수북이 많았다. 한 시간 반을 기다려야 했다. 진료 명부에 이름을 적고 바로 아래층의 책방을 들려 한 시간 책을 보다 다시 병원으로 향했다. 문을 들어서자 지친 기색이 역력한 사람들의 무심한 시선이 우리 몸 어딘가에 부딪쳤다 금방 흩어졌다. 사람들을 뚫고 잠시 있을만한 공간을 찾는데 동네에서 몇 번 보던 엄마가 인사를 건넨다.


“아. 안녕하세요? 여기 어쩐 일 로오 셨어요? ”


“율이 발바닥에 티눈이 났어요.”


“아 그랬구나. 저희 미주도 수영장 다니면서 사마귀가 생겼는데 율이 혹시 사마귀 아니에요?”


“모르겠어요. 그것도 확인차 왔어요. 미주는 지금 치료 중인 거예요?”


“네. 올 때마다 상처 받고 가요. 칼이나 가위로 긁어내고 오라 해서 우는 아이 달래 가며 겨우 긁어서 오면, 이것도 하나 제대로 못하냐면서 면박을 줘요. 정말 오기 싫은 곳이에요. 한두 번에 끝나는 것도 아니고요.”


그때 간호사가 율이를 불렀다. 서둘러 인사를 하고 진료실로 들어갔다. 진료실은 참 특이했다. 보통의 진료실은 문을 마주 보게끔 책상과 의자를 배치하는데 엉뚱하게도 들어서면서 의사의 펑퍼짐한 엉덩이를 먼저 봐야 했다. 흰머리가 수북한 단발머리의 의사는 대략 60대 후반에서 70 대 초반 정도로 보였는데 다짜고짜 손짓을 했다.


“얘, 너는 여기 앉고, 엄만 옆에 서있어.”


말의 반토막이 어디론가 사라지고 남은 반토막도 구정물에서 막 건저 낸 느낌이었다.

“양말 벗어. 다리는 스스로 들어 올려서 내가 발바닥을 볼 수 있게. 얘! 더 들어 더.”


난 당황한 채 우두커니 서서 내동댕이 쳐지는 글자들을 내 온몸으로 따갑게 맞고 있었다. 아들의 발바닥을 잠시 들여다보던 의사는 또다시 반토막 난 말들을 뱉어냈다.


“얘, 넌 저리 가고, 엄마 앉아.” “엄마. 여기 봐.”


사는 손바닥만 한 메모지에 깊은 브이자를 그리곤 의료용 가위를 엑스자로 최대한 벌려 잡고 메모지 위를 직직 그어대고 있었다.


“티눈인가요?”


나는 마지막 남은 치약처럼 안 나오려는 목소리를 겨우겨우 짜내며 의사를 바라봤다.


“여기 봐. 여기 보라고. 내가 여기 보라고 했으면 여기 보라고. 이건 사마귀야. 무식하긴. 아유 아줌마들 무식해. 아줌마들 무식해서 힘들어. 사마귀 뿌리가 이렇게 자랄 때까지 두면 어떻게!”


의사는 의료용 가위로 책상 위 메모지를 가리키며 콕콕 찍어대다가 내 손을 덥석 잡더니 가위 날로 손바닥 위를 벅벅 긁어대며 말했다.


"엄마 잘 들어. 약 하나 처방할 테니 아침에 바르고, 저녁에 눈썹 깎는 칼이나 가위로 내가 지금 하는 것처럼 긁어내 최대한 깊게. 또 그위에 약 바르고를 매일 하다가 다음 주에 데리고 와. 그럼 그때 내가 볼 테니까.”

처방전을 받아서 나오는데 난 내 몸이, 마음이 아무것도 느낄 수 없는 사람인 것 같았다. 당장 내 귀나 내 혀나 입술에 피어싱을 해도, 묵에 젓가락을 꽂듯 아무 느낌 없이 동그란 구멍이 생길 것만 같았다.

집에 온 후로도 정신이 아득했다. 아들의 발에 약을 바르면서도 내가 뭘 하고 있는지 의식조차 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의사가 말한 데로 기계적으로 행동하고 있었다. 다행히 새로 사서 한 번도 안 쓴 눈썹 칼이 있어서 오후에 약을 발라둔 사마귀를 저녁에 깎아냈다. 아들은 약간 겁을 먹은 듯했지만, 무의식적으로 사마귀에 애쓰고 싶지 않은 내 마음 덕분에 가볍게 넘길 수 있었다. 다음날 아침 아들의 발에 약을 바르려는데 아들이 깜짝 놀라며 소리쳤다.


“엄마, 사마귀가 여기저기 엄청 많아졌어.”

아들의 발을 들어 확인하자 정말로 투명색의 아기 사마귀들이 엄마 사마귀를 중심으로 열댓 개가 퍼져있었다. 티눈과 사마귀의 다른 점은 바로 그것이었다. 바이러스를 옮기는 것은 사마귀. 마찰로 인해 굳은살이 단단하게 베기는 것이 티눈. 그것을 본 순간 집 나갔던 내 의식이 돌아왔다.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지?`


2편에선 간단한 사마귀 치료법을 알려드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