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3학년 5월. 나는 드디어 나의 진로를 찾았다
K작가이야기16
고등학교 3학년 5월.
나는 드디어 나의 진로를 찾았다. 미술을 그만두고 약 7개월 만이다.
오랜만에 정말 하고 싶은게 생긴 나는 들 뜬 기분을 주체 할 수가 없었다.
날 흥분시킨 것.
그것은 바로 영화였다.
우연히 본 김기덕 감독의 ‘사마리아’를 보고 영화라는 매체에 빠져들었고
그 이후로는 내가 그림에 미쳤던 것처럼 영화에 미쳐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앞으로 영화를 하리라 마음먹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 다음부터였다. 내가 사는 곳은 작은 소도시. 뭐 거의 시골이여서
영화입시라는걸 쉽게 접할 수도 없을뿐더러, 엄마아빠에게 이 꿈을 말할 용기도 없었다.
미술을 한다고 했을 때도 반대가 엄청났는데, 그보다 더 생소한 영화를 한다고 하면 어떤 반응일지 안보고도 뻔했다.
그래서 감히 말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꿈을 포기 할 수도 없었다.
어떻게든 무언가를 해야만 했다. 열심히 준비해서 나중에 부모님에게 고백할 때 부끄럽지 않은 내가 되도록 해야만 했다.
영화를 하기로 마음먹은 날부터 나는 시립도서관에 가서 영화관련서적을 읽기 시작했다.
영화에 있어 가장 기본적인 용어도 몰랐기 때문에, 집에 오면 인터넷으로 영화용어를 찾아서 20장 가까이 한글파일로 정리, 출력하여 매일 같이 외웠다.
누벨바그, 데이비드 그리피스, 필름누아르 등등 대부분의 영화용어들이 그 때 습득한 것이다.
학교에 가서도 영화관련 책만 읽고, 집에 와서는 책에 나와있는대로 영화를 보며 스스로 분석했다. 고전영화도 닥치는대로 보았다.
그렇게 8월까지 나의 비밀 독학은 계속되었다.
그리고 8월 중순 즈음. 정확히 기억난다. 수능을 100일 앞둔 날이였다.
“너 대체 대학은 어디갈거니?”
온 가족이 둘러 앉은 저녁 식사시간.
엄마가 한탄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가긴 갈거야?”
“갈거야..”
“어디?”
“...”
“무슨 과 갈거야.”
“영화과.”
말해버렸다. 이제는 말 안하면 안될 것 같았다. 엄마한테 얻어맞을 각오로 말했던거다 난.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맞을 준비를 하고 있는데...
생각 외로, 엄마가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나중에 안건데 수능이 100일 밖에 안남아서
거의 반 포기상태였다고 한다. 물론 처음에는 그리 달갑지 않은 반응이였지만, 열심히 노력하는 모습에 돌아선게 아닌가 싶다.
물론, 성적이 좋지도 않고 UCC라던가 단편영화를 찍어본 경험도 없어서 다른아이들과 경쟁하는 것이 불안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내 스스로 잘 해낼 수 있을 거란 믿음이 있었다.
결국 나는 몇군데의 영화과에 수시를 넣었고. 그 중 두곳에 최종합격했다.
나는 더 마음에 드는 학교에 진학하기로 하였고, 입학하기 전까지 더욱 열심히 공부하였다.
나는 결국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해내고야 말았고, 그 일을 지금까지도 하며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역시, 부모님에게는 죄송하지만 내가 하고싶은걸 하면서 사는게 최고인 것 같다.
수시에 붙지 못했거나,
수시를 안썼거나,
수시 결과가 아직 안나와서 불안한 친구들은 무조건 정시.
나는 수시 1차에 전부 떨어지고, 수시 2차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다.
근데 합격자 발표는 12월 6일. 수능 이후다.
만약 수시 2차 까지 몽땅 떨어지면 그때는 무조건 정시밖에 없는 상황.
즉,
나는 수능을 봐야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수시에 합격할 것같은 기분이 들어서 공부를 하지 않고
편히 보기로 마음먹었다.
수능 당일.
나는 정말 편한 마음으로 학교에 도착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국어는 열심히 풀어보리라 다짐했다.
‘한글이니까.’
하지만 그 다짐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20번 쯤부터 집중력이 흐려지기 시작했고, 이미 제 시간내에 다 풀지 못할 것을 직감했다.
그 이후 부터는 모든 것을 해탈하고 나를 놓았다.
수능이 끝나고 엄마가 학교 정문 앞으로 데리러 나왔다.
운동장에서는 대부분의 아이들이 부모님과 훈훈한 장면을 연출하고 있었다.
엄마는 학교에서 나오는 나를 발견하고는 차에서 내려 반갑게 다가왔다.
“잘봤어~?”
그냥 잘 봤다고 할걸..
하다못해 열심히 풀었다고라도 할걸.
“아니, 국어 빼고 찍고 잤어.”
“...”
“...”
“너 그걸 지금 자랑이라고 말해!!”
엄마의 강스매시가 날아왔고 집에 갈 때 까지 잔소리를 들어야 만했다.
남들은 모두 환영받고 위로 받고 있는 날. 나는 그 날 마저도 꾸중을 들었다.
정말 다행히도 난 수시 2차에 합격했다.
*수능은 끝까지 최선을 다합시다.
고3 끝자락 너에게 쓰는 편지.
졸업이 한달도 채 안남았어.
졸업하고 서로 대학에 가고 나면 일년에 몇 번이나 볼 수 있을까.
고3 친구가 평생간데. 우리도 서로 갈 길은 달라도 자주 만나고 연락도 자주하자.
하루에 한번씩 전화해라.
S야 내가 Q시에서 학교다니면서 W시에서 비빔밥 먹으며 영화찍고 있을 너를 응원할게.
대학가서 네가 원하는대로 긴 생머리고 한 번 휘갈기고, 훈남 남친도 사귀고.
내 싸이월드 방명록 꼬박꼬박오고, 사진에 댓글도 잘 달아라.
성의있게 이년아.
어쨌든 S야. 네가 내 친구여서 참 좋아.
앞으로도 우리 근 6개월처럼 제발 좀 안싸우고 친하게 평생가자.
사랑해 S야. 쪽쪽
20**년 1월 11일 새벽 2시 45분
불 켜놓고 편지쓰다가, 화장실 가려고 나온 엄마한테 들켜서
편지를 놓고 실랑이를 벌이다 결국 불끄고
휴대폰 액정 빛에 의존하고 있는 Y가.
쳐 자고 있을 S에게
*위 편지는 실제편지를 인용한 것임.*